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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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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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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오빠도 아니고, 친척 오빠도 아니고, 사귀는 오빠도 아니고, 모르는 오빠도 아닌, 자신과 미묘한 관계에 있는 오빠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쓰는 호칭.’ 대학로 어느 전봇대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아는 오빠’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오빠’가 그만큼 흔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땅의 수많은 여자 대학생들은 ‘조용필 오빠’를 제외하면 아무한테나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자 선배는 ‘선배님’이라고 가리키고 불렀다. 서너 살 차이가 지는 선배한테 즐겨 쓴 호칭은 따로 있었다. 바로 ‘형’이었다. 남자들끼리 쓰는 그 ‘형’이라는 말을 여자들이 입에 달고 살았다.

요즘에는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는 대학생 또래의 여자들은 없다. ‘남친’이나 ‘여친’은 애인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이 또한 아무한테나 쓰지 않는다. 대신 과거에는 거의 금기시했던 ‘오빠’를 남자선배들에게 주저 없이 갖다 붙인다. 집집마다 하나나 둘만 낳고 말기 일쑤여서일까. 친오빠가 귀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선배도, 직장 선배도 오빠다. 그렇다고 친오빠만큼 친근감을 느끼거나 ‘어린 아빠’라는 뜻으로 쓰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호칭을 쓸 때의 전후 맥락을 살펴야 진짜 오빠인지, 선배인지, 장래를 약속한 애인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빠’는 본디 손아래 여자가 손위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 어원을 ‘어린 아빠’에서 찾는 이도 있다. 동요 <오빠 생각>의 ‘서울 가신 오빠’는 애틋하고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아내의 나갈 길을 지키라고 했던 <홍도야 우지 마라>의 오빠는 또 아빠처럼 듬직했을 것이다.

며칠 전 5·18 광주항쟁 기념식장에서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던 이가 있었다. 추모사를 마친 뒤 대통령의 품에 안겼던 김소형 씨는 “아버지의 품처럼 따뜻했다.”라고 말했다. 이 땅의 수많은 그녀들의 피맺힌 아픔을 아버지처럼 기꺼이 안아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민오빠’를 떠올린 건 나 혼자뿐이었을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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