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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으로 읽는 이땅 여성의 사회사
두 권으로 읽는 이땅 여성의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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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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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규 작가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부제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 〈여자전(女子傳)〉은 인물 인터뷰로 유명한 김서령 작가가 최근 다시 펴낸 책이다. 한국 현대사만큼 굴곡지고 우당탕탕 흘러가며 숱한 이야기를 골짜기마다 부려놓은 장강도 드물 터인데 그 역사의 한복판을 맨몸으로 헤쳐온 여자들 이야기 일곱 편을 묶었다. 왜정시대-해방-인공-뒤집어지고 총칼 들고 나타나고 다시 뒤집어지고, 다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또 살아나고….

한국 현대사 헤쳐온 여자들 이야기

“내 살아온 사연을 다 풀어놓으면 책 열 권으로도 모자란다”는 분들이 어디 한둘일까. 하지만 기록으로 남은 분들은 극히 드물다. 평생학습센터 등에서 드물게 여는 생애사 쓰기, 한글학교에서 비뚤비뚤 글씨와 서툰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분들의 인생을 읽을 때 특별한 감동이 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정작 어느 교과서에서도 기록되지 않은 진짜 이야기의 소중함을 우리는 놓치고 산다.

〈여자전〉은 ‘개인사의 곡절을 뚫고 나오면서 제 삶의 진액으로 역사를 써오신 분들’을 다룬다. 동상으로 발가락이 빠져버린 지리산 빨치산, 팔로군이 되어 모택동 대장정에 참여했다가 나중엔 중공군으로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던 여자 군인, 만주에서 일본군 성노예의 고통을 겪은 위안부, 월북한 좌익 남편을 기다리며 수절한 안동 종부, 50년을 죽은 사람만 쳐다보며 살아온 옛날식 미혼모, 피난지 부산에서 창문 너머로 배운 춤으로 평생 춤꾼의 길을 간 누구, 참혹한 전쟁의 기억은 없으나 일상에서 남성과의 전쟁을 가혹하게 치른 미술관 주인. 신분과 학력, 고향과 환경은 제각각이었으나 한 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운명을 좌우한 결정적 요소였다. 〈여자전〉은 지금 이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전사(前史)이자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고통의 기원과 삶의 장엄함에 대한 한 백서로 찬찬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말 그대로 요즘 ‘핫한’ 책이다. 변호사로 있을 때 남다른 필력을 보여주던 금태섭 국회의원이 먼저 읽고 감동하여 300권을 주문하여 다른 의원실에 돌렸다는 책이다. 요즘같은 소설 불황의 시절에 출간 4개월만에 1만 5000부가 나갔다.

최근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복잡하고 자폐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이 소설은 82년생(서른 다섯)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실체를 선명한 사진처럼 보여준다. 대학을 졸업한 후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한 살에 결혼해 딸 아이 하나를 키우고 사는 김지영. 그가 겪는 낭패의 순간들은 오늘의 여성들이 매일 마주쳤을(혹은 마주치게 될) 장면들의 연속 컷이다. 임금차별, 유리천장, 성희롱, 감정노동, 일과 육아, 시댁으로 상징되는 봉건유제와 낡은 의식. 이 모든 것들에 쥐어 짜지면서 김지영은 미쳐가고, 어느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문이 트여 그동안 감춰두었던 가슴 속의 깊은 말들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려움

모든 장면에 공감할 여성들은 물론 하늘의 반쪽을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남성들에게 함께 읽자고 권하고 싶다. 이 땅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사방에 진주한 이 봄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상처와 갈망이 세상을 향해 마침내 터뜨리는 오랜 시간의 발화임을 깨닫게 한다. 다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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