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⑤ 일본 보물창고 쇼소인(正倉院)과 백제] 日 왕가 '1급 보물' 곳곳에…'백제의 혼' 살아 숨 쉬다쇼소인 소장 코발트빛 유리잔, 미륵사 사리외함 무늬와 닮아 / 백제 의자왕이 보내준 바둑판, 화려 정교한 세공 기술 보여줘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3.23  / 최종수정 : 2017.03.27  17:22:50

일본 나라(奈良)현 도다이지(東大寺) 경내에 있는 쇼소인(正倉院)은 고대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다. 이곳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 인도, 서역 등지에서 수입한 각종 미술품, 공예품, 문서가 보관돼 있다. 특히 백제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일본 국보급 문화재의 일대 보고인 쇼소인에 있는 백제 보물은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이곳에 왔을까?

△사슴 천국 나라현의 실크로드 보물들

   
▲ 홍아발루기자(紅牙撥鏤碁子)와 감아발루기자(紺牙撥鏤碁子) 은평탈합자(銀平脫合子)

과거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현은 불교문화가 꽃피운 곳으로 도시 어디에서나 사슴을 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도시다. 우리 나라에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와 공주가 있고 신라에 경주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바로 나라현이 있다.

나라현을 대표하는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후원에는 일본 왕실 보물창고인 쇼소인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 유물 외에 중국 당나라나 서역, 페르시아 등에서 유입된 희귀한 보물 약 900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쇼소인 보물은 매년 10월 수십 점만 공개하고 공개 후 십년 동안은 전시를 제한할 만큼 소중히 여기는 국보급 유물들이다.

△백제에서 제작한 서역풍 유리잔

   

쇼소인에는 코발트빛을 내뿜는 높이 12cm의 특이한 유리잔이 있다. 한눈에도 서역 페르시아 계통임이 느껴지는 유물이다. 그동안 일본 학계에서는 이 유리잔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를 놓고 설왕설래했었다. 그런데 최근 이 의문이 풀렸다. 이 유리잔이 백제에서 가공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증거는 유리잔 받침에 새겨진 무늬에 있다. 유리잔 받침에는 역동적 소용돌이 모양의 애초문(唐草文)과 작은 생선알 모양의 어자문(魚子紋)이 새겨져 있는데, 미륵사지 금동제 사리외함에 새겨진 것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또 유리 표면에 동그란 무늬를 덧붙인 장식기법은 경북 칠곡 송림사 전탑 안에서 발견된 사리 그릇과 유사해 한반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물임이 확인되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학예부장인 나이토 사카에는 “백제와 일본 왕실의 밀접한 친분 관계로 장인들이 세공한 다수의 공예품을 일본에 선물로 보냈었고, 백제 멸망 뒤 다수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점 등으로 미뤄 이 유리잔은 백제에서 가공돼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백제인 미마지(味摩之), 일본에 기악을 전하다.

   

미마지는 백제인으로 AD 612년 기악을 일본에 전수한 인물이다. 기악은 한국의 산대가면극, 일본 고대 가면극 노(能)의 원류로 여겨지는 탈춤 형식의 음악 공연이다. <일본서기>에는 “백제인 미마지가 오에서 기악무를 배우고 일본에 와 사쿠라이(나라현 북부의 도시)에서 소년을 모아 기악을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백제인 미마지가 기악을 배운 중국 오나라는 어디이며, 기악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연이었을까? 오늘날 위치로 추적하면, 미마지가 기악을 배웠던 오나라는 백제와 교류가 빈번했던 양자강 연안 중국 남부 지역을, 기악 공연은 가면극 형식의 공연이었다. 쇼소인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기악탈이 남아 있어 기악 공연이 어떠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당시 기악 공연은 높은 괴물같은 탈을 쓴 배우가 선두에 서고, 피리와 북 등 악기 연주단이 뒤따르며 승려 일행이 같이 행진하였다. 또 사자춤이 연행되었고 중국 강남의 미녀 오녀(吳女, 용을 잡아 먹고 산다는 인도 신화 속의 큰 새 가루다, 술취한 주정뱅이 서역왕 취호왕 등으로 분장한 가면 배우들이 무언극 형식으로 연기하였다. 쇼소인 기악 가면들은 페르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백제에서 공연되던 가면 악무가 백제인 미마지에 의해 일본에 전수되었음을 보여준다.

△의자왕이 보낸 천하 명품 바둑알과 바둑판

   
▲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

쇼소인에는 오늘날 기술로도 세계 최고 수준임을 보여주는 바둑 용품이 보관되어 있다. 쇼소인 헌납목록인 국가진보장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이 당시 일본의 최고 실력자였던 내대신(內大臣) 후지와라 가마타리(藤原鎌足)에게 적색옻칠장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안에 코끼리 상아를 염색한 후 표면을 아름답게 조각해 만든 홍아발루기자(紅牙撥鏤碁子)와 감아발루기자(紺牙撥鏤碁子)라고 불리는 바둑돌 두 벌, 상아로 은빛 코끼리 문양을 정교하게 새긴 바둑돌통인 은평탈합자(銀平脫合子)와 금은귀갑감(金銀龜甲龕)을 넣었다. 옻칠장 속 바둑 용품은 백제 장인의 화려하고 정밀했던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1급 보물이다. 한편 일본 왕실에 보낸 바둑 용품 선물 목록에 빠진 바둑판이 쇼소인에 소장되어 있는데,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 그것이다. 스리랑카산 자단에 상아로 줄을 긋고 낙타, 공작 등을 새긴 이 바둑판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둑판이다. 그동안 이 바둑판이 도대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임을 다음 몇 가지 점이 증명하고 있다. 첫째, 바둑판의 화점이 우리 나라 순장 바둑에서만 볼 수 있는 17개이다. 바둑판의 화점 수는 중국은 5개, 일본은 9개, 티베트 바둑은 12개인데, 우리 나라는 일제 때까지 17개였다. 둘째, 바둑판에 쓰인 목재가 한국산 소나무인 육송이다. 이는 목화자단기국이 백제 유물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셋째, 적색옻칠장 안에 들어 있던 바둑알에 새겨진 새 무늬가 안압지에서 출토된 상아 유물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목화자단기국 바둑판은 백제가 일본 왕실에 보낸 것임이 분명하다.

△해양강국 백제, 바다 실크로드를 개척하다

백제 보물은 일본이 세계 제일의 보물 창고라고 자랑하는 쇼소인 외에도 나라현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류지(法隆寺)에도 있다. ‘동양의 비너스상’으로 불려지는 세계적인 문화재 백제관음과 구세관음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나라현 곳곳에 남아 있는 백제 보물들은 백제가 일본과 긴밀히 교류했을 뿐 아니라 서역 국가들과도 활발히 교섭했었음을 말해준다. 백제는 바다 실크로드를 개척한 해양강국이었던 것이다.

< 저작권자 © 전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고 다른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고충처리인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이메일무단수집거부현재 네이버에서 제공한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54931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418(금암동)  |  대표전화 : 063)250-5500  |  팩스 : 063)250-5550, 80, 90
등록번호 : 전북 아 00005  |  발행인 : 서창훈  |  편집인 : 윤석정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김재호
Copyright © 1999 전북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esk@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