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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푸드와 적정 기술
와일드 푸드와 적정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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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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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명의 틀에 갇혀 매뉴얼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한심함
▲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2017년 6월 초에 무주 산골영화제에서 ‘맷로스’감독 영화 <캡틴 판타스틱>으로 힐링 시네 토크를 했다. 숲속에서 와일드 스쿨링을 하며 살아가는 아빠 ‘벤’과 6남매의 삶을 그린 영화인데,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원시적으로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다용도 칼을 선물한다, 핸드폰도 아닌 칼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공연한 걱정이 앞섰다. “공부는 어떻게 하고……. 저 야성(野性)을 어디다 쓴다냐?”

객석 중앙에 앉은 관객 20여 명이 시종 진지하기에 물었더니 홈 스쿨러 들이란다. 손에는 팝콘 대신 감자가 들려있었다. ‘인간은 말이 아닌 행위로 규정된다.’라는 대사를 공유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별을 보고 길 찾는 법 배우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한 학생의 반문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돌아오는 길, 시내로 들어오면서 어떤 경계를 넘는 듯한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가을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특히 로컬푸드·와일드 푸드 등에 눈길이 간다. 우연이 아닐 터다. 9월 22일부터 3일간 진행한 ‘완주 와일드 푸드 축제’에 가봤다. 냇가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논에서는 메뚜기와 우렁, 미꾸라지도 잡았다. 밀떡, 가제, 메추리, 감자 등을 구워 먹는 체험도 하고 로컬푸드도 골고루 먹었다. 영화 속 벤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추억을 먹고, 건강을 먹고. 있는 그대로 자연의 모습에 동화되고, 그 산출물을 누리는 일이 축제로 즐기고 말 일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유인원 형상을 한 원시인들이 뼈를 사용하여 돼지를 잡는 장면이 나온다. 일을 마친 그들이 뼈를 공중으로 던지는데, 창공에서 회전하던 뼈가 순식간에 우주선으로 바뀐다.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문명의 발달과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류. 그 앞으로 뼈가 달려든 것이다. 뭘까, 태고의 전령이 뜻하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기본만큼은 이어가자는 전갈 아닐까. 과거의 포식자가 되어버린 기술문명에게 영화가 묻는다.

적정기술(適正技術)이라는 게 있다. ‘어느 특정한 지역(미개발 된)의 사정에 알맞은 기술적 해법을 제시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경제학자 ‘슈마허’는 중간규모의 경제를 꾸려나가기에 적절한 기술이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하며 중간기술이라고 정의하였는데, 후에 이 기술이 적정기술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과학기술원 ‘김찬중’ 박사는 이를 ‘생계의 기술’과 ‘생존의 기술’로 나누어 설명한다. 식량 증산이나 양어장 확충 등이 생계형 기술이라면, 아프리카의 옥수수 숯탄·몽골의 축열기·캄보디아의 태양광 발전기 등은 생존의 기술이다.

작년 겨울 완주군에서 개최한 로컬 에너지축제 ‘나는 난로다.’를 참관했는데, 지금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적정기술이다. 다양한 난로가 저마다의 특성을 뽐내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이에 열광하였다. 불 다루는 기술이 생존의 기본기술 아니던가. “가스레인지 없으면 라면 못 끓여요?” 한 출품자가 좌중을 향해 묻는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기술문명의 틀에 갇혀 매뉴얼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체득하며 즐기는 가을 축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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