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참여&소통, 2017 시민기자가 뛴다
[마을학개론 ② '마을시민'과 '마을주의자'] 농촌 문제 스스로 책임질 '마을시민' 깊이 뿌리내려야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9.13  / 최종수정 : 2017.09.13  23:13:42
   
▲ 지난 5월 16일 진안에서 열린 제10회 마을만들기 전국대회 조직위원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농촌마을을 재생하려면 농민, 주민 말고도 마을에 시민이 많이 살아야 한다. 즉 다종다양한 ‘마을시민’들이 어서, 많이 하방해 지역에, 마을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한다.”

△잘 학습되고 훈련된 ‘마을시민’ 필요

여기에서 말하는 ‘시민’이란 도시에 사는 행정적 협의의 시민이 아니다. 근대 이후 사회에서 도시 지역이나 국가의 중심을 이루는 구성원이었던 그 ‘시민(Citizen)’을 말한다.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의무를 가지는 존재인 ‘시민(Citizen)이다. 이같은 시민의 개념은 18세기 봉건사회를 혁파하려는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프랑스혁명 등 ‘시민혁명’을 계기로 본격 등장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의 기본 원칙에서는 “인간은 자유롭게,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천명한다. 제2조는 자유, 소유,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으로 시민의 권리를 새기고 있다. 시민과 민주주의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농촌마을의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 근본적,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으로 풀어야 한다. 농촌마을의 근본적 병인과 한계는 일단 사람의 절대적 양도 부족하고 사람의 근본적 질도 모자라다는 점일 것이다. 농촌마을에는 일단 일을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있다 해도 농사기술 전문가 말고는 거의 없다. 그것도 노인 말고는 별로 없다. 지역 내부의 기존의 인적자원만으로는 협동농업이나 마을공동체사업을 감당하는 데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장벽이 높은 것이다.

하물며 농사도 아무나 지어서 안 되듯, 농촌 일도 아무나 해서 안 된다. 마을공동체의 미래와 운명을 사사로운 외부 용역업자에게 맡길 수 없다. 위험하다. 상부의 행정, 외부의 전문가가 아닌 내부의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농촌마을에는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마을시민’이 절실하다. 이러한 ‘마을시민(Commune Citizen)’이란 ‘지역공동체적 사회자본, 혁신적 인적자본으로서, 마을 또는 지역사회공동체사업에서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농촌 및 지역 주민’을 뜻한다.

△마을시민이라야 지속가능한 ‘농촌생활’

특히 마을시민은 마을공동체사업의 책임주체인 ‘마을기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역량을 갖춘 책임있는 사업주체 역할과 책무를 감당할만한 유능한 인력이다. 가령 귀농인 출신 마을주민이라면 ‘왜, 귀농했는지’ 이제는 스스로 자각하고 자족할 수 있는 단계로서, ‘뭘 해서 먹고 살지’ 농사를 짓든, 농사를 짓지 않든 마을에서 먹고 살 자신감과 사회적 책무를 깨달은 상태이다. 마땅히 그럴만한 수준과 경지에 이르면 귀농한 외지인 처지라 해도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닌 당당한 마을·지역사회공동체의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의 대부분 소농, 영세농으로 분류되는 평균적 귀농인들은 농사로 먹고 살기 어렵다. 아쉽지만 전업농부의 꿈과 욕심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겸업농업인, 일본의 반농반X(엑스)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마을시민’으로서 현실에 기반을 둔 귀농생활계획을 정교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마을시민’이란 “어설픈 낫과 호미 보다, 저마다 도시의 소시민으로 용케 버티면서 챙겨둔 생활의 농기구를 꺼내드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창조적 귀농인을 말한다.

