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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김은정 기자  |  kimej@jjan.kr / 등록일 : 2017.04.20  / 최종수정 : 2017.04.20  23:24:57
   
오래전 여든세 살 할머니가 펴낸 회고록이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시집와 아홉 남매를 기르며 살아온 시골 할머니가 자신의 삶의 역정을 모아 쓴 일기집(님은 가시고 꽃은 피고)이었다. 할머니는 시집와서부터 쓰기 시작한 ‘출납부(가계부)’를 50대부터 일기로 바꾸어 쓰기 시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던 일기와 틈틈히 썼던 글은 수십권 노트로 쌓여 삶의 기록이 되었다.

남다른 역경이나 삶의 질곡이 드러나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지켜온 할머니의 일기집이 주는 감동은 컸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담담히 기록한 할머니의 진솔한 글이 주는 울림 때문이었다.

유난히 고왔던 송할머니는 서른아홉 살에 버스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품속에 있던 돌배기 딸을 감싸 안느라 그의 얼굴과 온몸은 불에 녹아내렸다. 그때 남편은 “벽에 기대 살아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고 했단다. 췌장암으로 앞서간 남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은 다시 여러 편의 시로 쓰여졌다.

할머니는 회고록을 펴낸 소감을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남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쁨이 크지만 글 같지도 않은 글을 많은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니 부끄러움이 커요.”

<전두환 회고록>이 논란이다. 사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치인들의 회고록은 적지 않다. 근래 들어서만도 이명박 대통령 회고록이나 노무현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회고록 역시 논란과 쟁점을 불러왔다. 그러나 <전두환 회고록> 논란은 기왕의 회고록들이 가져온 논란과는 그 성격이 또 다르다. 가장 첨예한 논란은 5·18광주항쟁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태도다. 그는 자신이 ‘(5·18광주항쟁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었다고 회고한다. 광주항쟁의 억울한 희생자란 이야기다.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및 5·18 광주민중항쟁 유혈진압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그가 ‘씻김굿의 제물’을 운운하는 형국은 역사왜곡의 죄를 더하는 일이다.

그의 회고록을 둘러싸고 광주민중항쟁 관련 단체와 독자들이 나섰다. 5·18기념재단은 법원에 판매,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거짓 없이 기록한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는 할머니의 회고록이나 <전두환 회고록>으로 다시 알게 되는 진리(?)가 있다.

‘글은 꼭 그의 삶만큼 보여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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