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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⑤ 송천역·전주역·아중역] 철도, 이제는 도시 외곽을 감싸고
전북일보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5.12  / 최종수정 : 2017.06.02  11:51:37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한참 평야를 가로지르던 철길은 도심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시선을 맞이하는 것은 건물의 숲.
수탈을 위한 ‘농업철도’였던 모습은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주 팔복동을 지나 송천동에 이르면, 철길은 지상의 차량과 사람들을 피해 그 아래로 내려간다.
도시는 그 위로 꿈틀꿈틀 그 몸집을 불려간다.

 

   
▲ 지난 4월 28일, 전주시 송천동 옛 송천역 자리를 무궁화호 열차 한 편성이 지나고 있다. 권혁일 기자

흔적도 없는 <송천역>
부활은 올까

콘크리트로 된 성채가 보였다. 아직 유리창도, 페인트 옷도 없이 콘크리트 살갗 그대로를 보이고 있는 그 건물들은 그러나 위용만큼은 대단했다.

옛 육군 제35사단이 있던 자리에 조성되는 전주의 신도시 ‘에코시티’가 슬슬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에코시티를 포함한 전주 북부 지역으로 넘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것은 전라선 철길. 1981년 도심에서 쫓겨나 당시 전주 시가지 최외곽을 빙 두르는 경로로 다시 놓인 이래 36년, 이제는 다시 도심 안으로 들어올 예정인 그 철길이다.

전주시 송천동에는 ‘송천역 사거리’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는 ‘송천역 삼거리’였던 이 지명이 증명하는 것은 ‘송천역’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

그러나 송천역과 관련한 어떤 흔적도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취재팀이 찾은 지난 4월 28일, 송천역이 있던 자리에는 전라선 철길을 넘어가는 과선교와 송천변전소 공사장이 있을 뿐이었다.
1981년 5월 25일 전라선이 전주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송천역도 문을 열었다.

 

   
▲ 송천역 자리에는 송천역의 흔적은 없고 다만 변전소 공사장이 있다. 권혁일 기자

 

덕진 시외버스 간이터미널 자리에 원래 있던 덕진역이 선로 이설로 폐지되면서 그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통근열차 수요는 나쁘지 않아서 지난 2007년 철도통계연보를 보면 그해 송천역에서 1만4480명이 열차를 타고 6826명이 내려 총 2만1306명이 이 역을 이용했다.

이것은 1만8801명을 기록한 군산선 대야역보다 높은 실적이고, 군산-전주 간 통근열차 정차역 가운데서는 익산, 전주, 군산, 삼례 다음이다. 사실상 전북의 ‘간이역’ 가운데서는 가장 붐볐다고 볼 수 있겠다.

 

   
▲ 옛 송천역 터와 과선교 너머로 전주 에코시티가 조성되고 있다. 권혁일 기자

 

그러나 통근열차가 폐지된 2008년부터는 그저 전주 북부의 ‘자리만 차지하는 건물’ 정도의 처지가 돼 버렸고, 결국 전라선 복선전철화와 에코시티 개발과 맞물려 2010년께 철거됐다. 정식으로 폐지되며 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하지만 또 앞일은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일.

전북도가 제안한 ‘전북권 광역전철망’이 현실화하면 송천역이 에코시티를 등에 업고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을 사는 역
<전주역>

   
▲ 전주역 앞에 조성되고 있는 '첫마중길'. 지난 4월 28일,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전주역 앞 첫 마중길 조성사업이 막바지였다. 전주역을 등지고 다소 어수선한 풍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치 새로운 도시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호가 청색으로 바뀌고 버스와 자가용들이 앞을 다퉈 바삐 제 갈 길을 가는 통에 이리저리 흙먼지가 휘날린다.

지난 4월 28일 낮 1시, 머리 위로 내리쬐는 다소 강렬한 봄볕을 피해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 지난 4월 28일, 여행객들로 붐비는 전주역. 권혁일 기자

 

   
▲ 전주역사에 들어서면 맞이하게 되는 광경. 열차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이 깜빡이고, 사람들은 쉴새 없이 드나든다. 권혁일 기자

 

대기실에서는 남녀노소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대선 관련 뉴스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 막 기차에서 내린 듯 “한옥마을부터 가자”며 잔뜩 들떠 이야기를 주고받는 20대 여행객들은 결국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택시 승강장 쪽으로 사이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를 가든 줄이 길게 늘어서는 여자 화장실, 전주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KTX 열차가 두 편 연달아 서는 시간대였다. 길게 늘어선 줄, 발을 동동 구르는 마음도 전해진다.

