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7. 고지도가 그려낸 고창의 정취 - 조선시대 지리정보에 생활사까지 담은 '아름다운 그림'회화 기법 묘사로 실용성에 美 더해 / 창살모양 어전 등 구체적 묘사 눈길 / 목적 따라 지도 속 표현양식 달라져 / 선조들 기술·노력 결집 으뜸실용서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8.31  / 최종수정 : 2017.08.31  22:37:50
   
▲ 전라도무장현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아름다운 고지도가 있다. 조선시대 지금의 고창군 무장면을 그린 「전라도무장현도(全羅道茂長縣圖)」이다. 당시 무장현에 있던 무장읍성의 내부가 비교적 소상하게 묘사되어 있어 지도를 통해 당대의 풍경과 생활사까지도 엿볼 수가 있다. 지도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동헌과 객사 등 관아의 실제 모습이 회화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어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지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지도는 읍성이 주변 지역보다 크게 그려진 군현 지도의 특성을 지닌 채 현대의 지도와 같이 완벽한 축척을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산과 바다로 이르는 물길과 사람들의 흔적을 담은 마을과 길 등이 마치 한 폭의 회화처럼 그려져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지도이다.

지도의 여백에는 사방 경계까지의 거리와 산과 하천 그리고 포구의 이름, 민가의 수, 논밭 등의 기록이 적혀 있어 지역의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읍성 남문에서부터 나와 홍살문을 지나며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과 성벽을 견고하게 표현한 모습이 흥미롭다. 남문에는 진무루(鎭茂樓)가, 읍성 안쪽에는 시장(市場)과 동헌, 객사 그리고 둥근 원형의 감옥(獄)과 연못도 그려져 있다. 남문 앞쪽에는 남산 솔숲의 울창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고, 특히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활짝 핀 모습과 일동면에는 이석탄(李石灘) 신주를 모신 충현사(忠賢祠)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지도 오른쪽 하단에 을미맹춘(乙未孟春)으로 시작되는 글을 보면 을미년 이른 봄 시기(맹춘은 음력 1월을 칭하기도 함) 봄이 무르익는 고장의 아름다운 찰나를 사진 찍듯 그린듯하다.

   
▲ 전라도무장현도 부분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 전라도무장현도 부분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서쪽 해안의 심원죽도(心元竹島)에는 전죽봉산(箭竹封山)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대나무만을 별도로 관리하던 봉산(封山: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이다. 그 곁에 물결을 일으키며 배를 타고 고기를 잡거나 짐을 싣고 다니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도 정겹지만, 특히 다른 지도에서 보기 힘든 고기 잡는 전통적인 도구인 창살 모양의 어전(漁箭)이 그려져 있는 것이 독특하다. 사실 남아있는 읍성과 변치 않는 지형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하고 그 밖의 기록들은 문자로 확인하면 되지만 당시 읍성 주변의 모습이나 구체적인 정취는 오롯이 남겨진 이 지도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지도 속에 의미 있고 아름답게 표현된 공간과 어우러지는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노라면 당대 사람들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안목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시금 배워 아름다움을 되돌려 놓아야 할 듯싶다.

지도 속 무장읍성은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지어진 성으로 사적 제346호로 지정돼 있다. 진무루 주변의 석축 성곽을 제외하고는 흙으로 쌓인 토성으로 우리나라 읍성 중 지어진 연대가 가장 정확하게 알려진 성이다. 병마절도사 김저래(金著來)가 호남 여러 고을 백성과 승려 2만여 명을 동원해 4개월 동안 쌓았다고 하며, 원래는 옹성을 두른 남문과 동문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옹성이 사라져 남문과 동헌, 객사 등이 남아있다. 읍성은 지방의 관부(官府)와 주민의 거주 지역을 함께 빙 둘러쌓은 성으로, ‘읍(邑)’이라는 글자 자체가 성으로 둘러싸인 고을을 형상화하였다. 따라서 읍성이 자리한 곳은 지역 행정의 중심이었으며, 동시에 많은 사람의 생활공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 광여도 무장현지도

 

   
▲ 1872년 지방지도 무장현지도.

