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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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전 중점 출판하는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 "문명 흔적 담은 백과사전 발간 평생의 과제"
김은정  |  kimej@jjan.kr / 등록일 : 2017.05.04  / 최종수정 : 2017.05.04  21:15:18
   
▲ 파주에 있는 출판산업체험센터 활성화 책임을 맡고 있는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가 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봉주 기자
 

종이책이 외면 받는 시대다. 출판유통시장 매출 규모는 해마다 줄어들거나 정체된 상태고, 신간 발행종수 역시 감소하고 있으니 이미 종이책은 그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종이책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거니와 우리나라만이 처한 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종이는 더 이상 책의 유효한 그릇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출판의 형식과 유통방식이 달라지면서 종이책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아직 종이책의 존립은 건재(?)하다. 국민 독서율이 높은 영국의 경우, 2018년에는 전자책 매출이 종이책의 매출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 태블릿 기기 이용으로 영국인들의 독서 습관이 변화하고 있는 추세에 따른 변화다. 그러나 최근 영국인들이 전자책을 멀리하고 종이책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보도가 있다. 예상과는 달리 전자책의 약세는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로 보자면 종이책의 미래를 기대하는 일은 무모하다. 게다가 경제 논법으로 따지자면 출판 산업은 미래 산업이 되지 못한다. 한해에도 적지 않은 출판사가 들고 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30년 가깝게 출판사를 운영해오면서 그 자신 책의 저자이자 번역자이자 출판기획자로 살아온 도서출판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60)를 만났다. 인문과 역사와 고전을 주목하면서 특히 역사와 고전을 독자들과 가깝게 만드는 작업을 신념으로 지켜온 그를 만나면 종이책의 유효함, 책읽기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89년 서해문집을 세워 이듬해부터 책을 내오기 시작한 그는 다른 출판사들이 주목하기를 꺼리는 역사와 고전을 일찌감치 부터 출판사의 중심에 세워놓았다. 서해문집의 대표시리즈인 〈오래된 책방〉이 그 기둥이다. 그중에서도 직접 번역해 출간한 〈징비록〉은 그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대표적 결실이다. 출판사 직원들조차도 출판을 만류했었다는 이 〈징비록〉은 어느 날부터인가 슬슬 팔려나가기 시작하더니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이 흐름을 타고 20여개의 출판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징비록〉 짝퉁(?)을 펴내면서 고전 출판의 물꼬를 열었다.

“초기에 냈던 책들은 사실 제가 내고 싶은 책들이 아니었어요. 팔릴 것을 생각하며 낸 책들이었죠. 그런데 생각만큼 팔리지도 않았어요. 어느 날 문득 평생 출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내가 내고 싶은 책만 내다 그것도 안 되면 우동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각오로 처음 기획한 것이 〈오래된 책방〉시리즈예요. 어떻게 하면 고전에 독자들을 쉽게 다가가게하고 읽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의 결정이었지요.”

인터뷰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그의 소문난 독서편력은 풍부한 지식이 되어 전해지는 책이야기와 시대를 바라보는 명쾌한 관점과 분석으로 담겨져 시간을 잊게 했다.

책 읽는 사회와 좋은 책을 만드는 나라를 꿈꾸는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덕분에 즐겁고 유쾌했으며 책읽기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통로가 되었다.

-서해문집은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등록은 89년에 했는데 책은 그 이듬해부터 냈습니다. 그때는 직장을 다니면서 출판사를 운영했어요. 대학 3학년 때 출판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러나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돈을 벌어야 했어요.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요. 출판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허가제여서 마음대로 등록을 못했어요. 허가제가 풀리면서 일단 등록을 한 것인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1년 정도는 이름만 갖고 있었던 거죠.”

-1990년부터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출판에 뛰어드셨나요.

“곧바로 전념한 것은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 인생에 의미 있는 일로 꼽고 있는데 직장을 그만두자마자 〈영화저널〉이라는 주간지를 창간했어요. 영화비평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주간지입니다.”

-쉽지 않는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당시 영화나 연예 관련 주간지는 〈선데이서울〉 등 선정적인 잡지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영화전문 비평을 내세웠으니 대중적인 관심을 기대할 수 없었죠. 다행히 영화계에서 아주 반가워했어요.”

-운영 자체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무가지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자금이 없어서 유가지로 돌렸죠. 지하철에서 팔려야 하는데 그 통로를 뚫기도 쉽지 않았어요. 판매하는 곳에서는 이런 신문을 누가 보냐는 식이었죠. 그래도 몇 군데서 받아주어 팔기 시작했는데, 저희도 놀랄 정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1위가 일요신문, 2위가 영화저널이었죠. 파는 사람들도 깜짝 놀라더군요. 글자밖에 없는 영화지가 그렇게 팔려나가니……. 그러나 신문은 사실 광고가 뒷받침되어야 운영이 되는 것이잖아요.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었어요. 영화전문가들까지 힘을 보태며 노력했지만 결국은 손을 들었는데, 그 시점에 그냥 접기가 너무 아쉬웠어요.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가 영화전문주간지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했어요. 〈씨네 21〉이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죠.”

