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우리고을 인물 열전
[우리고을 인물 열전 14. 정읍시 영원면] 남다른 애향심·투철한 애국심…독립운동 뿌리 깊어백제 때 군사적 요충지·최대 지방거점 / 선사·청동기시대 유물·유적 많이 발굴 / 고장 역사·인물 집대성한 책자도 펴내
김재호 기자  |  jhkim@jjan.kr / 등록일 : 2017.08.21  / 최종수정 : 2017.08.22  17:22:39
   
▲ 백정기 의사
 

정읍시 영원면은 시청 북서쪽 15㎞ 지점에 위치한다. 정읍시 이평면과 덕천면, 고부면, 그리고 부안군 백산면과 주산면에 빙둘러싸여 있다. 이웃 이평면과 경계를 이루는 천태산은 영원면의 주산이고, 부안군 동진면 동진강 하구 쪽에서 고부면까지 이어지는 고부천이 영원평야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젖줄이다.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영원면은 마한시대에는 구소국이었고, 백제시대에는 고사부리군이었다. 백제 고사부리군의 중심지는 은선리 토성이었지만, 백제 멸망 후 그 정치적 중심지가 현재 고부면 고부 소재지로 옮겨졌다고 한다.

고사부리군은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사비시대 오방성의 하나인 중방성이 이 곳에 설치됐다고 보는 것이다. 백제시대 최대 지방거점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에서 이곳은 고부군 북부면이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개편 때 현재의 영원면 구역이 획정됐다. 영원면의 행정구역은 장재리, 앵성리, 운학리, 은선리, 풍월리, 신영리, 후지리, 청량리 등 7개리 32개 마을이다.

영원면 지역에서는 2002년 구석기시대 유물인 유문암제 석기가 발견됐고,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운학리 2기, 은선리 11기)도 다수 발견됐다.

2017년 현재 영원면 인구는 2,000명 정도로 줄어든 상태지만 2005년 영원면의 역사와 현황, 인물 등을 집대성한 ‘영원면지’를 발간했을 만큼 지역민들의 애향심이 남다르다.

△독립운동

영원면 후지리 출신인 은세룡(1872~1964)은 조선 독립을 계획하고 동포들이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뜻있는 주변 선비들과 함께 1926년 황극교(黃極敎)를 창교, 이끌었다. 그의 독립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에 체포돼 1938년 전주재판소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옥해서도 한복착용, 일본말 사용금지, 창씨개명 반대 등 배일활동을 계속했다.

은선리 출신의 양재 권순명(1891~1974)은 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였다. 18세에 간재 전우의 제자가 되어 왕등도와 계화도에서 공부했다. 일제에 붙잡혀 삭발을 강요당하자 장도로 자신의 목을 찌르며 항거했고, 창씨개명을 끝까지 반대했다. 영원 태산사에 배향되었다.

운학리 라홍균(1886~1984)은 8000석 큰 부자였고 군자금 지원 등 평생 독립운동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았다. 그의 동생 백봉 라용균(1895~1984)은 임시정부 전북대의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고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의원에 이어 4·5·6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보건사회부장관을 역임했다. 국회는 합리적인 정치활동가였던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9년 모범적인 정치인을 격려하는 ‘백봉 신사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1896~1934)는 영원면 은선리 갈선마을에서 성장했다. 1919년 3.1운동을 목격,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33년 이강훈, 이원훈 등과 함께 홍구공원에서 유기찌 주중일본대사 등에 대한 암살계획에 참여했다가 체포, 이듬해 옥사했다. 해방 후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효창공원에 안장됐으며, 1963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 그를 기리는 의열사 성역화 사업이 2004년 영원 현지에서 완공됐다.

△정·관계

후지리 출신 김형래(1940~2010)는 서울 서초구에서 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배문환은 풍월리 출신으로 정읍시의회 2·3·4대 의원(4대 의장)을 지냈다. 후지리 출신 김형욱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하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역임했다. 앵성리 박옥은 국립보건원에서, 후지리 김형원은 제41회 사시에 합격,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운학리 정학용은 정주읍장, 수성동장을 역임했고, 최근 익산시 부시장으로 간 김철모씨는 지사, 부안부군수를 지낸 권재민씨는 금곡 출신이다.

