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⑨ 양직공도와 실크로드 - 양직공도(양나라에 조공 온 외국 사신 그린 그림), 6세기 백제 국제적 위상 고스란히 담아세련되고 품격있는 백제 사신 양나라 황제에 가까이 서 있어…日·신라보다 높은 위상 증명 / 백제 무령왕 해상강국 재건 이뤄…청대 문집에서 발견된 기록 보면 신라는 백제 도움받아 국제교역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5.25  / 최종수정 : 2017.06.16  13:20:05

   
 

옛날 백제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고대 백제인을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양직공도(梁職貢圖)다. 양직공도는 6세기 동아시아 최강국 양(梁)나라에 조공 온 외국 사신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최근 돈황 벽화에서 백제인 그림이 발견되기 전까지 양직공도는 백제인을 그린 거의 유일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양직공도에서 사라졌던 제기(題記:각 나라에 대한 간략한 기록)가 발견되어 백제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흥미 있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백제사 연구의 1급 사료인 양직공도와 새로 발견된 제기를 통해 당시 백제의 대외 교류가 어떠했는지를 탐색한다.

   
▲ 양직공도 모사본 속 백제 사신

△양직공도(梁職貢圖)란?

양직공도에서 양(梁)은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를 가리키고, 직공(職貢)은 직방공물(職方貢物) 네 글자를 줄인 말로 직방은 중국 관직, 공물은 조공품을 가리킨다. 중국 왕조에서는 관직에 임명된 인물은 요즘 증명사진 찍듯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러한 관례가 외국 사신에게도 적용되어 양직공도가 탄생하였다. 양직공도는 양나라의 세자이자 화가였던 소역(蕭繹)이 당시 동북아 최강국인 양나라에 조공하러 왔던 각국 사신을 그린 것인데, 현재 원본은 사라지고 없으며 모사본만 세 종류가 있다.

양직공도 중 가장 사료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 남경박물관 소장본에는 원래 25개국 이상의 사신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12개국 사신 그림만이 남아 있다. 12개국 사신의 국가명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활국(滑國:아프가니스탄), 파사국(波斯國:페르시아), 백제(百濟), 구자국(龜玆國:중국 신강성 주변 국가), 왜국(倭國:일본), 탕창국(宕昌國:감숙성 주변 국가), 낭아수국(狼牙修國:말레이반도 국가), 등지국(鄧至國:감숙성 주변 국가), 주고가국(周古柯國: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 가발단국(呵跋檀國: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 호밀단국(胡密丹國: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 백제국(白題國: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 중간 국가), 말국(末國:서역 36국 중 하나).

   
▲ 양직공도 모사본 (맨 앞 중국 황제로부터 세번째에 위치한 백제 사신).

△양직공도로 본 백제의 대외 교류

양직공도 속 백제 사신은 무령왕 때 파견된 사신으로 추정된다. 무령왕은 6세기 동아시아 최강국 양나라에 두 차례 사신을 파견한 바 있고, 무령왕릉은 양나라 왕실 무덤인 아치형 전축분을 본 따 조성한 벽돌무덤이다. 실제로 무령왕릉에서는 “梁官瓦爲師矣(양나라 관청 벽돌을 모범으로 삼았다)”라는 글자를 새긴 벽돌이 발견되었고, 양나라 왕실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유물도 다량 출토되어 양나라와 백제의 긴밀한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

양직공도 속 백제 사신은 아프가니스탄 사신과 페르시아 사신 다음에 등장한다. 12개국 사신 중 세 번째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12개국 사신을 보면, 백제와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주변 국가들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는 지금과는 달리 과거 실크로드 문명을 꽃피운 찬란한 고대 강국이었고, 동아시아 최강국 양나라는 이들 나라와 활발히 교류했었다. 백제 역시 양나라를 통해 중앙아시아·페르시아와 교류하면서 최첨단 물품을 백제로 유입하였다.

흥미 있는 사실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백제가 일본과 신라보다 위상이 높았음을 양직공도가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양직공도 속 왜국 사신은 천으로 대충 감싼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을 하고 있어 세련되고 품격있는 백제 사신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또 왜국 사신은 백제 사신 뒤에 그려져 있다. 신라와 고구려 사신 역시 백제 사신 뒤에 보인다. 특히 백제 사신은 그림 맨 앞의 양나라 황제 바로 뒤 페르시아 사신 다음에 그려져 있다. 이는 당시 백제가 페르시아와 함께 6세기 동아시아 양나라의 핵심 교역국이었음을 보여준다.

   
▲ 애일음노서화소록(愛日吟廬書畵續錄) 속 신라 제기.

△양직공도 신라 제기(題記)의 발견

몇 해 전 획기적 발견이 있었다. 양직공도에서 영영 사라졌다고 여겼던 신라 제기(題記)가 발견된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며 나타난 신라 제기는 청대 문집 ‘애일음노서화소록’(愛日吟廬書畵續錄) 제5권에 ‘청장경제번직공도권’(淸張庚諸番職貢圖卷)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청장경제번직공도권’은 그림에 조예가 깊은 청나라 장경이 친구 이탁에게서 양직공도를 빌려와 18개국 사신도와 함께 나라별 제기를 베낀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신 그림은 사라지고 각국 제기만 남아 있다.

새롭게 발견된 신라 제기에서 시선을 끄는 내용은 신라가 “양무제 2년(521)에 신라왕 모태(募泰:법흥왕)가 처음으로 백제 사신 편에 붙어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리고 특산품을 받쳤다. 그 나라에서는 성(城)을 건년(健年)이라 부르며 그 습속은 고려(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어 나무를 새겨 표시로 삼는다. 말은 백제를 거쳐야만 통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부분과 신라는 “한(韓:마한)에 속하기도 하고 더러 왜에 속하기도 했다. 그 나라 국왕은 스스로 사신을 보내 조공할 수는 없다”는 기술이다.

△신라 제기(題記)로 본 백제

양직공도가 탄생했던 6세기는 무령왕(武寧王)이 백제의 해상강국 재건의 꿈을 이룬 시기였다. 신라 제기에 쓰여 있듯이 당시 신라는 스스로 중국 왕실과 교역할 수 없는 처지였고, 백제 사신 편에 붙어서 양나라와 교역해야 했다. 또 신라에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백제의 통역을 빌려야만 했다. 또 신라가 “한(韓:마한)에 속하기도 하고 더러 왜에 속하기도 했다.”는 부분은 많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문구지만 당시 신라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 중국 왕조가 어떠한 시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6세기 해상강국 백제

양직공도 속 백제인은 무령왕이 쇠락하던 백제의 국력을 회복시킨 후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양나라에 파견한 사신의 모습이다. 당시 무령왕은 고구려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면서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알리고자 양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양직공도와 새롭게 발견된 신라 제기는 6세기 백제의 국제적 위상이 대단히 높았고, 당시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교역을 다시금 주도하는 실크로드 해상강국으로 재도약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사료이다.

< 저작권자 © 전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고 다른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고충처리인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이메일무단수집거부현재 네이버에서 제공한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54931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418(금암동)  |  대표전화 : 063)250-5500  |  팩스 : 063)250-5550, 80, 90
등록번호 : 전북 아 00005  |  발행인 : 서창훈  |  편집인 : 윤석정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김재호
Copyright © 1999 전북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esk@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