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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붓의 미래
전북 붓의 미래
  • 김은정
  • 승인 2017.03.24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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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서예의 명맥이 탄탄하다. 굳이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당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인정했던 창암 이삼만이 있고, 그 뒤를 이어 현대 서예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석전 황욱과 강암 송성용이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전북은 서예가들의 역량과 활동이 빛난다. 격년제로 열리는 서예비엔날레의 궤적도 전북 서예의 명맥을 이어주는 귀한 통로다.

전주는 서예의 전통, 그 중심에 있다. 종이의 고장으로 이름을 알렸던 전주의 전통은 한지와 서예와 출판이라는 조화로운 문화유산을 이어냈다. 현대의 기술에 밀려 조선시대 꽃을 피웠던 출판의 전통은 미미해졌으나 한지와 서예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서예와 함께 이어졌어야 할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있다. 모필, 붓이다. 한 시절, 전주에서 만들어지는 붓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서예의 근본이 붓으로부터 시작되니 전주붓이 성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예의 전통이 꿋꿋하게 이어지는 동안 전주붓은 그 이름을 잃었다. 손으로 쓰는 글씨가 사라져가면서 붓으로 쓰는 글씨의 존재는 더 미약해졌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값싸게 들여오는 중국붓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재작년 말, 전주에서 대물림으로 붓을 만들어온 장인이 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로 등록됐다. 삼 대째 붓을 만들어온 곽종찬 명장이다. 전주붓의 명맥이 그를 통해 이어지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 나이 예순 여섯. 50여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그는 예나 지금이나 손에서 붓을 떼어놓지 않는다. 한 개의 붓이 완성되기까지 150번의 손길이 닿는다고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이 붓을 만들어내는 일에 닿아 있어 만들어지는 붓의 양이 적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안타깝다. 붓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지만 사가는 사람은 없다. ‘한 달에 서너 개 팔리면 그나마 다행’이고, ‘서예를 하는 사람들까지도 중국 붓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전주붓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래서 명장이 찾은 자구책이 있다. 붓을 장식용 액자에 넣어 판매하는 방법이다. 제 쓰임 대신 ‘장식’이라는 다른 쓰임을 얻어 액자 안에 갇힌 전주붓의 존재. 그러나 명장의 바람은 이렇게라도 전주붓이 맥을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쓰임이 발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전주붓의 분투’는 쓰임을 잃은 전통 공예 유산이 안고 있는 현실이다. 전주붓 살리기가 명장의 고군분투로만 이어지는 일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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