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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잉아트 - 상처의 미학
소잉아트 - 상처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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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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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이는 당신 모습이 삐뚤빼뚤한 바느질처럼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요
▲ 이승수 전북영화영상치료협회장

‘공감 터 길’, 전북대학교 정문과 구 정문 사이 500여 미터 구간 예쁜 산책로 이름이다. 원추리, 황국화 등 여름 야생화들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더 걸으면 빨간 컨테이너를 이어 꾸민 갤러리에서 이색적인 전시회도 만나게 된다.

며칠 전에는 소잉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팸플릿에 미싱 사진을 인쇄했는데 브랜드가 ‘Sun Star’다. 미싱 하면 ‘아이디얼’ 아니던가. 낯선 느낌이다. Machine이 일본식 음으로 변한 말. 원래 Sewing Machine이었는데, 바느질을 뜻하는 Sewing은 어디로 가고 미싱만 남아 바느질 기계 명칭이 되었다.

기억은 어느새 어린 시절 고향 집을 더듬고 있었다. 호롱불 밑에서 골무 끼고 밤새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처음 사온 미싱을 보듬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이웃집 다듬이 소리와 우리 집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묘한 화음을 이루며 협주곡으로 들렸다. 어머니가 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미싱 소리만 들리면 왠지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 너덜거리던 옷이 새 옷 되어 나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소잉아트가 뭔가요?” 수줍게 미소 짓던 작가가 설명을 시작했다. “바느질로 만든 예술(미술)작품을 말합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갔죠.”

여러 가지 옷, 모빌, 가방, 노리개, 지갑……. 작품이 나뭇가지나 와이어에 가지런히 걸려있는데, 대부분 형태가 둥글다. 아끼는 물건이나 마음이 모나면 안 된다는, 매듭은 나의 못난 모습이라는, 실밥을 안으로 밀어 넣어 안 보이게 하는 바느질은 억압과 같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했다. 끈 잃은 가방 옆에 나란히 섰다. 시처럼 글을 써놓았다. ‘가방아! 남들이 가진 걸 갖지 못해서 속상하니? 하지만 너는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따뜻한 손 온도를 느끼며 살게 될 거야.’

지나온 것들에 대한 기억을 자꾸 지우거나 감출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실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삐뚤빼뚤한 바느질처럼, 삐뚤빼뚤한 모습일지라도 괜찮아!’ 내보이지 않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영화 <토일렛>의 은둔형 외톨이이면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 ‘모리.’ 모리는 어느 날 엄마의 유품인 미싱으로 할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운다.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치유가 시작된다. 자기가 만든 알록달록한 치마를 입고 음악 콩쿠르에 나가서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느질이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한석규가 열연한 영화 <상의원>에서 30년 넘게 왕의 옷만을 지어온 어침장 ‘조돌석’도 바느질 철학을 말한다. “바느질이란 다른 두 세상을 하나로 묶는 것인 즉, 바늘이 들어갈 때는 자신의 혼을 집어넣고, 나올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싫든 좋든 항상 다른 세상을 끌어들여 이어가며 살고 있다. 새로운 세상과 낡은 세상, 정상과 비정상, 안과 밖, 진짜와 가짜, 큰 것과 작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경계에서 갈등이 크다.

산 지 한 달도 안 된 옷을 팔거나 버리는 사람이, 바느질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세상 이치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소잉아트를 보면서 내 마음에 저장 축적된 세상의 이미지를 모두 꺼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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