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⑪ 백제와 실크로드] 페르시아에서 일본까지…백제, 실크로드를 누비다곳곳 발자취로 개방적인 글로벌 국가 입증 / 전주비빔밥 식재료 모두 문명교류로 전래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6.29  / 최종수정 : 2017.08.22  17:31:18
   
▲ ‘백제와 실크로드’ 관계도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사막을 가르는 낙타의 행렬. 동서양이 서로 만나 새로운 문명을 꽃피웠던 길, 실크로드.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 건넜다는 뜻의 ‘백가제해(百家濟海)’ 네 글자를 나라 이름으로 쓴 백제. 백제는 실크로드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실크로드 곳곳에서 우리의 선조 백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페르시아에서 일본까지 실크로드 선상에 남아 있는 백제의 자취를 정리한다.

△페르시아에서 만나는 백제

1500년 동안 베일에 싸였던 백제사의 블랙박스를 연 대발견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백제 대외관계의 비밀을 밝혀주는 열쇠다. 무령왕릉에서는 특이한 모양의 짐승이 발견되었다. 바로 진묘수(鎭墓獸)다. 진묘수는 문자 그대로 무덤을 지키는 짐승이라는 뜻이다. 진묘수는 사자의 몸에 새 머리를 한 서아시아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ffin)과 관련이 있다. 무령왕릉 진묘수는 서아시아와 지중해 일대에서 형성된 수호신으로서의 그리핀 도상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백제 묘장 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연주문(連珠文)은 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 공예품의 전형적인 문양이다. 작은 원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촘촘하게 배열한 연주문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백제에 전해졌으며, 부여 외리사지 백제 와당과 미륵사지 사리장엄함에서 볼 수 있다. 백제 연주문 장식 문양은 백제가 실크로드 동서 문명 교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전주비빔밥도 실크로드 문명 교류와 관련이 있다. 전주비빔밥의 주재료인 쌀, 마늘, 당근, 오이, 시금치, 고추 등은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식재료들이다. 한국 전통음식과 실크로드의 연관성은 우리 주변의 ‘호(胡)’ 자가 들어간 음식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전에 마늘은 호산(胡蒜), 오이는 호과(胡瓜), 참깨는 호마(胡麻), 양파는 호총(胡蔥), 당근은 호나복, 후추는 호초(胡椒)라 하여 모두 ‘호(胡)’ 자로 표기했었다. 여기서 ‘호(胡)’ 자는 수입 외래종이나 외래문화를 뜻하는 글자이다.

△인도와 관음신앙 그리고 판소리

힌두교의 나라이면서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불교의 사천왕은 원래 힌두교의 신이었으며, 불교의 여러 보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이란의 수신(水神) 아나히타(Anahita)와 힌두 여신 사라스바티(Sarasvati)에 원류를 두고 있다. 페르시아와 인도에 기원을 둔 관음 신앙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졌으며, 다시 백제를 통해 일본에 전래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 예술 판소리. 서사적 이야기를 장단에 맞추어 창과 아니리를 섞어 부르는 판소리식 공연은 실크로드 여러 지역에도 있다. 특히 인도의 판다바니(Pandavani)는 전형적인 판소리형 공연이다. 고대 인도 3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만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판다바니의 ‘판(pan) ‘은 노래를 의미한다. 판소리형 공연은 실크로드 여러 지역에서 지금도 불리고 있다.

△중국에서 발견된 백제인

옛날 백제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고대 백제인을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양직공도(梁職貢圖)다. 양직공도 속 백제 사신은 그림 맨 앞의 양나라 황제 바로 뒤 페르시아 사신 다음에 그려져 있다. 이는 당시 백제가 페르시아와 함께 6세기 동아시아 양나라의 핵심 교역국이었음을 보여준다.

광활한 중국의 서쪽 끝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 ‘돈황’. 돈황은 1,500년 전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최근 돈황 벽화에서 고대 한국인 그림이 대거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가운데는 백제인 모습도 보인다. 돈확 벽화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사실은 고대 백제인은 고구려와 신라처럼 조우관을 쓰기도 했지만 턱 끈이 없는 오늘날 야구 모자와 비슷한 ‘무후책’을 쓰기도 했다. 백제인이 돈황 벽화에 대거 등장한 연유는, 백제 유민(遺民)이 돈황으로 이주해서 살았거나 불교 포교를 위해 각국의 다양한 인물상을 벽화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백제인 인물상도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제작한 서역계 일본 보물

일본 고대사는 백제와 가장 연관이 깊다. 2001년 12월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있었다. 아키히토 일왕이 생일날 회견에서 자신이 백제 무령왕의 후손임을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일본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백제와 깊은 관련이 유물이 대량 출토되고 있다.

쇼소인은 일본이 세계 제일의 보물 창고라고 자랑하는 곳이다. 쇼소인에는 코발트 빛을 내뿜는 한눈에도 서역 페르시아 계통임이 느껴지는 유물이 있다. 최근 이 유리잔이 백제에서 가공된 것임이 밝혀졌다. 그 증거는 유리잔 받침에 새겨진 무늬가 미륵사지 금동제사리외함에 새겨진 것과 쌍둥이처럼 닮았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편 호류지(法隆寺)에는 백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불상 세 점이 있다. 그것은 금당벽화 속 관음보살과 백제관음 그리고 몽전(夢殿)의 구세관음이다. 금당벽화는 인도 아잔타(Ajanta) 석굴 벽화가 그 원류이며, 호류지 별관에 전시된 일본 국보 백제관음은 인도 양식을 포용하고 있다. 또 백제 작품이 입증된 구세관음의 보관에는 조로아스터교를 기반으로 하는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상징인 ‘일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구세관음을 제작한 백제가 페르시아와도 긴밀히 교류했었음을 말해준다.

△백제, 개방적 다문화 국가

문화는 본시 상호 교류를 통해 발전하는 법이다. 교류가 빈번했던 곳일수록 문명이 발전했고 경제가 성장했음을 실크로드는 입증하고 있다. 백제는 굳게 닫혀진 나라가 아니었다. 실크로드 곳곳에 남아 있는 백제의 자취는 백제가 바다 건너 세계 문명과 교류한 문화적 개방성을 띤 글로벌 국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는 동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 문화까지 포용하는 다문화 왕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백제가 열망한 꿈이요 힘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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