-영화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까.

“영화를 좋아한 이유죠. 그 당시 정보를 다루는 무가지들이 나오기 시작할 때였는데, 자본주의적인 것 말고 영화를 제대로 알리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후배와 의기투합한 것이 〈영화저널〉이었어요. 30대 초반이었는데 그나마 모았던 돈 다 없애고 다시 저는 거지가 됐죠.(웃음) 그래도 우리나라에 영화비평 저널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해문집으로 돌아오셨군요.

“서해문집으로 돌아와 출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출판사를 운영하려면 자금이 필요했죠. 직장을 다시 얻어 일을 했어요. 5년 정도 일하면서 돈을 다시 모았어요. 자연히 그 시기 서해문집은 유명무실했죠. 몇 권 낸 책도 좋은 책은 아니었어요. 2000년 4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이제는 내고 싶은 책을 내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각오로 처음 기획한 것이 〈오래된 책방〉 시리즈예요.”

-〈오래된 책방〉의 기둥이 된 〈징비록〉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직접 번역까지 하셨죠.

“조그만 출판사이다 보니 처음에는 번역자를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나서는 사람이 없어 제가 할 수 없이 하게 된 것입니다. 징비록은 제가 좋아하는 책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그 책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직원들이 누가 읽겠느냐며 출간을 반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요.”

-그런데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셨잖아요.

“내심으로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치 있는 책이니 내야한다’고 고집했어요.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는데 1년쯤 지나고 〈불멸의 이순신〉이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갑자기 〈징비록〉을 찾는 독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거예요. 드라마에서 유성룡 선생이 긍정적으로 그려졌거든요. 그 후에 오래된 책방 시리즈로 〈난중일기〉도 나왔는데 역시 잘 팔렸어요. 〈오래된 책방〉 시리즈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죠. 번역자를 구하는 일도 쉬워졌고요. 물론 직원들에게 체면도 서게 됐죠.(웃음)”

-당시 〈징비록〉은 여러 출판사에서도 발간되었었죠.

“맞아요. 그 전까지는 징비록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책이 팔리기 시작하니까 20종 정도가 나왔어요. 대한민국 출판계의 잘못된 풍토이기도 한데, 그것이 결국은 베껴먹기거든요. 그러나 어쨌든 우리 고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기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의미는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즈음부터 고전 출판이 활발해졌나요.

“그렇다고 봐야합니다. 그러나 고전을 출판하려는 많은 출판사들이 ‘서해문집 때문에 고전 시리즈를 기획했지만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저희는 텍스트에만 주목하지 않고 사진 그림 일러스트 자료의 비중을 높였거든요. 일단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죠. 이전까지의 고전은 원문과 해설, 번역 등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다반사였어요. 그런데 저희는 원문 대신 본문을 쉽게 읽히게 하고 사진 등의 자료를 많이 넣어 우선 독자들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서해문집의 효자가 된 〈징비록〉의 번역자이시니 인세도 꽤 받으셨겠습니다.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웃음) 2만부는 족히 넘었는데, 제가 출판을 시작하고 난후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라간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어요.”

-내고자 하는 고전은 아직도 많습니까.

“우리가 모르는 훌륭한 고전이 많으니까요. 그런 책들을 알려야하니 과제가 많습니다.”

-고전은 결국 전통과 맞닿아 있는 것인데, 전통을 고루한 것이라는 인식이 크잖아요. 그런데 말씀을 들으면서 징비록 같은 고전이 책으로서 성공한 요소를 보면 전통을 고스란히 고수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책이 지닌 의미가 무엇이냐를 생각해보면 그렇죠.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라고 하는 것들을 저는 방울도마토나 벼를 심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추수를 하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쌀만 먹고 살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사과는 나무를 심고 최소한 3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배는 5년을 기다려야 하죠. 숙성해서 우리에게 자양이 되는 시간이 되기까지 걸리는 기본적인 시간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책을 지나치게 조급하게 읽으려고 합니다.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류의 책들은 정보나 기술은 전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모든 사고의 틀, 이를테면 작은 우주라고 하는 공간이 폭발해서 더 커진다는 느낌, 아니면 다른 우주로 나아간다는 느낌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고전이나 인문 분야처럼 본질을 다루는 책들을 읽다보면 그것이 어느 날 탁 터지는 때가 있거든요. 갑자기 내가 상상하는 세계가 커져버리는……. 그랬을 때 만나는 즐거움이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 독서의 그 즐거움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우리는 독서를 현실적으로 무슨 이익을 주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죠.”

