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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뜨거운 까닭
여름이 뜨거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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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0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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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찢어진 청바지는 미련 없이 내다 버리거나 기워서 입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찢어진 청바지가 패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숫제 여기저기(심지어는 허벅지나 엉덩이 언저리까지) 잘(?) 찢어서 신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렸습니다.’ 맞다. 겨울이 찾아온 게 원인이고, 첫눈이 내린 게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눈이 내려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는 틀렸는가? 순서가 뒤바뀌었으니까? ‘당신을 보고 싶은 내 마음이 간절해서 이토록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이 또한 순전히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비가 쏟아진 원인이 당신을 보고 싶은 간절한 내 마음이라는 거니까. ‘내 마음’이 대자연의 섭리마저 뒤바꿔 놓았다고 했으니까.

‘얼큰한 해장국을 먹었더니 지난밤에 몽땅 마신 술이 다 깨는 것 같다.’는 애주가들이 흔히들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하지만 ‘해장국이 이렇게 얼큰할 줄 알았더라면 지난밤에 술을 몽땅 마실 걸 그랬다.’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술꾼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가수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의 끝부분이다.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자꾸 ‘올라간다’고 했다. 어떤가. ‘하얀 눈 하늘에서 자꾸 내려오네’라고 쓴 것하고 비교해 보라. 찢어진 청바지처럼 발상을 바꾼 문장이 때로는 훨씬 신선한 울림을 주고 있지 않은가.

녹음이 짙은 느티나무 숲에서 안도현 시인이 쓴 시 한 대목을 떠올린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라고 했던…. 그렇다. 여름이 이토록 뜨거운 까닭은 삼복 절기나 기상이변 탓이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매미가 저토록 악을 쓰고 울어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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