「전라도무장현지도」와 또 다르게 무장읍성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광여도』의 「무장현」 지도를 보면 관아(衙, 아), 창고(倉, 창), 객사(客舍)와 무기를 세워놨던 군기(軍器) 등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도의 표현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1872년지방지도』의 「무장현지도」는 읍성의 표시가 훨씬 자세하다. 성문만 해도 『광여도』에 없는 동문 등 문이 추가로 표시되어 있고, 관청의 경우 내아(內衙), 관청(官廳), 관노청(官奴廳), 작청(作廳), 형청(形廳) 등이 세부적으로 구분되어 나타나 있다. 군기고(軍器庫) 옆 훈련청(訓練廳)의 모습과 향청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지도를 그리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중심에 담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라북도 고창은 고창현, 무장현, 흥덕현이 부군폐합령에 의해 하나의 군으로 통합된 경우로 본래는 읍성이 세 곳이나 있었고 동헌과 객사, 향교도 셋씩 있었다. 이중 고창시내 자리 잡은 고창읍성은 사적 제145호로 서산의 해미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 읍성으로 손꼽힌다. 고창읍성은 무장읍성보다 더 늦은 조선시대 단종 원년(1453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석성이다. 이곳도 애초에 그 목적이 방어에 있었던 것을 보면 근방이 호남내륙의 전초기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고창읍성은 모양성(牟陽城)으로도 불리는데, 백제시대 산을 의미하는 ‘모’와 처소나 방위를 나타내는 ‘량’이라는 글자를 본 따 고창을 불렀던 모양부리(毛良夫里)에서 유래했다. 둘레는 약 1.7㎞, 높이는 4~6m로, 축성 당시 관아건물 22동과 연못, 수구문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1976년에 성문, 성벽을 비롯해 일부 건물이 복원되었다.

고창읍성에는 본래 민가가 거의 없이 관아 건물만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남아있는 읍성 가운데 가장 많은 관아 건물을 복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읍성과 또 다른 점은, 대부분의 읍성은 남문이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고창읍성은 남문이 없고 오히려 북문이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까닭은 고창이 동쪽과 남쪽이 높고 서북쪽이 낮아 산을 둘러쌓은 읍성도 자연히 평지에 가까운 북쪽에 정문을 내게 되었다.
 

   
▲ 지승 고창현지도

 

   
▲ 광여도 고창현지도.

두 읍성이 자리했던 곳은 주변의 산과 강, 바다 등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그러한 까닭에 고창읍성과 대나무 숲은 영화 「왕의 남자」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고, 무장읍성 가까이에 있는 선운사는 동백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드라마 「대장금」에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었다. 고창읍성 성문 앞 광장에는 판소리의 집성자 신재효 선생의 고택이 있고 그 곁에는 판소리 공연장인 동리국악당이 들어서 있다. 이처럼 똑같은 장소이지만 우리 옛 지도에서 보이는 것과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 속 멋진 구도의 화면으로 보이는 것, 웅숭깊은 업적을 남겨내는 것도 그 땅이 건네는 힘의 표현일 것이다. 지역의 풍경은 깊은 고민을 담아내거나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주고 사연을 건넨다.

옛 지도를 통해 당대의 정세나 생활상을 파악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요즘이야 위성과 드론이 땅의 지형·지리를 한눈에 알게 하지만, 조선시대 고산자 김정호를 비롯하여 우리 국토의 지도를 제작하고 지리지를 편찬한 사람들이 남긴 고지도를 보면 어찌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 지형의 모습을 담아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들도 종종 기존의 군현 지도를 엮거나 참조하기도 했겠지만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확인해 지도를 그리고 지역에 대한 여러 고민까지 탐구하고 담아내며 노력한 전문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지도는 단지 지리적인 위치만이 아닌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선생이자 당대 기술과 노력으로 집약된 으뜸 실용서가 아닐까 싶다.

가을의 고창 선운산 일대는 동백을 대신하여 잎 없는 꽃대를 밀어내며 붉게 피어나는 꽃무릇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구월, 가을 문턱에 들어서며 네비게이션이 건네는 음성과 위성지도를 뒤로하고 「전라도무장현지도(全羅道茂長縣地圖)」속 길을 따라 고창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아름다운 고지도를 지금의 관광지도에 응용해도 멋들어질 듯 싶다. 그때와 지금을 중첩해 오늘을 비춰보는 것도 지도에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고창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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