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⑦ 연주문과 실크로드] 백제 연주문, 페르시아 문명을 말하다영생·왕권신수 개념,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양 / 백제의 용·봉황, 페르시아 장식물 짐승과 흡사 / 미륵사지 사리장엄 연주문도 페르시아계 무늬
기고 기자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4.20  / 최종수정 : 2017.04.26  13:20:21

연주문(連珠文)은 작은 원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촘촘하게 배열한 문양을 말한다. 연주문은 페르시아 사산(Sassanian)조 시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이 무늬가 중요한 이유는 실크로드 문명 교류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에 기원을 둔 연주문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 들어왔으며 다시 일본에 전해졌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연주문은 부여 외리사지 백제 벽돌에서 발견되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연주문이 새겨진 백제 유물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연주문을 통해 백제와 실크로드의 관계를 탐색한다.
 

   
▲ 이란 루리스탄(Luristan)에서 출토된 청동 주전자(BC 1,000-500)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석회암(BC550-330) 장식 무늬.

 

△페르시아, 연주문의 기원

연주문은 이란 루리스탄(Luristan)에서 출토된 청동 주전자(BC 1000~500)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석회암 벽돌(BC 550~330) 장식 무늬가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사산조(AD 3∼7세기) 시대에 이르러 금속공예품, 건축, 직물 등의 장식에 크게 유행했다. 페르시아에서 연주문은 왕권신수(王權神授) 즉, 왕의 권력은 신이 준 것임을 상징한다. 제왕 서임식을 묘사한 이란 타그에보스탄(Taq-e Bostan) 석굴의 기마상 안장에 새겨진 연주문은 왕관에 새겨진 일월문(日月紋)과 함께 사산 왕조의 왕권을 나타낸다.

또 연주문의 작은 원은 흐바르나(Khvarenah)라는 진주를 표현한 것인데, 진주는 세계 최초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 이란 조로아스터교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한다.

연주문이 실크로드 각지에서 크게 성행한 연유는 이 문양이 영생과 왕권신수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연주문이 불교를 만난 것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조각품인 산치 스투파와 아잔타 석굴 그리고 간다라 지역 유물에서 확인되는 연주문은 페르시아 문화가 불교문화와 접목하면서 불상과 사원 벽화 등의 장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생겨났다.

   
▲ 이란 루리스탄(Luristan)에서 출토된 청동 주전자(BC 1,000-500)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석회암(BC550-330) 장식 무늬.

△중국 북제, 백제와 실크로드의 교량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연주문은 북제(北齊, AD 550-577) 시기 고분에 보인다. 우리에게 낯선 북제라는 중국 왕조는 서역의 소그드와 활발히 교류한 탓에 호다우민(胡多于民) 즉, 외국인이 중국인보다 많았던 이국적인 나라였다.

페르시아 연주문은 바로 북제 무안왕 서현수(徐顯秀, 502-571) 묘에 보인다. 중국 고고학 10대 발굴에 속하는 서현수 묘에는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벽화가 남아있는데, 말안장과 시중을 드는 여인 복식에 수많은 연주문이 새겨져 있다.

북제는 불과 27년간 존속했던 단명 국가였지만 백제는 세 차례나 사신을 파견했고, 북제 화폐인 상평오주전(常平五銖錢)이 부여 왕흥사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은 백제가 북제와 대단히 가까웠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백제는 북제와 교류하면서 서역 계통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 시기에 연주문도 백제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외리 벽돌, 한반도 연주문의 시원

우리나라에서 연주문이 가장 유행한 시기는 불교가 흥성했던 통일신라 때였다. 이 당시의 불교공예품, 불상, 도자기, 수막새 등 장식 문양에는 수많은 연주문이 새겨져 있다. 예컨대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앞뜰의 입수쌍조문(立樹雙鳥紋, 나무를 가운데에 두고 공작새 두 마리가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 연주문 석조물과 괘릉의 서역인상은 통일신라 사회와 페르시아 문명 간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연주문은 통일신라 때 가장 성행했지만, 그 시원은 백제 벽돌에서 찾아진다. 백제는 한성 시기부터 사비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축물에 다양한 무늬로 장식한 벽돌을 사용했다. 6세기 초에 조성된 무령왕릉 벽돌은 백제 미술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여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출토된 8무늬 벽돌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연주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벽돌은 통일 신라 이전인 6세기 말 혹은 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여 외리 8무늬 벽돌 중 연주문 벽돌은 4개인데, 연주문 안에 용, 봉황, 연꽃, 연꽃 구름이 새겨져 있다. 연주문 안에 상서로운 동물인 용과 봉황을 묘사한 것은 페르시아 연주문 장식물에 새겨 넣은 신령스러운 짐승과 흡사하다. 또 연주문 안에 환생과 재생을 상징하는 연꽃을 그려 넣은 것도 페르시아 도상을 매우 닮았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속 연주문

   
▲ 미륵사지 사리장엄함의 연주문과 당초문.

백제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에도 연주문이 보인다. 사리장엄에는 연주문이 당나라(唐) 풀무늬(草紋)란 뜻인 당초문(唐草紋), 생선 알 문양의 어자문(魚子紋)과 함께 새겨져 있는데 모두 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계 문양이다. 당초문은 서아시아 팔메트에서 유래한 인동(忍冬) 당초문과 지중해에서 시작된 포도(葡萄) 당초문 두 가지가 대표적인데, 사리장엄에는 인동당초문이 묘사돼 있다. 또 사리공에서 발견된 진주 구슬 역시 페르시아나 동남아시아 베트남과의 교류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다.

△백제 연주문, 동서 문명교류의 산물

   
▲ 이란 타그에보스탄(Taq-e Bostan) 석굴의 기마상 안장에 새겨진 연주문.

연주문은 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 공예품의 전형적인 문양이다. 연주문은 진주를 상징하는 작은 원을 구슬처럼 꿰맨 듯 연결해 만든 무늬인데, 원래 진주는 광명과 선(善)을 상징해 왕관, 건축, 의복의 장신구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 연주문인 부여 외리 8무늬 벽돌과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에 새겨진 띠모양 연주문은 실크로드 동서 문명 교류가 백제까지 이어져 백제 장식 문양에 뿌리를 내렸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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