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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⑧ 관촌역·임실역] 비수기와 성수기 사이, 그 어디쯤에서
전북일보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8.11  / 최종수정 : 2017.08.13  21:14:32
   
▲ 오원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상·하행 열차가 각각 지나고 있다. 원래는, 그러니까 복선화 이전에는 단선 철교가 촬영지점 즈음을 지났었다. 권혁일 기자

 

하늘 어딜 봐도 파란 구석이 없었다.

회색 커튼이 햇빛을 깔끔하게 막아선 가운데, 그 아래로는 구름인 듯 안개인 듯 고양이 털을 뭉쳐놓은 것처럼 생긴 덩어리 몇 조각이 고갯길을 휘감으며 저공비행 중이었다.

춘향로를 타고 슬치 남쪽 사면을 굴러 내려가면 이제 임실군 땅으로 접어든다.

길 동쪽으로는 번화한 마을이 나오고, 계속 나아가면 섬진강의 상류인 ‘오원천’과 마치 호남제일문처럼도 보이는 ‘사선문’이 차례로 인사한다.
 

   
▲ 오원천 북단에서 바라본 사선문. 권혁일 기자

 

△옛 얼음창고와 승강장 옛 시설물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또 비탈을 내려오니 펼쳐진 것은 평탄한 들녘. 조금 전까지의 풍경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관촌역은 그 평지 위에 서 있었다.

마치 학교 건물처럼도 생긴 꽤 큰 역사(驛舍)는 1997년에 지어진 것이다. 관촌역이 그때 처음 생긴 것은 물론 아니고, 1931년에 전라선(당시 이름 경전북부선) 전주~남원 구간이 개통될 때 배치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 관촌역. 권혁일 기자


관촌면사무소와 버스 터미널, 초·중학교가 있는, 그리고 고려·조선 시대 오원역이 있던 면 중심지로부터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이용객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1970년대만 해도 한 해 이용객 수가 19만여 명으로, 이는 임실역보다 근소하게 많은 수준이었다.

역과 오원천 사이에는 한눈에 봐도 오래됐음을 알 수 있는 회색 건물이 서 있다. “여기서 나서 여기서 늙었다”는 주민 임남례 씨는 ‘얼음창고’라고 설명했다.
 

“옛날에 일본 사람들이 얼음을 여기다 쟁여놨다가 전주, 군산으로 실어가고 그랬죠.”


그만큼 번성했던 마을이라는 뜻이겠다.
 

   
▲ 관촌역 앞에 서 있는 오래된 건물. 옛날에 얼음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권혁일 기자


관촌역 앞을 지나는 차량은 많지만, 그러나 이들 가운데서 관촌역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02년에 개통된 병암지하차도 때문이다.

대부분은 지하차도를 지나 쌩 내달리고, 병암리나 대리 어딘가에 볼일이 있는 차량 정도가 길 가장자리로 빠져나온다.

 

   
▲ 관촌역과 그 앞 도로 모습. 이 아래로 병암지하차도가 지난다. 권혁일 기자


이 가운데서도 관촌역에 볼일이 있는 경우는 매우 적다. 일단 열차를 탈 일이 없다. 이곳에 서는 여객열차는 이미 2008년 12월 1일부로 사라졌다.

여객열차가 서지 않게 된 이유야 달리 생각할 것도 없다. 2008년의 11개월 동안 관촌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린 이가 310명에 불과했다는 통계만 봐도 그렇다.

전주나 남원까지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는 춘향로가 그대로 관통하는데, ‘마이카 시대’에 철도가 여객 분야에서 딱히 경쟁력을 가질 수가 있었을까. 임실역과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고 말이다.

 

   
▲ 관촌역사 안은 이렇게 생겼다. 물론 승객은 아무도 없다. 권혁일 기자

 

   
▲ 지난 7월 24일, 관촌역사 안 매표소가 굳게 닫혀 있다. 김태경 기자


그런 가운데, 취재진이 찾은 7월 24일은 마침 화물도 ‘비수기’를 맞은 시기였다.
 

“(관촌역에서는)비료를 주로 취급하는데요, 1~6월은 농번기 대비로 비료가 많이 올라가죠. 지금(7월 하순)은 끝났어요.”


