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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품은 장수가야 철을 밝히다] 첨단 신소재 기술 갖고도 연맹 상생 추구한 '철의 왕국' 기지개장수·장계분지 아우르며 백두대간 품고 있는 장수 / 역사 속에서 호남 지키는 호위무사 역할 했으리라 /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던 의좋은 한 나라였던 가야 / 동서의 상생과 조화 위한 근본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8.08  / 최종수정 : 2017.08.08  22:11:50
   
▲ 팔각정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대해 국정과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2015년 3월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추진대상으로 선정했고, 2019년 최종 등재 신청을 준비 중이다. 그 중심에 장수가야와 남원 운봉가야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군산대학교 박물관장인 곽장근 교수가 청년 시절부터 30여 년간 젊음을 바쳐 연구해 온 결과로 가야가 전북 동북지역까지 아우르는 영역으로 삼국 못지않게 넓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 병사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470㎞의 산줄기를 이르는 말이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모든 물줄기가 서류와 동류로 갈라진다.(네이버사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산맥은 분리해서 각각 이름을 붙였다. 그러한 방식은 일제강점기 일본학자에 의해서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신경준의 산경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을 뼈대로 강이 실핏줄처럼 동서로 흘러온 땅을 적시며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유기체와 같다고 보았다. 백두대간을 품은 철의 왕국 장수가야라는 말에 이끌려 필자는 고대왕국을 탐험하러 가는 것처럼 현장인터뷰를 떠났다.

2017년 7월 28일 장수에 가서 보니 장수의 기상이 장수 같다. 전주문화유산연구소 전상학 책임연구원을 장수면사무소 앞에서 만났다. 한낮인 2시에 만나 두 시간 동안 장수군과 장계면 일대를 차량으로 돌면서 장수가야의 지정학적 위치 구조, 역사성과 연구 과정과 발굴의 의미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답사를 했다.

예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육십령 고갯길을 따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지점인 터널에 도착했다. 터널 건너편 출구에 초록산 풍경이 보인다. 경상도 땅이란다. 팔각정에 올랐다. 장수군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겹겹이 멀어지며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장대한 산세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요새 역할을 충분히 해 온 남성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사이 나지막한 분지는 먹거리와 생명을 품은 아늑한 여성성을 갖추고 펼쳐져 있다. 장수분지와 장계분지를 아우르며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장수는 역사 속에서 호남을 지키는 호위무사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갖춘 무사 역할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난평마을 알봉.

필자는 육십령고개의 역할도 궁금했다. 질문에 대해 전상학 연구원는 친절하게도 응답해 주었다.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육십령고개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길목이다. 문화와 경제적 교류를 위해서 이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다. 육십령고개는 산세가 깊어 60명이 모여야 넘어갈 수 있다 해서 또는 육십리 라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역사책에서 배운 6가야에 대한 것 외에 장수가야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현장에서 알아보고 싶었다.

연구원은 “장수군 가야문화유산의 분포도를 보면 제철유적과 산성, 봉수, 고분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남덕유산과 합미봉 그리고 봉화산에 모두 철광석이 가득하다. 장수군 내에만 60개의 제철유적이 발견되었다. 남원 운봉고원 제철유적지도 31곳이나 된다. 경상도에 있는 대가야와 고령가야에서는 제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전라도 장수와 남원운봉지역에 엄청난 제철유적이 남아있다. 또한 장수가야가 요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봉수대가 21군데가 있으며 백두대간 자체가 천연의 요새가 되기도 하지만 길목을 막기 위한 산성이 11군데나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수군 내에는 지름이 20~30m 되는 고총이 240기나 있다. 고총 발견 시 말발굽 즉 편자와 말뼈가 나왔다. 이는 왕급에 해당하는 지배자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동 중에 곳곳에서 커다란 봉우리들을 보며 고총이라고 한다. 난평 동네에 이르니 마을 입구에 300여 년이 된 고목이 서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적송들이 줄지어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동산 같은 것이 알봉이란다. 지름이 70m나 되는 무덤이다. 조상 대대로 신성시 여기며 지켜왔는데 촬영을 해 보니 고무덤임이 밝혀졌단다. 경주고분군에 있는 황남대총에 버금가는 크기다. 전율이 느껴졌다. 장수가야의 수많은 유적으로서 고분들이 땅속에 묻혀 사라질 위기에서 이제야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경상도가 보이는 육십령 터널.

승자의 기록에 패자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책에는 단지 6가야만 남아있다. 6가야의 명칭은 후대에 만든 명칭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사서에는 가야와 관련된 국가가 20여 개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 중에서 장수군 번암면으로부터 계북면까지 40㎞ 지역이 남원시 운봉고원과 함께 가야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됨으로 인해 가야시대에 강력한 독립적인 정치체가 존재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발전했던 지역이지만 중심지가 옮겨지면서 변방이 되고 역사 주체가 바뀌면서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문재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를 중요시 여기는가 궁금했다.

물론 그 전에 김종필 총재나 김대중 대통령도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의 후손이라고 해서 가야 연구에 관심을 많이 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호남과 영남의 화합과 상생 관계를 회복하려는데 역점을 둔 것 같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나뉜 신라와 백제는 영·호남으로 이어져 지역색의 차이로 갈등의 소지를 늘 안고 있다. 그러나 가야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은 한 나라였음을 기억하면 상생과 조화를 위한 근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그 생애가 짧고 길고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역사에서 4국이 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562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야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던 부분 때문에 외침으로 쉽게 망하기도 했지만, 연맹체의 상생은 배울 부분이다. 또한 그 당시 철을 다루는 기술이란 첨단 신소재 기술에 해당한다. 최첨단의 기술로 무장하고 화합의 국가경영을 했던 철의 왕국이 역사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다시 말해 장수가야는 백두대간의 민족정기를 품은 동서화합을 위한 노둣돌이 될 미래의 자산이다.

문정현 (사)아리울역사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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