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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상처남성의 성범죄와 관련 '그럴 수도 있지' 대신에 '그러면 안된다' 못박자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6.18  / 최종수정 : 2017.06.18  21:00:22
   
▲ 신은미 한국화 아티스트
 

외국에서는 ‘살인죄’만큼 강하게 처벌되지만, 국내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가는 죄가 있다. 바로 ‘성범죄’이다. “나이가 어리다, 우발적이다, 심신미약이다, 잘못을 뉘우친다, 초범이다” 등등.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타국에 비해 처벌수위가 약한데다 양형은 기본, 선처까지 해주곤 한다. 적어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삼촌이 초등학생 조카를 성폭행하고도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를 출근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면서 감히 털어놓지 못했던 기억들을 지면을 빌려 꺼내보려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오빠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우리에게로 다가오며 살갑게 이야기를 건냈다. 놀이터의 모래와는 어울리지 않는 광나는 구두를 신은 그 남자는 노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러니 한 번씩 안아보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금세 오빠를 한 번 업어보고는 나를 안으려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 치마를 걷고 팬티 속으로 손을 쑥 집어 넣는게 아닌가. 그렇게 들려진 나는 그 당혹감과 불쾌감을 그저 작은 외마디 비명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작은 아이였다. 오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순식간의 일이었다. 목표를 이룬 그 남자는 유유히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 후로 나는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긴 시간동안 불쾌한 마음의 통증을 안고 지내야만 했다. 처음 느껴보는 충격적인 기분이었다.

그땐 몰랐다. 점점 더 이런 고통스러운 일들을 자주 겪게 될 것임을. 고등학교 때 노래방으로 불러내 성폭행 하려 했던 선배 자식.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보인 성추행적 발언과 행동들. 3년 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내 술잔에 약을 타던 모습. 그림을 가르쳐 준다며 본인 작업실로 불러들여 예술영화랍시고 포르노를 틀고 마사지를 알려주겠다며 내 다리사이로 손을 밀어 넣던 작자.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더 클 수밖에 없는 고통이고 상처였다.

그 외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했던 성추행, 성희롱들을 나열하자면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사건 전후로 너무나도 뻔뻔하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태연하다는 것이다. 사과는 커녕 되레 나에게로 화살을 돌릴 때도 있었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조차도 성범죄를 마치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생각하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가벼운 마음일지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가해자 대부분의 성별인 남성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범죄에 노출되어있는 피해자 입장이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리 가볍게 여기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의 이러한 상처들은 ‘그럴 수도 있지’하며 지나가려는 사회 속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나는 인천의 작은 놀이터에서 초등학생이던 내 팬티에 손을 넣던 남자를 기억한다. 성범죄는 나 같이 인천에서 별 볼일 없던 여자애에게도 너무 쉽게 일어나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뿌리 깊게 박혀있는 잘못된 성 평등 인식으로 145개국 중에 양성평등 수준 115위를 차지할 만큼 수준이 굉장히 낮다. 이젠 ‘그럴 수도 있지’ 대신에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자.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정의’가 흔들린다면, 놀이터에서 작은 칼을 마주해야 했던 아이들이 흘린 피는 무관심속에 계속 흘러야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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