관촌역 관계자가 화물 플랫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근에 군부대가 있는 터라 군 관련 화물을 취급하는 것 또한 관촌역의 주요 업무에 속하지만, 마침 또 시설 공사로 한동안 관련 업무가 멈춘다고 했다. 그야말로 ‘비수기 중 비수기’인 셈이다.

그래도 ‘비수기’라고 해서 역이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날도 화물 플랫폼에서 트럭 한 대와 지게차 한 대가 비료를 나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 '비수기'라고 해서 역이 완전히 멈춰버리거나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난 7월 24일, 화물 플랫폼에서 비료를 나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권혁일 기자

 

   
▲ 관촌역 플랫폼으로 나가는 길목에 적힌 여섯 글자, "좌우열차확인". 권혁일 기자

 

   
▲ 플랫폼에서 바라본 관촌역사. 권혁일 기자

 

여객 승강장으로 나가려면 일단 좌우를 살펴야 한다. 육교도 지하도도 없이, 열차가 지나는 철길을 그대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좌우를 살피다 보면 왼쪽에 서 있는 주목 두 그루가 눈에 띈다. 아는 사람은 아는, 관촌역의 ‘명물’이다. 가을이면 붉은 열매가 맺히는데, 주민들이 이 열매를 종종 따먹기도 했단다. 임남례 씨도 그랬다고.


“아마 나무가 나보다 늙었지? 빨간 열매가 열리는데, 따먹어도 암시랑 안 혀.”


그래도 씨앗 부분에는 독성이 있다고 하니, 아무렇게나 먹어서는 안 되겠다.

 

   
▲ 관촌역의 '명물', 주목 두 그루. 권혁일 기자

 

플랫폼은 휑했다. 역명판도 없고, 타는 곳 알림 표지도 없다.

과거 여객열차가 설 적에는 플랫폼에 버스정류장처럼 생긴 시설이 있었는데, 이것도 어느 틈에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붉은 플랫폼 가운데 하얗게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화물열차와 KTX가 무심히 지나가고,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황급히 우산을 받쳐 들자마자 ITX-새마을 열차 한 편성이 비를 뚫고 남쪽으로 달렸다.

 

   
▲ 지난 7월 24일, 화물열차 한 편성이 관촌역을 지나가고 있다. 김태경 기자

 

   
▲ 지난 7월 24일, 관촌역 플랫폼을 스쳐 지나가는 ITX-새마을 열차. 플랫폼의 하얀 자국은 버스정류장을 닮았던 승강장 구조물이 있던 자리다. 권혁일 기자


권혁일 기자

 

△‘내일러’ 중간 기착지 임실

한 무리의 승객들이 플랫폼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친구·가족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 대학생 ‘내일러’ 김희엽 씨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오늘이 내일로 2일차예요. 임실역에는 치즈테마파크 때문에 들렀어요. 체험활동을 예약해 놨거든요. 임실 다음엔 여수로 갈 계획입니다.”


이날, 이렇게 유난히 청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역 광장으로 나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택시들이다.

 

   
▲ 임실역. 권혁일 기자


베이지 톤의, 동글동글한 인상을 주는 역사(驛舍) 앞의 광장에는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있었다.
 

“어디들 가시려구요?”


승객을 기다리던 한 택시기사가 친근하게 말을 건네 왔다.

그에 따르면, 다른 지역에서 관광을 위해 기차를 타고 임실역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택시를 타고 전북119안전체험관, 치즈테마파크 이 두 곳을 목적지로 부른다고. 그렇다면 치즈마을은? 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주로 걸어가는 이들이 많단다.


치즈마을과 치즈테마파크는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임실역을 기점으로 잡으면 이렇게 가는 방법이 달라진다. 물론 치즈마을을 거쳐 테마파크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 이 길을 따라가자. 권혁일 기자


임실역에서 치즈마을까지는 성인 걸음으로 20여 분 남짓.

역을 뒤로하고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철로 밑으로 굴다리가 나타난다. 그곳을 통과해 ‘임실치즈마을, 어서오세요’라고 쓰인 알록달록한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도로변을 따라 한 줄로 서서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금성교’라는 이름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장식하고 있는 샛노란 치즈 모형에 잠시 시선을 뺏긴다.

