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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역사에 기록될 두 정상
[남북정상회담] 역사에 기록될 두 정상
  • 연합
  • 승인 2000.05.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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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위원장은 분단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지도자로 역사에 남게 됐다.

두 정상이 한반도의 냉전 종식과 평화정착의 틀을 세우고 민족통일의 길을 여는 남북의 지도자로 평가받게 될 것인지는 3주 앞으로 다가온 두 사람의 정상회담 결과에서 가닥이 드러날 것이다.

반세기여 지속된 분단의 벽을 넘게될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의 민족문제에 대한 철학과 입장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대중 대통령] 김 대통령은 70년대 야당 지도자때부터 남북정상회의를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하는 `남북연합'에 이어 `연방제'를 거쳐 궁극적으로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3단계 통일론'을 주장하는 등 남측 정치인중 대표적인 민족문제 전문가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반공 정서가 강한 과거 군사정권하에서 용공분자로 매도되는 `색깔론'에 휘말려 남북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김 대통령이 남북 문제를 풀어나가는 진정한 주역으로 등장한 것은 정권교체를 통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당선된 9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98년 2월 25일 취임사를 통해 ▲북한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북한을 해치지 않으며 ▲남북은 서로 화해.협력해야 한다는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포용정책을 과감히 실천에 옮겼다.

그의 포용정책은 한때 북한의 잠수정 침투 및 금강산 관광객 억류, 연평해전 등으로 난관에 봉착했지만 그때마다 확실한 안보태세를 과시하고 도발불용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대북포용의 기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울러 김 대통령은 지난 2년여의 재임중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주변 4대강국과 유럽.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대북포용정책을 전파하고 이들 강대국이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유도하도록 외교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해왔다.

김 대통령은 특히 2000년 들면서 더욱 강도높은 대북 포용 드라이브를 추진,1월3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국책연구기관간 협의를 제안하고, 이산가족의 고령화를 감안해 조기에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할 것을 제의했다.

또한 2월 9일 일본 도쿄(東京) 방송과의 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상당히 갖춘 인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려면 김 위원장과의 대화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등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도 노력했다.

김 대통령의 끈질긴 대북 제안은 유럽순방중인 3월 9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절정에 달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간 대화를 통해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며 민간경협에 머물고 있는 협력수준을 정부간 협력으로 진전시킬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제무대에서 내놓은 이러한 대북 화해.협력 의사가 북한측에 가감없이 전달돼 북한이 지금까지 품어온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오해와 의심을 해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일성 주석의 3년상을 끝낸 뒤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으로 내놓은 저작은 김 주석의 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고 촉구한 `8.4 노작'이다. 김 총비서는 97년 8월4일 발표한 이 노작에서 김 주석이 생전에 통일방안으로 제시한 조국통일 3대원칙,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등 세 가지를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규정하고 김 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반드시 우리 대에 통일 위업을 이룩하자고 강조했다.

김 총비서가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새로운 통일방안이 있다면 지난 98년 4월18일 제시한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들 수 있지만 이 역시 김 주석 생전에 여러 차례 거론된 것들이다. 지난 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50주년을 기념해 김 총비서가 제시한 `민족대단결 5대방침'은 민족자주 원칙을 견지하고 애국애족의 기치 아래 단결하며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외세를 반대하며 온 민족의 연대 연합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김 총비서는 김 주석의 뒤를 잇는 `후대 수령'이자 김 주석의 `분신'으로 일컬어진다. 그런 만큼 통일 방안, 통일 철학에 있어서도 김 주석과 차별성을 보이기보다는 김 주석의 구상을 철저히 관철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4.8 합의문 첫머리에 김 주석이 제시했다는 조국통일 3대원칙의 재확인을 명기한 것이나 정상회담 의제에 논란 끝에 3대원칙을 포함시킨 데서 김 주석의 통일유훈, 특히 3대원칙을 중시하는 북측 입장을 읽을 수 있다.

김 총비서는 자주.평화적통일, 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원칙이 "온 민족 앞에 약속한 조국통일의 근본원칙"이라고 지적하고 3원칙 가운데 자주의 원칙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자주의 원칙에 대해서는 "자주권을 실현하는 것이 통일의 핵심문제"라면서 외세의존 배격을 남측에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대내적으로 김 총비서의 최대 관심사는 강성대국 건설이다. 외부 세계에는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약소국가로 대북 이미지가 고정화돼 있으나 김 총비서는 김 주석 사망 다음해인 95년 초부터 김 주석의 유훈이라며 강성대국 건설론을 주창, 현재 북한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사상, 군사, 경제 세 분야에서 강국이 되면 강성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고 이 가운데 사상.군사강국 목표는 이미 달성했으므로 남은 문제는 경제강국 건설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수용도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걸쳐 거세게 불어닥친 체제존립위기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직까지 난문제로 남아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 주석이 지난 48년 4월 남북연석회담을 계기로 김구선생을 평양에 초청한 것처럼 김 총비서도 `역사적인 평양 상봉'을 성사시켜 대내외에 `민족의 지도자'로 인식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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