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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사 종걸스님 & 사진
동국사 종걸스님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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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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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일상 사진 / 신문사·박물관에 / 부디 기증하시라
▲ 신귀백 영화평론가

나도 봤다. 1200만을 동원한, 송강호 주연의 80년 광주 영화를. 엄마는 우셨다. 아들은 부감으로 잡은 택시 추격 신이 우습다고 했지만 나름 역사공부를 했을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저 영상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찍었지?’에서 시나리오에 앞선 트리트먼트를 시작했을 것이다. 보는 사람은 그냥 보지만 찍어 본 사람은 어떤 각도에서 어떤 극악한 환경에서 찍었을까를 안다. 감독은 영상을 찍은 외국인 기자만을 상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태워 준 택시운전사를 기억한다.

이준익 감독이 만든 <박열>은 사진 한 장이 단초가 돼서 영화화됐다. 불령조선인으로 형무소에 갇힌 남자가 애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찍은 널널한 사진 말이다. 물론 아나키스트인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과 시대상 등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엔딩에서는 사형수 박열과 일본인 아내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영화 속 장면과 오버랩되며 끝이 난다. 이렇듯 잘 된 사진은 이야기를 전한다. 하나 더.

겨울. 맨상투에 한복 차림의 한 남자가 가마에 올라 쏘아보는 사진이 있다. 가마꾼 둘과 제복 입은 순사 두 명이 엑스트라가 된 사진에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란 시가 탄생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시를 쓴 시인의 삶은 87체제 이후 격변에 빠진다. 글쎄, 라이카였을까? 무거운 카메라를 든 사진사도 추웠을 텐데.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봉준이’를 쓴 시인 안도현은 기억해도 체포된 대장을 붙든 사진사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은 낙관을 찍지 않는 예술이기에.

전주역사박물관에는 근대 전라북도의 많은 사진을 소장하고 있다. 전주의 근현대에 대한 책을 쓰면서 양해를 구하고 갖다 썼다. 그러고도 모자라 물매가 깊은 일본식 절 군산 동국사를 찾았다. 스님께서는 소장한 자료 사진으로 전주 군산에서 여러 번 기획전을 연 바 있으니.

원하는 사진이 있었다. 1907년 헐리기 전의 성벽과 서문(패서문)이 고스란히 남은 사진에는 전주객사 풍패지관 뒷쪽의 무성한 나무숲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미공개 사진이었다. ‘무엇으로 보답하리이까’하는 눈빛으로 쭈뼛하는 나에게 스님은 “그냥 써”하시면서 강점기 시대 덕진호 주변의 사진까지 몽땅 usb에 담아 주셨다. 스님은 연세가 있지만 컴퓨터를 잘 쓰신다.

낙관 대신 카피라이트를 말하는 동그라미 마크에 스님 자 빼고 종걸이란 이름을 넣어 사진을 실었다. 최근에 일본군도 한 자루를 들고 다시 동국사를 찾아갔다. 동안 사재를 털어 구입한 강점기 시절의 유물로 박물관을 건립하고자 함을 알기에. 이참에도 근대 이리의 사진을 몽땅 파일로 담아주셨다.

찬바람이 불면서 장례식장에 여러 번 다녀왔다. 연세 드신 어른들이 돌아가시면서 그분들이 남긴 사진들도 사라진다. 그 사진 뒷배경에는 한벽루가 째보선창이 또 내장사와 더불어 인물과 미시사가 있을 터인데 말이다. 신문사나 박물관에서는 근현대 일상의 소소한 사진들을 기리고 있다. 부디 기증하시라. 소정의 상품도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참! 1980년의 영상에 37년 후 낙관을 찍은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이 온다. 9월 29일 익산 마한교육문화회관의 초청에 응했다. 독일기자 피터가 찍은 광주의 참상을 영화 뒤에 살짝만 걸친 의도에 대해, 추격신이 엄벙함에 대해 물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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