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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블렌딩은 통합의 과학
커피 블렌딩은 통합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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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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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체의 이념이 그렇듯 다양한 맛을 한데 모아도 그 나름의 정체성 있어야
▲ 이승수 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온 나라가 커피 열풍으로 뜨겁다. 도심은 한 칸 건너 커피숍이고 거리마다 커피 향이 진동한다. 테이크아웃 용 컵 하나 들고 있지 않으면 이방인이 된 듯 뻘쭘하다. 속칭 당 떨어지는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이 약인 양 커피를 찾는다. 시고 쓰고 단맛이 뒤섞여 우르르 몸속을 파고들면 마법에라도 걸린 듯 기력이 솟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에서 종이 커피잔을 들고 참모들과 산책하는 모습은 서민 대중이 공감하는 한 편의 시였다. 커피가 음료 이상의 기능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누가 뭐래도 ‘당신이 타주는 커피’란다. 누구나 격의 없이 즐기는 커피는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언어다.

요즈음 ‘문 블렌딩’이 인기다. 커피 마니아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블렌딩 방식을 말하는데, 이 커피 배합 방식이 특이하다. 4:3:2:1(콜롬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순) 비율이다. 컬럼비아의 시고 달콤한 맛, 브라질의 마일드하고 구수한 맛, 에티오피아의 감칠맛·쓴맛, 과테말라의 시고 스모키한 맛이 섞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맛을 창출하는 것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까지 어우러졌으니 어련하지 않을까. 호사가들은 이를 황금비율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명성을 얻기 시작하더니 벌써 전주도 K 커피숍 등에서 선을 보인다. 로스팅한 콩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커피 블렌딩이란 특성이 다른 2가지 이상의 커피를 혼합하여 새로운 향미를 가진 커피를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밥으로 치면 비빔밥이나 짬뽕 같다고나 할까. 최초의 블렌딩 커피는 예멘의 모카커피와 인도네시아 자바커피를 혼합한 소위 ‘모카 자바’ 커피라고 전해진다. 모카의 신맛과 자바의 쓴맛이 섞여 신묘한 맛의 조화를 이루니 애호가들이 열광하였던 것 같다.

단종 커피를 즐겨 마시는 나는 외지에 나갈 때 낯선 커피로 인해 고충을 많이 겪는다. 구미가 안 맞는 커피에 입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맛을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터지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을 어쩌랴. 무슨 커피의 배합이냐고 질문할 계제도 아니어서 손으로 내리는 커피(핸드드립) 전문점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블렌딩은 이처럼 까다로운 것이다. 물론 생콩의 품질이나 로스팅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누가 뭐라고 해도 요체는 품질 좋은 콩과 적정 배합비율이다.

커피를 탐미하다가 블렌딩에 두 가지 법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어떤 블렌딩을 해도 맛은 한가지라는 사실이다.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에서 캐러멜 맛이 나는 게 예이다. 다른 하나는 특화된 블렌딩 커피의 맛도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리뉴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중 프랜차이즈 커피의 맛이 상향 평준화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블렌딩은 다양한 맛을 한데 모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 나름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어느 결사체의 이념과 같은 것 아닐까. 하나의 성공을 위해 다수가 결집하는, 자기 것을 적극적으로 보태야 하는……. 미각이 살아있는 한 블렌딩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맛의 연금술 블렌딩,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통합의 과학이고 언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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