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⑩ 특별한 장소, 동국사와 두동교회 - 우리 문화에 외래 종교 스며든 공간, 담고 있는 의미 커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5.11  / 최종수정 : 2017.07.20  18:04:54
   
▲ 군산 동국사.
 

군산에는 특별한 소녀상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의자에 앉은 소녀상과 달리 꼿꼿이 서 있는 소녀상이다. 소녀상이 특별한 것은 서 있는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식 사찰 양식으로 지어진 절에 일제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잊지 말자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것이다. 그 어디보다도 더 적절한 장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지역에는 이처럼 역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다른 곳에 없는 특별한 장소와 건축물들이 있다. 군산의 동국사(東國寺)와 익산의 두동교회가 대표적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것은 순수한 포교 목적이 아닌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켜 식민지를 고착화 하려는 의도였기에, 그들은 1899년 5월 군산이 개항하자 기다렸다는 듯 일본식 사찰과 포교소를 설치하였다. 1909년 6월에는 일본불교 최대 종파 조동종(曹洞宗) 우치다(內田佛觀)스님이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통(영화동)에 ‘금강선사(錦江禪寺)’라는 이름의 포교소를 개창하였다. 이후 금강선사는 1913년 현 위치(금광동)로 옮겨와 에도시대 풍의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했고, 1955년 동국사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다. 동국사가 특별한 것은 일제강점기하 전국에 세워진 일본식 사찰 500여 개 중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사찰이라는 점이다.

동국사는 군산이 고향인 고은 시인과의 특별한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자전적 소설 「나의 山河 나의 삶」과 「만인보」 등에는 동국사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일찍이 동국사에 자주 다녔던 고은 시인은 동국사 주지 혜초(慧超) 스님의 설법에 감동하여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되었고, ‘중장’이라는 법명을 받아 스님이 되었다. 이 민족의 애환이 서린 동국사에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에 국내에서 열한 번째로 사찰 경내에는 최초로 서 있는 소녀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일제가 당시 우리나라 소녀들을 끌고 가 종군 위안부로 삼고 고통 속에서 살게 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고 이를 후대에 알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 군산 동국사에 있는 소녀상.

그에 앞서 2012년 9월에는 일본 불교 종단인 조동종이 과거에 행한 과오에 대한 불교적 참회와 사죄의 뜻을 담아 동국사 경내에 참사문비를 세운 바 있어 두 기념물이 함께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밖에 동국사에는 1919년에 교토에서 만든 국내 유일의 일본 전통 양식의 종각과 국가지정 문화재 64호로 등재된 대웅전, 보물 제1718호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373여 점이 남겨져 있다.

군산의 동국사가 일제가 우리의 불교문화에 외래문물인 일본불교를 강제로 이식하려고 했던 사례라면, 익산의 두동교회는 역시 외래 종교인 기독교문화가 당시 지배적이었던 유교문화를 거스르지 않고 우리에게 합류된 사례이다. 건물 두 동을 합해서 만든 교회라 해서 ‘두동교회’라 이름이 지어진 이 교회는, 기독교가 우리 문화 속에 들어오기 전의 유교 전통과 기독교 신식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두동교회가 유난히 특별한 것은 이 교회가 김제 금산교회와 더불어 두 곳에만 남아있는 ‘ㄱ’자형 교회 건물이라는 점이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일곱 살만 되어도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 앉지 아니한다)’이라고 하여 남녀를 구별하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리하는 것을 삼갔던 당시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예배드리는 장소를 남녀가 분리되는 두 공간으로 구분한 두 개의 동을 합쳐 교회를 ‘ㄱ’자형으로 만든 것이다. 일종의 현지 토착형 선교라고 할 수 있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문화와 자율성을 존중하였을 뿐 아니라 독창성까지 돋보이는 건물인 것이다.

1929년 세워진 두동교회는 두 축의 중심인 강단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편인 동서 측에는 여자들만, 왼편인 남북 측에는 남자들만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더욱이 똑같은 ‘ㄱ’자형 건물이라도 남자가 앉는 공간이 더 길게 지어지고 강단도 남자석을 바라보고 있는 김제의 금산교회와 다르게 두동교회는 강단이 중심에 설치되어 있고 남녀공간이 똑같은 크기로 지어져 더욱 의미가 크다. 남녀의 공간을 ‘분별’하는 우리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했던 기독교적인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두동교회의 건립 사연도 특별하다. 이 고장에 박재신이라는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대를 지을 자식이 없던 것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익산시 성당면의 선교사였던 해리슨(William B. Harrison, 하위렴)은 박재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전도하며, “교회에 다녀야 집안이 복을 받고 자식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고, 이에 박재신의 아내는 3㎞ 넘게 떨어진 이웃 마을로 예배를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 박재신은 집안 여자들의 교회 출입을 반대했지만 부인이 임신하게 되자 아예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당으로 내놓았고, 1923년 5월에는 구연직 전도사와 첫 예배를 드리며 두동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박재신의 소작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교회에 나오면서 1년새 교인이 80명까지 증가하였고, 두동교회는 박재신이 곳간으로 쓰던 고패집(ㄱ자형) 창고에 마루를 깔고 예배 처소를 넓히기까지 하였다.

   
▲ 익산의 두동교회.

그러나 1929년 박재신의 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게 되면서 박재신의 마음이 급변했고, 교회로 사용하던 자신의 집을 모두 비우라고 명하였다. 박재신의 눈치를 봐야 했던 교인들의 대부분이 교회를 떠났지만, 이 중 20여 명의 사람들이 남아 교회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남은 신자가 채소밭 100평을 내놓았고, 마침 1929년 6월 소나무를 실은 배가 침몰하여 배에 실려 있던 소나무들이 두동리 근처 성당포구까지 떠내려온 덕에 적은 돈으로 목재를 구매하여 현재의 예배당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문화에 외래종교가 이식된 동국사와 외래종교에 우리 문화가 자연스럽게 깃든 두동교회 두 곳을 차례로 둘러보며 우리가 그저 무심코 지나치는 다른 건물들에도 외향만이 아닌 그만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특히 말없이 동국사 경내를 응시하는 소녀상의 모습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민족의 아픔과 당시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던 소녀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촛불로 뭉친 국민의 염원으로 세워진 새 정부는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잡고 지난 과오들을 다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게는 우리 주변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오월 푸르른 날, 새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 동국사와 두동교회로 특별한 나들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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