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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대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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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승인 2017.08.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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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비극 / 희생자 명복을 빌고 유족에 깊은 위로를
▲ 최진영 독립영화 감독

작년 모 영화제로부터 제작지원을 받아 올해 4월에 제주도에서 촬영을 마쳤다. 현재 후반작업이 진행중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사실 10년 전 썼던 시나리오를 가지고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 썼던 시나리오를 이명박 정부 때 모 단체에서 주관하는 시나리오공모전에서 수상을 했고 박근혜 정부 때 제작지원을 받아 문재인 정부 때 완성을 했다며 아주 긴 여정의 영화라고 농을 치고 다니는데 사실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비극의 역사를 소재로 창작을 한 다는 건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제주도민의 삼분의 일인 3만명이 희생당한 4·3사건은 제주공동체의 파괴 뿐 아니라 여전히 제주도민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죽음을 숫자로 치환하는 걸 경계하지만 4·3은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그야말로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는 ‘기억의 사회성’을 처음 지적하였는데 한 사회에서 ‘무엇이 기억할만 것’이며 어떻게 그것이 기억되는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집단적 기억’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기억이 있다고 한다. 제주도민에게 4·3은 집단적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엊그제는 무장대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어제는 경찰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당하고, 오늘은 오빠가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고, 집이 불타고…. 구술생애사 논문을 읽으면서 더 이상 활자로 이 비극의 역사를 마주한다는 게 고통스러워 논문을 덮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왜 굳이 이 비극을 재연하려고 했을까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럼에도 제작비는 받았으니 그 책임에서 또 자유롭지 못했기에 꾸역꾸역 해를 넘기고 봄을 맞이하고 결국 4월에 촬영에 들어갔다. 유채꽃이 만발했던 제주에서 전주, 서울, 대구, 제주 등지에서 모인 스탭과 배우들이 매일 새벽에 기상하여 산으로 들어가 촬영을 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촬영하는 우리들에게 “혹시 4·3 영화를 찍냐. 잘 찍어라”고 할 정도로 그 만큼 4·3은 주민들에게 집단적 기억, 나아가 외부인인 우리들에게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할 사회적 기억으로 인식됐다.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카메라로 재연해야 하는 창작자들의 입장에서 윤리적 태도와 책임감은 실제 그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웠다.

제주에 갈 때마다 항상 들르는 곳이 있다. 이틀 동안 400여명이 학살당했던 북촌리. 거의 같은 날 제사가 진행되는, 대가 끊겨져 무남촌(無男村)이라고 불리는 곳. 6월에 사운드 믹싱 작업을 하러 제주에 다녀왔을 때 다시 한번 들렸던 북촌리에는 해녀분들이 작업장에서 열심히 해산물들을 손질하고 계셨다. 보기에 일흔이 넘는 할머니께서 굽은 등을 벽에 기댄 채 해산물을 다듬고 계셨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엄마의 피젖을 빨던 갓난 아기가 혹시 저 할머니는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봤다.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생존과 사투를 벌이며 묵묵히 오늘을 보내고 있다.

고통스러운 준비기간이였지만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하나를 알아간다. 고통과 대면하는 일이야말로 잘못됨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 4·3사건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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