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⑥ 관음보살과 실크로드] 백제 관음상, 인도·이란 문명을 포용하다미소 짓는 日 호류지 관음, 인도미술양식 영향 받아 / 백제작품 구세관음도 페르시아 왕조 일월문양 새겨져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4.06  / 최종수정 : 2017.04.10  11:13:24

   
▲ (왼쪽부터)아나히타, 사라스바티, 관음보살.
 

관음보살(觀音菩薩)은 불교의 여러 보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보살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 즉 중생이 관음보살을 부르면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믿기에 불교가 번성한 지역이면 어느 곳에나 관음상이 있다. 그런데 관음보살은 이란의 수신(水神) 아나히타(Anahita)와 힌두 여신 사라스바티(Sarasvati)에 원류를 두고 있다. 무슨 소리일까? 관음보살은 페르시아와 인도의 신이 간다라 지역에서 불교화된 후 중국과 한국에 전해졌으며, 백제를 통해 일본에 건너가 크게 유행하였다.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관음 신앙과 그 속에 남아 있는 백제의 흔적을 탐색한다.

△페르시아·인도 물의 여신과 관음보살

관음보살은 구원을 요청하는 중생을 구제해주는 구도자다. ‘관음’은 ‘소리(音)를 본다(觀)’는 의미인데,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보기만 해도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듯 중생을 구제하는 탁월한 능력을 ‘관음’ 두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보살’은 지혜를 가진 자, 구도자를 뜻한다.

원래 관음보살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성스러운 물의 여신 아나히타에서 기원했다. 관음보살이 머리 위에 화불(化佛)을 얹고 있거나 천관(天冠)을 쓴 것이 아나히타상의 특징과 유사하며, 손에 물병을 들고 있는 것 또한 관음보살상의 그것과 같다. 또 관음보살상 오른손에 들려 있는 버들가지 역시 아나히타상 장식 문양과 비슷하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관음성지가 모두 해안에 위치해 있고 한결같이 흐르는 물병을 들고 있는 것도 물의 여신 아나히타와 관련이 있다.

한편 아나히타는 힌두교에서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아내이며 물과 풍요의 여신인 사라스바티와 기원이 같다. 아나히타는 하라흐바티(Harahvat)로도 불리는데 이는 사라스바티를 페르시아어로 발음한 것이다. 또 관음은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슈와라(Avalokitevara)를 한자로 표현한 것인데, 아바로키테슈와라는 브라만교에서 비슈누와 시바 신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란의 수신 아나히타가 간다라에 들어와 불교의 관음보살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힌두교의 신들도 수용된 것이다.

△아잔타석굴, 호류지 금당벽화의 원류

   
▲ 아잔타석굴 벽화(왼쪽)과 호류지 금당벽화 보살상 비교.

관음보살과 인도·페르시아의 특별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호류지(法隆寺)다. 호류지는 백제 승려 혜총에게 불교를 배워 일본 불교 발전에 절대적 공헌을 한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607년에 세운 나라(奈良)현의 사찰이다. 호류지에는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관음보살 세 점이 있다. 그것은 금당벽화 속 관음보살과 백제관음 그리고 몽전(夢殿)의 구세관음이다.

먼저 금당벽화는 인도 아잔타(Ajanta) 석굴 벽화가 그 원류이다. 이는 금당벽화 6호벽 아미타정토도와 아잔타석굴 제1굴 보살상이 쌍둥이처럼 닮은 것에서 확인된다. 힌두 문화를 꽃피운 굽타 왕조 때 건축된 아잔타 석굴의 벽화와 불상들은 인도 고유의 특색이 두드러진다. 아잔타석굴 제1굴 벽화에는 자타카(Jataka) 즉 붓다의 전생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은 연꽃을 손에 쥐고 있는 보디사트바 파드마파니(Bodhisattva Padmapani)로 일명 연화수보살(蓮花手菩薩)이라고 불린다. 보관, 목걸이, 팔찌 등으로 장식하고 기품 있게 미소 짓고 있는 이 그림은 금당벽화 아미타정토도 우측에 화려한 장식과 가냘픈 허리, 손가락 굽히는 모양, 응시하는 눈매 등으로 그려진 관음보살상을 매우 닮았다. 이는 아잔타석굴 양식이 돈황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된 후 일본에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놀랍고 흥미로운 사례다.

△호류지 관음상의 인도·이란 특색

   
▲ 구세관음 일월문.

호류지 별관에 전시되어 있는 일본 국보 백제관음은 키가 209.4㎝의 장신 불상으로 7세기 초중엽에 제작된 것이다. 백제관음상의 특이한 광배, 8등신의 호리호리한 몸매, 부드러운 어깨와 허리 곡선을 보고 있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무엇보다 우아한 미소를 띤 얼굴은 일본 불상에서 볼 수 없는 전형적인 백제인의 모습이다.

백제관음은 인도 양식을 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살의 형상은 인도 귀족의 모습을 띠고 있어 머리에 보관을 쓰고 천의(天衣)를 걸쳤으며 아래에는 치마와 같은 군의(裙衣)를 걸치고 있다. 또 귀걸이, 목걸이, 팔찌, 영락 등으로 몸을 장식한다. 인도 귀족의 모습이 토착화된 백제관음은 인도 미술 양식이 실크로드를 따라 백제를 거쳐 일본에 전래되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예이다.

호류지에는 백제인이 만든 관음상이 하나 더 있으니 키 180㎝의 구세관음(救世觀音)이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구세관음을 쇼토쿠태자를 본 뜬 불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백제 불상이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들은 많다. 우선 호류지의 고문서 성예초(聖譽抄)와 헤이안(平安)시대 역사서인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백제 위덕왕이 서거한 부왕을 그리워해 구세관음을 제작한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또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석불의 우측 보살입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있고, 천의는 양팔에 걸쳐져 U자형으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두 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것이 구세관음과 매우 닮았다. 구세관음이 백제 작품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좌인 것이다.

그런데 구세관음의 보관에는 조로아스터교를 기반으로 하는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심볼인 ‘일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란 왕의 상징인 ‘일월 문양’이 왜 새겨져 있을까? 이는 구세관음을 제작한 백제가 페르시아와도 긴밀히 교류했었음을 말해준다.

△관음보살, 실크로드 문명 교류의 소산

관음신앙은 페르시아와 인도에 기원을 두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졌고 다시 백제를 통해 일본에 전래되었다. 일본 호류지에 남아 있는 관음보살상은 실크로드 문명 교류의 소산으로 백제가 인도와 페르시아 문명과도 교류한 해양실크로드의 주역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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