 

   
▲ 이 굴다리를 지나게 된다. 권혁일 기자

 

   
▲ 치즈마을은 임실역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있다. 치즈마을로 가는 길, 온통 치즈로 장식된 다리 너머에서 바라본 임실역. 마침 화물열차가 지나는 중이었다. 권혁일 기자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맹공격을 퍼붓고, 사람은 익어간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면, 이제 거의 다 온 셈이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느티나무 그늘이 환영 인사를 건네 온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큰 정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앞에 마을 구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안내판이 있다. 그 뒤로는 금성천(방염천)의 시원한 물줄기가 마을의 중심에서 여름 한 자락을 수놓고 있다. ‘치즈교’라는 앙증맞은 이름의 짤막한 다리도 있다.

 

   
▲ 시원한 물줄기. 권혁일 기자


‘임실 치즈’가 유명 브랜드로 자리 잡고 치즈마을이 남녀노소가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기까지엔 벨기에에서 온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의 노력이 컸다.

‘지정환’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더 알려진 그가 1966년 임실에서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임실 치즈의 역사는 시작됐다. 연평균 기온, 강수량 등 기후조건과 자연환경이 젖소를 사육하는데 알맞아 목장과 유제품 공장 등이 속속 자리를 잡았다.

 

   
▲ 임실치즈테마파크. 권혁일 기자


치즈마을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임실치즈테마파크가 나온다.

치즈테마파크는 치즈판매장, 치즈&식품연구소, 레스토랑, 치즈숙성실, 유가공공장, 홍보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치즈 판매장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유럽의 성과 닮은 건물이 떡하니 자태를 드러낸다. ‘동화 속 나라’에 온 듯한 기분도 내본다.

 

   
▲ 임실치즈테마파크. 권혁일 기자

 

   
▲ 정말 '테마파크'다. 동화 속 풍경처럼도 보인다. 권혁일 기자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 앞에서는 한 아이가 양팔을 휘젓고 있고, 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그 광경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치즈마을과 치즈테마파크는 20대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단연 '핫플레이스'로 꼽힌다. 포털 사이트에서 '임실 여행'을 검색하면 치즈마을과 치즈테마파크에 다녀온 이야기가 넘쳐난다.

 

   
▲ 임실치즈테마파크 내 ‘치즈 캐슬’. 권혁일 기자


정종인 임실역 부역장은 “기차에서 내린 내일로 여행객들은 주로 치즈마을이나 치즈테마파크로 가는 길을 물어오곤 한다”고 말했다.

점차 활성화돼가는 임실역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는 “육군 35사단이 전주에서 임실로 이전하면서 군인들도 많이 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역과 부대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영된다고.

지난해 6~8월 기준 임실역 이용객 수는 월평균 6315명. 지난 한 해 이용객이 월평균 6099명이었으니, 여름철, 그러니까 ‘내일로 시즌’의 이용객이 많은 편이다.

다만 아직 ‘활성화’의 효과는 본격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역 앞 슈퍼마켓에서 만난 주민은 ‘활성화’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인 답을 내놨다.
 

“글쎄요……. 옛날보다 사람이 늘진 않은 것 같은데…….”


시간과 투자가 좀 더 필요한 걸까?

지난 2015년 임실역을 이용한 이는 모두 7만3627명이었다.

 

   
▲ 지난 7월 25일, 임실역 플랫폼. 권혁일 기자


7월 25일 낮 12시 20분, 임실역.

상하행 플랫폼에 딱 하나씩 있는 벤치와, 그 벤치 위로 드리운 푸른 지붕, 그 뒤로 보이는 푸른 들판과 더 뒤쪽의 능선이 만드는 풍경이 자못 목가적이었다.

고요를 깨고, 남쪽에서 무궁화호 열차 한 편성이 달려와 그 풍경에 자기 몸을 보탰다.

익산으로 향하는 이 무궁화호에서 내린 이는 단 두 명.

15개월 된 아이와 함께 내린 공성원 씨는, “휴가를 맞아 친구가 사는 집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아이 장난감이 잔뜩 담긴 가방은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뭉게구름처럼 가볍고 평화로워 보였다.

 

   
▲ 익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내린 이는 단 두 명. 이들을 내려놓고 열차는 다시 북쪽으로 출발했다. 권혁일 기자

 

   
▲ 무궁화호 열차와 공성원 씨 일행이 역을 빠져나가고, 임실역은 낮잠 시간을 맞았다. 권혁일 기자


공 씨 일행이 떠나고, 열차도 떠나고, 임실역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김태경 기자

 

   
▲ 일러스트=이권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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