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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
  • 김은정
  • 승인 2017.06.23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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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어느 날, 소록도 주민들은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로 시작된 이 편지는 ‘헤어지는 아픔이 클 것이기에 말없이 떠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 수녀였다. 1960년대 초반, 한센병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소록도에 들어온 이들이 소록도에서 보낸 세월은 40여년. 그러나 이들은 ‘이제 오히려 나이든 우리들이 짐이 될 것 같다’며 이별의 슬픔을 대신하는 편지를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마리안느 수녀는 1962년 소록도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섬의 영아원에서 한센병 환자의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했지만 인도로 건너가 한센병 치료 전문교육을 받고 구호단체인 다미안 재단을 통해 다시 소록도로 들어와 한센병 환자들의 치료활동을 했다. 4년 뒤에 들어온 마가렛 수녀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들의 인연은 깊었다. 둘 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학교를 졸업한 것도 그렇지만 이들은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시녀회’라는 가톨릭 재속회 회원이기도 했다. 이들은 애초 5년 정도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고통을 겪는 한센병 환자들과 지내는 일상은 곧 삶이 되었다. 의사들조차 한센인들과 직접 접촉을 꺼렸다지만 자신의 무릎위에 환자의 발을 올려놓고 약을 바르고 맨손으로 고름을 짜내며 치료하며 고통을 나누었던 이들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주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

꽃다운 나이였던 수녀들은 일흔 노인이 됐다. 병까지 얻어 일상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자신들이 오히려 짐이 될까 두려워 조용히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병원에 조차 떠나기 하루 전날 귀국 사실을 알렸다는 이들이 떠날때 가져간 것은 낡은 가방이 전부였지만 남기고 간 것은 소록도 주민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 큰 울림이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께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저희의 부족함으로 인해 마음 아팠다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아주 큽니다. 그 큰마음에 우리가 보답할 수 없어 하느님께서 우리 대신 감사해주실 겁니다.(책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중에서)’

지난 주말 다녀온 소록도에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삶을 기리는 기념비를 만났다. 기적과도 같은 이들의 숭고한 삶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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