 

   
▲ 지난 4월 28일, 전주역 맞이방이 붐비고 있다. 권혁일 기자

 

 

   
▲ 지난 4월 28일, 많은 승객이 기다리고 있는 전주역 플랫폼으로 KTX가 들어오고 있다. 권혁일 기자

 

지하통로를 걷자 시원한 바람이, ‘기차를 타려면 이쪽으로 오라’는 듯 살랑거렸다.

남원에서 전주로 치과 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한 승객은 “아들이 완주 봉동에 사는데, 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다”며 빙그레 웃었다.

의자에 앉아 서류가방을 책받침 삼아 독서를 하고 있던 변호사 김도형 씨(55)는 “오늘 오전에 전주에서 재판이 있어서 출장차 들렀다가 다시 순천으로 간다”며 “편하고 안전한 데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어 기차를 애용한다”고 말했다.

전주역을 통해 출장길에 오른 사람은 그뿐이 아니었다. 박식 씨(48)는 용산으로 가는 KTX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교통체증 없이 시간 맞춰서 갈 수 있어서 열차를 자주 이용한다”면서 “KTX 운행 횟수가 부족하다는 점이나 SRT가 안 들어온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교복 차림인 이도 보였다. 중학생인 황현우 씨는 주말을 맞아 광주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전주에서 광주까지 직통으로 갈 수 있는 철도 노선이 없으니 익산으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고.

그럼에도 굳이 철도를 이용하는 이유는 “터미널이 집에서 멀기 때문”이란다.

한편 음료자판기 쪽에서는 모녀 한 쌍이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간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여수로 여행 가요. 기차여행은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네요.”

 

   
▲ 지난 4월 28일, 전주역에 멈춘 KTX 열차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권혁일 기자

 

1914년 이리-전주 간 경편철도 종착지로 처음 문을 연 전주역은 원래는 이곳 우아동에 있지 않았다.
‘상생정’, 지금의 태평동에서 출발한 전주역은 1929년에 지금의 전주시청 자리로 옮겨졌는데, 이때 전주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 모습은 지금의 전주역 건물과 모양이 상당히 비슷한데, 콘크리트로 지어진 지금의 전주역보다는 한옥 느낌이 훨씬 강하다.

물론 전라선 연선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인 전주의 중심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이용객이 몰렸다. 전주역사(史)에 따르면 1980년 전주역 승차 인원은 180만여 명, 하차 인원은 173만여 명. 합이 350만(철도통계연보 기준으로는 승·하차 합계 421만 6841명)이 넘는 엄청난 수요였다.

 

   
▲ 노송동 시절, 전주역 광장은 민중의 공간이기도 했다. 1980년 5월 15일, 계엄 철폐와 연행 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당시 전주역 광장을 메우던 모습. 전북일보 자료사진

 

   
▲ 전라선과 전주역이 외곽으로 이전된 뒤 남은 옛 역사가 헐리고 있다. 1982년 7월 5일 촬영됐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 1982년 7월 5일, 옛 전주역사가 헐리고 있는 모습. 전북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은 도시 확장을 가로막는 ‘장벽’이었고, 그래서 1981년, 전라선은 전주 외곽으로 쫓겨난다. 지금 우아동에 서 있는 전주역은 그때 세워진 것이다.

노송동 시절보다 역사는 커졌지만, 이설 개통 다음 해인 1982년 기록을 보면 전주역 승차 인원은 76만여 명, 하차 인원은 77만여 명 수준으로 ‘폭락’했다.

세월이 지나고 백제대로가 깔리고 ‘6지구’도 개발되고 전라선에 KTX도 들어오면서, 그리고 전주가 ‘내일로 성지’ 중 한 곳이 되면서 전주역은 옛 위상을 되찾는다.

지난 2015년, 전주역을 이용한 인원은 모두 255만8479명이었다. KTX 이용객 90만8817명이 포함된 숫자다.

지난 3월, 전북도는 2017년을 ‘전북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전주역은 외지 관광객들이 전주라는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관문이자, 이곳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통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전주역 시내버스 승강장과 역 광장. 권혁일 기자

페달을 밟아라!
<아중역>

전주 동부대로를 타고 전주역에서 남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왼쪽에 이제 슬슬 산 비슷한 것이 발을 뻗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엔 누런 타일이 붙어 있는 건물이 서 있다.

볼록할 철(凸)자 모양으로 된, 전형적인 1980년대 역사. 1981년 5월 25일 전라선이 이설 개통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역사만 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던 역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아중역은 언덕 위에 서서 삼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역사의 정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역 광장이라 할 만한 것이 정면에 있지 않고, 또 취재팀이 찾아간 4월 28일에는 ‘시티 가든’ 조성 사업이 한창이어서 역사 정면이 ‘접근 불가’ 상태였기 때문.