△학계

장재리 오덕렬은 교육부 기획예산담당관, 국립교육평가원장, 제주 탐라대 총장 등을 지냈다. 운학리 라종일은 독립운동가 라용균의 아들이다. 경희대 교수, 일본대사, 우석대 총장 등을 지냈다.

후지리 출신의 김인숙은 원광대 가정대학장을 지냈다. 대한가정학회 전북지회장, 한국영양학회 호남지부장 등을 역임했고, ‘건강과 식생활’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풍월리 출신 신일균은 신경외과전문의, 청량리 출신 송옥렬(서울대 법대)은 사법·행정·외무고시 3과에 모두 합격한 수재다. 금곡 출신 정재철 전 백산고 교장은 향토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

은선리 김지웅은 사시 39기 출신으로 서울 중앙지검검사,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등으로 일하다 2007년 변호사 개업했다. 후지리 출신 신형철은 사시 40기로 부산지법 부장판사다.

△군인·경찰

후지리에서 살았던 조재미는 영원 출신 최초의 장군이다. 육사 2기인 그는 4·19 후 서울지역 계엄사령관을 지냈고, 63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앵성리 김명환은 육사 5기로 1군 포병사령관 등을 지냈다. 운학리 정동조는 해사 28기이고, 해군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정동조의 동생 정승조(육사 32기)는 이라크 자이툰부대장을 비롯해 특전사와 야전부대장을 두루 거친 후 함참의장을 지냈다. 신영리 출신 이정욱은 부안경찰서장을 역임했다.

△경제계

이상균(1925~)은 신영리 출신으로 1944년 19세 때 강제 징용으로 일본 북해도로 끌려가 혹독한 탄광 노동에 시달렸다. 현지 사업에 성공한 그는 1986년 형 상영과 함께 고향을 방문, 마을회관 건립, 마을 진입로 포장, 논 5000평 희사, 부안 개암사 입구 벚나무 꽃길 조성, 이웃돕기 성금 등에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고향은 1995년 전북대상 봉사상, 애향운동본부 애향대상 등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후지리 출신의 양석규는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를 포기해야 했다. 간난신고 끝에 대학을 졸업, 미국으로 이민한 사업가다. 1991년 영원초등학교 장학사업을 시작, 지금까지 정읍지역 수백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운학리 송현만(호남주류 대표)은 민주평통 전북 부의장을 역임했다. 하림그룹 상무 문경민씨는 백양리가 고향이다.

△문화예술체육계

장고의 명인 이명식(본명 이이동, 1912~ 1986)는 장재마을 출신이고, 상쇠 놀음의 최고수로 평가받는 전사종(1918~1991)은 부안군 백산면 거룡리에서 태어나, 결혼 후 영원면 앵성리 미전마을에서 살았다. 17세에 전통 쇠가락을 이어온 김광래에게 사사, 1943년 대표적인 우도풍물인 정읍농악단에 들어가서 활동했다. 서울 국악예술고의 전신인 국악예술학교에서 전사섭 등과 함께 풍물을 지도했다. 1965년 창단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농악부 지도를 맡았고, 76년부터 84년까지 국악예고에서 민족예술전문인 양성에 힘썼다.

한국 최고의 소리꾼 은희진(1947~ 2000)도 영원면 출신이다. 후지리 출신 은희진은 9살 때 광주에서 정정렬의 수제자 오천수에게서 판소리를 배웠고, 동편제의 거장 박봉술에게 적벽가를 배웠다. 정읍국악원에서 활동하다 국립창극단에 입단, 현대 판소리 명창의 중심에 섰다.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 남원춘향제와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 수상 등 명실상부한 명창 반열에 올랐다. 1997년부터 2000년 작고할 때까지 전북도립국악원 예술감독으로 고향을 위해 일했다. 효문마을 출신 정읍신문 이준화 편집국장은 20여년간 지역언론 창달을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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