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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느림 아니고 천천히
슬로시티, 느림 아니고 천천히
  • 기고
  • 승인 2017.07.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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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는 속도가 아닌 방향·철학·교감·공감…제발 천천히 가자
▲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인디언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잠시 쉬면서 자신들이 온 길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이유는 걸음이 너무 빨라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그런다는 것이다. 컴퓨터 부팅시간을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운전할 때 신호등 앞에서 마른 침 삼키며 발 떨기 일쑤인 나다. 영혼이 몸보다 앞서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잔뜩 움츠릴 때도 있다.

인도영화 〈세 얼간이〉에 나오는 ‘비루’ 학장을 떠올린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쫓기듯 말한다. “빨리, 빨리 달려. 그렇지 않으면 짓밟혀 죽어.” 그는 하루에 단 7분간 휴식하는 중에도 그 시간마저 아까워 낮잠과 음악 감상 그리고 면도까지 해결한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앞만 보고 돌진한다. 유유자적 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서두르는 삶은 조급증과 화를 부른다니 주의해야 한다. 삼성의료원 ‘나덕렬’ 박사는 전전두엽에 충동조절센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조급증과 화를 조절한다고 말한다. “작은 일을 반드시 마무리하세요. 그리고 순간의 여유를 즐기세요. 축구에서 골이 나는 것은 순간의 응집력이랍니다.” 그는 서두르는 이유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부연한다. 화가 나 있을 때 내면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존심이 건드려졌다면 그곳이 약한 부분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려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경쟁에서 뒤질 것 같은 마음, 새로운 자극이 반복될수록 충동적이고 조급해지는 마음. 앞쪽 뇌보다 뒤쪽 뇌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외부 자극에 익숙해 있는 사람, 사람들…….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창조보다 복사나 편집에 능통한 이들은 형이상학적,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없다.

마음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일본 영화 〈안경〉은 주인공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외진 바닷가로 보낸다. 그곳에서 할일은 마냥 기다리는 것뿐이다. 무엇을? 지나가는 것을. “나는 자유를 안다. 길을 따라 똑바로 걷는 것이다. 어쩌다 인간이라 불리어 내가 여기 있는가.”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감사 체조를 한다. 무료함에 진일토록 몸을 맡긴다,

영화 〈푸른 소금〉은 귀여운 킬러 ‘세빈’과 전에 전설적인 조직 보스였지만 지금은 요리 수업 동기생인 ‘두헌(송강호 분)’이야기를 다룬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들은 천연덕스럽게 달콤 짭짤한 사랑을 나눈다. 세빈이 묻는다. “아저씨! 세상에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는데 무엇인지 알아?” 답은 한참 뒤 두헌이 조직 선배들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 대접하는 자리에서 나온다. “세 번째는 지금입니다. 여러분, 지금 싸우지 않고 뭣들 하는 겁니까?” 불안이 표출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13개 슬로시티를 돌아보며 줄곧 생각한 게 지금이다. 다녀와서 전주 한옥마을에 모인 수많은 탐방객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내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하던 일 계속하고 있었다. 성향과 목적을 묻자 해설사가 말했다. “슬로(Slow)는 속도가 아닌 방향과 철학, 교감과 공감의 개념입니다. 무엇에 못 미친다는 뜻을 가진 ‘늦다’는 것과는 의미가 달라요. ‘천천히’는요. 개별적 특성에 따라 달라요.”

제발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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