 

   
▲ 지난 4월 28일, 아중역 모습. ‘시티 가든’ 공사로 인해 정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권혁일 기자

 

2008년 여객 취급이 중지된 뒤 2011년 5월 9일 ‘복선전철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송천역과 함께 폐역된 아중역은, 그러나 복작복작하니 활기가 넘쳤다. ‘접근 불가’의 정면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뒷면의 모습이었다.

 

   
▲ 아중역사를 나와 승강장으로 가는 길. 사이 공간이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권혁일 기자

 

   
▲ 지난 4월 28일, 아중역사와 플랫폼 사이 공원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한 이용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권혁일 기자

 

   
▲ 승강장 쪽에서 아중역사를 바라본 모습. 권혁일 기자

 

한 시간에 세 번, 이곳에서는 ‘열차’가 출발한다. 기관차는 따로 없이, 사람이 발로 페달을 밟아 굴리는 차량이다. 지난 2016년 운행이 시작된 ‘전주한옥레일바이크’다.

레일바이크 차량이 줄지어 서 있는, 옛날에는 사람들이 ‘진짜 열차’를 기다렸을 플랫폼 자리 너머로는 전라선 철도가 지난다.

방음벽 같은 것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지대가 조금 높을 뿐이라 마치 아직도 아중역이 그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열차는 물론 그대로 쌩- 하고 지나가 버릴 뿐이지만.

매표소의 기능은 여전하다. 단지 파는 표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건물 모습도 옛 모습 그대로고, 다만 건물의 북쪽 날개 부분에 카페가 하나 생긴 정도다.

 

   
▲ 아중역 한쪽 날개에 카페가 들어서 있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옛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권혁일 기자

 

   
▲ 무엇이 변했을까? 지난 4월 28일, 아중역사 내부 모습. 권혁일 기자

 

   
▲ 별로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권혁일 기자

 

정작 바뀐 것은 철길이다. 분명 단선 철길이었는데, 레일바이크 전 구간이 틀림없는 복선이다. 레일바이크 운행을 위해 개량된 것이다.

“이 레일바이크에 별명이 하나 있어요. ‘고진감래’라고. 처음에는 오르막이어서 조금 힘든데, 나중에는 내리막이어서 아주 편하게 탈 수 있죠.”

 

 

 

 

   
▲ 지난 4월 28일, 아중역에서 레일바이크 한 대가 출발하고 있다. 권혁일 기자

 

페달을 밟아보면 느낌이 생각보다 묵직하다. 그런데 또 한 번 가속도가 붙으면 훨씬 수월해진다. 신이 난다고 막 밟아대면 그건 그것대로 또 곤란하다. 제동거리를 감안해서 안전거리를 20m씩은 확보해야 한다. 선로가 상·하행 한 줄씩이니, 앞차가 느려서 답답하다고 추월할 수도 없다. 이것까지 모두 철도의 특징 그대로다.

그런데 실제로 타 보면 ‘스피드 욕심’이 들 겨를이 없다. 소박하면서도 가슴 탁 트이는 주변 풍경도 바라보고, 저 바로 옆 철길을 달리는 열차도 시선으로 따라가 보고, 셀카봉을 들어 ‘인증샷’도 찍고 하다 보면 그렇다.

 

   
▲ 지난 4월 28일, 아중역 레일바이크 옆 새 전라선 철길로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고 있다. 권혁일 기자

 

   
▲ 아중역 레일바이크 코스에서 지나게 되는 터널 안, 색색깔 불빛이 들어와 있다. 권혁일 기자

 

   
▲ 아중역 레일바이크 코스 주변에 꽂혀 있는 바람개비. 권혁일 기자

 

관문(?)을 지나 알록달록한 불빛이 맞이하는 터널 두 개를 통과한 뒤 턴테이블(전차대)로 방향을 바꿔 아중역으로 돌아오게 돼 있는 이 레일바이크 노선의 전체 길이는 3.4㎞.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관계자의 말대로 ‘고진감래’다. 가는 길이 조금 힘들고, 돌아오는 길은 과장을 약간 섞으면 굳이 페달을 밟을 필요도 없을 정도다.

“위험하진 않겠죠?”
“아유, 물론이죠.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 아중역 레일바이크 반환점. 이곳에서 전차대(턴테이블)로 차량을 돌린다. 권혁일 기자

 

‘인력 열차’들은 반환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철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왼쪽 언덕 위 전라선 철길, 열차들은 쌩쌩 잘도 달리며 거침없이 전주를 빠져나간다.

이제부터는 산지. ‘산악철도 전라선’의 시작이다.

   
▲ 일러스트=이권중 기자

 

권혁일·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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