모름지기 마을이라면 농부는 물론 농부가 육체를 다치면 고쳐줄 의사, 농부가 마음이 아프면 달래줄 성직자, 농부가 아이를 낳으면 보살피고 가르칠 교사, 농부의 고민을 함께 풀어줄 연구원, 농부가 사는 마을을 아름답게 표현할 문화예술인이 함께 살아야 마땅하다. 또 농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세상에 대신 들려줄 작가, 농부의 삶과 운명을 고쳐줄 사회운동가, 농부의 소득을 높여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줄 기업가, 농부의 집을 짓고 농기계를 고쳐줄 기술자, 농부의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줄 상인도 한 데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 마을은 공동체도 되고 사회도 되고 우주같은 대동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 마을시민과 마을주의자로서 농촌에서 살아가는 방법 등이 담긴 관련 서적.

△ ‘마을시민’을 넘어 ‘마을주의자’로

그런데 이미 우리 농촌에는 이런 마을시민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마을시민들이 살아갈만한 이유와 조건이 미비하거나 성립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우리 농촌은 충분히 공동화, 형해화된 상태다. 이런 농촌을 살려보겠다는 선의를 품고 작심하고 하방을 감행하는 도시민조차 마을시민으로 살아갈 실제적인 준비와 훈련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을과 지역을 재생하려면 그 일을 책임지고 맡아할 마을시민부터 발굴하고 양성하는 ‘지역사회디자이너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 같은 실질적인 정책과 제도가 시급하다.

나아가 귀농인 또는 마을주민이 ‘마을시민’의 단계를 넘어 2차로 진화하면 ‘마을주의자’의 경지로 올라선다. ‘마을주의자’는 “왜 도시를 벗어나 귀농을 해야하는지” 남에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충분히 설명, 설득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상태다.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만 챙기지않고, 남과 더불어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이타적인 몸과 공익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마을공동체사업의 계획이 준비된 성숙하고 안정된 마을주민을 말한다.

결국 ‘마을주의자(Commune-ist)’란 국가와 정부, 자본주의와 정치경제학의 구조악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다. 마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부대끼며 생활하며 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을 앞장 서 세우고 꾸린다. 사람 사는 대안마을을 일구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게 꿈이다. 머리는 도덕적이고 진보적이며 마음은 정의롭고 양심적이다. 말과 글은 용기있고 지혜롭고 슬기로우면서 행동은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다. 곧 세상을 좀 더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려는 사회혁신적인 인간이다. 이런 인간형을 기존의 무정부주의나 사회주의로 충분히 표현할 길이 없으니 ‘마을주의’라는 새로운 말이 필요했다.

△마을주의자들은 공동체의 정의 믿어

‘마을주의자’들의 정체성은 어느 정도 ‘공동체주의자’라 할 수 있다. ‘마을(Commune)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따르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를 믿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와 ‘공동선’을 무시하거나 훼손하는 일체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반대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 상태와 보유한 가치가 그를 둘러싼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사실 조차 미처 자각하지 못한다. 자유주의자들이란 오로지 자기 혼자 잘 나서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존재라고 공동체주의자들은 비판한다. 하지만 마을주의자들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정의(Justice)를 믿는다.

가령 19세기 웨일스의 직물업자로서 공장개혁가이자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의 사례는 공동체주의, 마을주의의 정의와 선의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언은 산업에 대한 공동협동통제와 ‘통일과 협동 마을’의 창설을 주장했다. 이 마을에서 주민은 수확고를 증가시키고 더불어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같은 오언식 공동체는 인디애나 뉴하모니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곳에 설립되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의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운동도 실패했다.

오언의 혁명은 시기상조였을까. 무모하고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경쟁체제에 대한 비난, 협동과 교육에 대한 강조, ‘불건전한 환경이 일으킨 어리석은 결과를 없애면 인간은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오언식 사회주의 또는 공동체주의 운동의 교훈과 메시지는 후세에 인류공동체의 경험자산으로 전승되었다. 가령 오늘날 우리 농촌지역에서 마을시민들과 마을주의자들이 함께 벌이고 꾸리는 ‘사회적경제 기반의 공산·공유 생활공동체마을’의 모습으로 말이다.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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