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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쯔비시와 군함도와 나오시마
미쯔비시와 군함도와 나오시마
  • 김은정
  • 승인 2017.08.04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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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三菱)는 일본의 2위 재벌이다. 1870년 선박운송업으로 출발했지만 선박운항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다각적 사업망을 구축했다. 미쓰비시는 19세기 후반, 탄광사업에 손을 대며 큰 수익을 올렸다. ‘군함도’도 미쓰비시가 탄광사업을 위해 사들인 섬이었다.

‘군함도’는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섬이다.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43년부터 45년까지 3년 동안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 징용되었으며 이중 질병과 영양실조, 익사 등으로 122명이 사망했다.

마치 군함이 떠있는 것 같다하여 ‘군함도’란 이름이 붙었지만 섬의 원래 이름은 ‘하시마’다. 무인도였으나 석탄층이 발견되면서 미쓰비시에 의해 탄광 섬이 되었다. 군함도의 탄광은 가스폭발사고에 노출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람이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고 위험한 곳이었다. ‘지옥섬 ‘이나 ’감옥섬 ‘으로 불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열 두 시간 채굴작업에 매일 동원되어야 했던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최악의 환경을 견디며 살아남아야 했다. 군함도 탄광은 일본 석탄업이 침체되면서 1974년 폐광됐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산업유산: 철강 조선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승인했다.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을 적시’ 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채 군함도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도 미쓰비시가 있다. 나오시마는 일본 혼슈 서부와 규슈에 에워싸인 세토내해의 섬이다. 세토내해는 규슈와 교토를 연결하는 해로를 안고 있어 한반도와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교통의 중요한 중심이 됐다. 그러나 세토내해의 섬에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심각한 오염과 적조로 죽은 바다와 섬은 위기에 처했다. 나오시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오시마는 1917년 일본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미쓰비시 공업단지를 유치한 이후 80여 년 동안 구리 제련소로 사용되면서 산업폐기물이 쌓이고 오염돼 황폐한 섬이 됐다.

쓰레기 섬으로 방치됐던 나오시마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일본의 교육기업 베네세 그룹이 토지를 매입해 국제캠핑장을 열면서부터다. 베네세 그룹은 이 섬을 자연과 함께 하는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함께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에코타운’-친환경도시오성계획을 승인받은 나오시마는 그 뒤로도 지속적인 투자를 더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술의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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