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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담의 다방학개론
H마담의 다방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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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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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근대·탈근대가 내면화된 전주 여행때 다방도 들러 쉬시라
▲ 신귀백 영화평론가

전주부성을 한 바퀴 돌았다. 도청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강의를 마치고 스물 댓명 청중들과 뙤약볕을 걸었다. 객사에서 만나 북문터로 향했다. 성벽은 헐리고 표지석만 남은 북 서 동문자리는 햇볕 피할 데가 없었다. 그래도 풍남문에서는 아치형 성문이 만든 그늘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

웨딩거리 큰길가에 자리한 강점기 시절 세워진 박다옥 건물을 두고 멤버들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풍남문 주변 고물자골목을 지나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변한 ‘전주부공익질옥’에도 들렀다. 1930년대 지어진 붉은색 벽돌의 전당포는 창연했다. 지쳐 쉬어야 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으로 올라갔다. S다방처럼 빈티지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다방이기에 선택한 곳이다. 20여 년 전, H마담은 망한 커피숍을 다방으로 만들었다. 역발상은 좋았지만 인스턴트커피와 자판기 그리고 카페에 밀린 다방이 잘 될 리는 없었다.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오너이며 레지 역할까지 하는 H마담의 ‘다방학개론’을 듣기 전에 모두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수업료다. 스마트폰 부동산 플랫폼으로서 ‘다방’이나 알만한 젊은 친구들이 찻잔을 날랐다. 마담 혼자 커피를 타야했기에. 누구도 이 귀여운 막내문화에 툴툴거리지 않았다. 찻잔이 모자라 유리컵 아닌 머그잔에 담긴 아이스커피라니….

강사인 내가 다방과 커피숍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엽차잔과 재떨이가 놓인, 성냥골을 분지르던, 선을 보던, 예술인의 안식처였던 공간임을 노인처럼 이야기했다. 한 때, 돈 없는 예술가들의 사무실로, 유명한 화가 또 서예가들의 전시공간이었다는 대목에서 잠시 아지트를 뺏긴 어르신들이 다방문을 열고 나가셨다. 커피를 다 탄 마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다음은 다방경력 40년의 레전드 H마담의 다방학개론 플래시백 요약이다.

70년대 여수에서 올라와 처음에는 ‘하꼬비’ 생활을 했어요. 그릇 닦고 청소하는 ‘시다’죠. 월급은 적고 통근하기도 어려운 데다 잠 잘 데가 없어 다방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을 잤어요. 하꼬비를 졸업하고 마침내 ‘아가씨’가 되고 경력이 쌓이면 카운터에 앉아요. 그냥 돈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네 A다방입니다.”하고 전화를 받고서 “도청 김과장님, 전화 왔습니다.”하는 ‘방송’을 했어요.

아침 일찍 오시는 분들에게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커피를 대령했지요. 다방엔 규율이 엄해서 애인이 있으면 쫓겨나야 했어요. 양장에 하이힐의 레지 시절을 지나 한복 입는 마담이 됐지요. 마담은 여름에는 하얀 모시적삼을 해 입었어요. 얼굴마담은 차만 많이 팔면 되지만 책임마담은 수입이 부족하면 월급에서 채워 넣어야 했어요. 제가 팬을 한 오륙십 명 거느렸는데 다방을 옮기면 다들 이쪽저쪽으로 우르르 몰려왔었지요. 영화배우 김진규씨와 하반영 선생님도 기억에 남아요.

허마담의 화양연화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셀링’으로 충분했다. 한 사람의 저물어가는 생애와 탈근대의 풍경을 두고 문화자원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시간적 요소를 파는, 장소마케팅으로 스토리텔러가 있는 A다방은 전주스러운 곳이다. 전통과 근대, 탈근대가 내면화된 도시 전주부성 시간여행을 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관광객들은 다방으로 가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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