-평생의 과제로 삼고 있는 책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백과사전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백과사전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백과사전은 한 나라 문명의 집합입니다. 우리나라는 백과사전의 의미를 너무 소홀하게 취급하죠. 지금 우리나라에는 백과사전이 없습니다. 다 인터넷 백과사전이죠. 출간이 안 되니 헌책방에 가야만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백과사전이란 모든 것을 종합하는 백과사전이예요. 책의 역사를 보면 극히 소수의 지배계층이 독점하고 있던 지식이 시민들에게 확장된 것이 백과사전으로 시작하거든요. 백과사전은 16세기부터 태동 합니다. 르네상스 지나고 소위 시민계급이 형성되면서 백과사전이 나오게 되죠. 일본도 백과사전을 처음 접한 것이 서양백과사전 번역을 통해서인데 당시 일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너무 문명에 뒤떨어져 있었구나’하는 자각이죠. 그래서 일본은 백과사전을 매우 중시합니다. 지금도 일본은 종이 백과사전이 팔리고 있고, 덕분에 개정판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부러운 일이죠.”

-우리나라도 백과사전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1980년 동아백과사전이 처음으로 나왔어요. 그 다음 나온 것이 번역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인데 그것은 우리나라 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없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의 모든 문명을 기록한 백과사전을 낸 적이 없어요.”

-인터넷을 통해 사전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종이 백과사전의 출간을 막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 사전과 종이사전의 차이가 있는데, 우리가 백과사전을 찾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고자 찾는 것이거든요.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찾는 것인데, 인터넷으로 모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나요. 제목이나 이름이라도 알아야 검색이 가능하죠. 종이 백과사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펼치면 몰랐던 사람, 몰랐던 사건도 알게 됩니다. 결정적 차이는 종이사전은 모르는 것을 내가 습득하는 것이고 인터넷 백과사전은 내가 아는 것을 더 많이 아는 것이에요.”

백과사전에 대한 중요성은 인터뷰 말미까지 이어졌다.

“인문학도 중요하지만 백과사전을 만드는 일은 정말 중요한 과제예요.” 백과사전을 집필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그는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내기에는 한계가 너무 큰 백과사전 출간을 위해 우선 백과사전의 의미에 관한 책을 낼 계획이다. 이를테면 왜 우리가 백과사전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답이다.

“많은 분들이 백과사전을 객관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사실 그것이 아니에요. 문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담는 것이 백과사전이죠. 그렇다면 대한민국도 우리만의 백과사전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대표가 일본인이 백과사전에 대해 쓴 글이라며 덧붙인 이야기가 있다.

“백과사전은 ‘지나간 것들’이라고 하지만 ‘지나간 것들’이 옳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 자체가 문명의 흔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열정으로 우리가 썩 괜찮은 백과사전을 우리 시대에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 [김흥식 대표는] '팔릴 수 있는 책'보다 '내고 싶은 책' 기획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는 군산이 고향이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와 서울사람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이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바탕이 되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집안의 장손이었지만 가난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나 순창에서 터를 잡았다. 일제 때 군산으로 와 직장을 잡은 아버지는 배움의 부족함을 혼자 공부하는 노력으로 극복했다. 늘 글을 가까이 했던 아버지 덕분에 그와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책 읽는 즐거움을 열어준 것은 어린 시절, 집에 배달되었던 6종의 일간지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신문 읽기 보다 소중한 읽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많은 책을 읽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노느라 바빠(?) 책과 떨어져 지냈다. 대학은 문과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형과 누나가 모두 문과를 지망하자 ‘다들 문과를 가면 집안은 누가 먹여살리냐’는 아버지의 강권에 상대(서강대)를 택했다. 억지로 선택한 전공에 마음이 갈 리 없었다. 4년 동안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책과 함께 지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출판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출판사를 차리기 위해 우선 취직을 했다. 전공을 살려 은행에 들어갔으나 아무래도 ‘내가 갈 길이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한두 차례 이직을 거쳐 광고회사 코레드에서 근무하면서 89년 출판사 〈서해문집〉을 등록하고 90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둔 후 출판사 일과는 별개로 영화평론 주간지 〈영화저널〉을 창간했다. 〈영화저널〉은 우리나라의 영화 비평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전문 저널지 창간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됐다. 그 역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을 꼽으라 하면 〈영화저널〉 창간을 내놓는다.

출판사 일에 전념한 후에는 ‘팔릴 수 있는 책’보다 ‘내고 싶은 책’을 기획했다. 자연스럽게 인문과 역사와 고전 분야의 책들이 중심에 섰다.

어릴 때부터 축적해온 독서편력으로 그는 여러 권 책의 저자이자 번역가가 됐다. 서해문집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징비록〉은 그가 직접 번역한 책이기도 한데, 우리 출판계가 고전 출간에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행복한 1등, 독서의 기적〉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야〉 〈백번 읽어야 아는 바보〉 〈한글전쟁〉등 형식도 다양한 책들이 그의 글쓰기로 책이 됐으며, 〈안중근재판정 참관기〉나 〈전봉준재판정 참관기〉 같은 역사적 자료들이 번역돼 책으로 나왔다.

2007년에 펴낸 〈세상의 모든 지식〉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책으로 꼽힌다.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모아 낸 이 책은 인류가 이루어온 모든 지식과 지성의 흔적을 독자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전해주는,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귀한 선물이 됐다.

제대로 된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을 출판인으로서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그는 서울국제도서전 기획단장과 파주 북소리 기획단장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책읽기와 강연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가 운영하는 출판산업체험센터 활성화 책임(?)을 맡아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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