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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관찰사 서유구 행정일기 '완영일록' 번역…조선시대 지방통치 업무 '생생'
전라도 관찰사 서유구 행정일기 '완영일록' 번역…조선시대 지방통치 업무 '생생'
  • 김보현
  • 승인 2017.03.16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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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1차 번역 완료…13종·1070건 날짜별 기록 / 공문서 등 통해 당시 사회상·다양한 생활사 파악 가능
▲ 조선시대 대표 실학자 서유구

조선시대 관찰사 제반 공문서 기록으로 유일한 자료인 전라도관찰사 행정일기 <완영일록>이 최초로 완역(完譯)돼 당시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에서 행해졌던 지방 통치 및 재정 운영과 다양한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전라감영 복원에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나 활용 콘텐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북도는 조선후기의 대표 실학자이자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가 쓴 <완영일록(完營日錄)>의 1차 번역을 완료하고 이를 번역본으로 출간했다.

<완영일록>은 서유구가 1833년 4월부터 1834년 12월까지 전라도 감영, 즉 완영(完營)이 있는 전주에서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수행한 공무를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행정기록이다. 주로 신변잡기나 개인의 기록을 적은 다른 관찰사 기록물과 달리 수행한 일과와 주고받은 문서 내용까지 상세하게 담아 사법, 행정, 군사 등 관찰사 제반 공문서를 기록한 유일한 자료라고 평가받는다.

▲ 완영일록.

총 8권으로 구성된 <완영일록>은 13종·1070건의 공문서가 날짜별로 기록돼 있다. 원본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 보관돼 있다. 지난 2012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책을 3권으로 묶어 영인본(影印本·원본을 사진 촬영해 복제한 책)으로 펴냈다.

그 후 일부 번역본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 권을 완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도는 지난해부터 번역 사업을 주관하고 있고, 풍석문화재단 전북지부가 사업에 참여해 현재 1~4권을 번역한 <역주(譯註) 완영일록(상)>가 나왔다.

완영일록을 분석한 결과, 전라도 53개 고을과 병영 및 각 진(鎭) 등의 행정·군사·사법 등 전라도관찰사가 맡았던 제반 업무 기록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국왕으로부터 전라도관찰사로 제수 받아 여산 황화정(皇華亭)에서 신·구임 교대의식을 치르고 전주 조경묘에 숙배(肅拜)하고 전라감영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가는 7일에 걸친 전라도관찰사 부임 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돼 있다.

▲ 완영일록 번역본.

1833년 6월 15일 기록을 보면 전라도내 수령 등 70명에 대한 상반기 인사 고과(考課) 내용을 ‘춘하등(春夏等) 포폄방목(褒貶榜目)’으로 상·중·하로 기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34년 1월 17일, 우역(牛疫)에 대한 약방문(藥方文) 처방도 이채로운데, 우역은 지금은 없어진 질병이지만 조선시대 구제역(口蹄疫)이라 할 수 있는 큰 돌림병이었다. 관찰사인 서유구는 우역에 남자 소변이 좋다는 약방문을 적어서 전라도 53개 군현과 법성진, 고군산진 등에 공문을 발송했다.

이밖에 관찰사가 매월 1·15일에 풍패지관인 전주객사에서 망궐례(望闕禮)를 행했고, 8월 15일에는 조경묘(肇慶廟)와 경기전에 배향(配享)했다는 사실과 당시 농사 상황, 세곡 운송, 제언(堤堰) 수축, 기우제 등 권농(勸農) 관련 내용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노학기 문화유산과장은 “실학자이자 관료로서의 서유구의 면모, 전라도의 사회상과 생활사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담긴 완영일록은 또 다른 전라북도의 보물”이라면서, “향후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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