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9. 봉동씨름과 남원 만복사지 저포 이야기 - 봉동서 천하장사 기운 받고 만복사지서 저포 던져볼까"봉동에서는 힘자랑 말라" 주민화합의 제사 지내며 강가에 횃불 두르고 씨름…전국대회 우승 유독 많아 / 부처님에게 이긴 사람 얘기, 김시습 소설 '만복사 저포기' 기막힌 상상력 남원에 남겨…놀이 유래·방식 의견 분분
문민주 기자  |  moonming@jjan.kr / 등록일 : 2017.10.12  / 최종수정 : 2017.10.12  22:17:24
   
▲ 남원 만복사지 전경. 전북일보 자료사진
 

“천~하 장사 만~만~세~” 빛 고운 한복을 입은 이들이 나와 구성진 소리로 흥겨운 노랫가락을 이어간다. 씨름판에 천하장사가 탄생함을 알리는 소리이다. 요즘에야 익숙지 않지만 얼마 전만 해도 명절 즈음이면 온 가족이 한데 둘러앉아 TV에 나오는 씨름대회를 지켜보곤 하였다.

한 해의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풍요의 계절이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맘때쯤 우리는 예로부터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여럿 모여 이야기꽃도 피우고 놀이를 즐기며 흥을 보탰다. 사실 노는 데 엄청난 의미나 목적이 있으랴마는, 풍년을 비는 놀이, 마을의 화합과 평안을 비는 놀이, 내기를 위한 놀이, 겨루기 놀이 등 다양한 형태의 놀이가 뒤섞여 긴 세월을 이어오며 우리의 역사와 생활 속 민속놀이로 내려오고 있다. 이 같은 오래된 전통과 함께 내려온 지역의 민속놀이로는 봉동의 씨름을 들 수 있다.

완주군 봉동에 전해지는 봉동씨름은 단순한 겨루기 놀이가 아니라 마을의 당산제와 함께 지켜온 지역의 자산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본래 씨름은 동서고금 가리지 않고 성행했던 인류 공통의 풍속이지만 우리만의 전통 역시 긴 시간 이어지고 있는 특별한 민속놀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래로 조선시대의 씨름은 유희 종목이자 왕의 놀이로서, 또는 사신 대접을 위한 기예이자 양반과 평민을 가리지 않는 민간놀이가 되어 왔다.

   
▲ 봉상면과 우동면이 합쳐진 봉동읍, 『1872년지방지도』, 「전주지도」.

봉동만의 특별한 씨름이 전해지는 봉동읍은 과거 봉상면과 우동면의 여러 마을이 합쳐진 곳으로, 이곳에는 ‘봉황이 날아갔다’는 뜻의 봉상(鳳翔)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봉산리의 봉실(鳳實) 등 봉황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남겨져 있는 곳이다.

이러한 상서로운 땅의 기운을 지닌 봉동에는 강둑을 따라 커다란 노거수가 8그루나 있는데, 이중 ‘봉동 당산제단’이라 써진 제단이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서 300여 년 역사의 봉동당산제를 올려 왔고 올해도 봉동읍민의 날인 10월 10일에 당산제가 열렸다. 오래전부터 해거름 무렵 평안을 기원하고 주민들의 화합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강가에 횃불을 두르고 씨름을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봉동에서는 힘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이 내려올 만큼 봉동의 씨름은 유명하다. 이는, 전국씨름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황소를 탄 사람들 중에 봉동출신이 유독 많아서 전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봉동 씨름은 본디 선 자세에서 샅바를 잡는 오른씨름이었다가 전국대회에서 왼씨름 한가지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선 자세로 샅바를 잡는 왼씨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봉동씨름 대회는 애기씨름, 중씨름, 상씨름으로 치러지고 있는데, 애기씨름은 말 그대로 아이들의 씨름이고 중씨름은 청소년의 씨름, 상씨름은 성년남자들의 씨름이다. 한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이 도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밤이 깊은 시간까지도 횃불을 환하게 밝히고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오랜 시간 주민의 화합과 지역의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가 함께 있어 봉동씨름의 특별함을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씨름이 겨루기 놀이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관과 내기의 형태로 남아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겼던 민속놀이로는 윷놀이를 들 수 있다. 이 윷놀이는 여러 형식의 놀이가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특별한 이야기와 더불어 전해지고 있는 남원 만복사지의 저포를 들 수 있다.

   
▲ 김시습, 『금오신화』 표지와 김시습의 초상.

조선시대 김시습(金時習)이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남원에 살았던 주인공 양생(梁生)이 “부처님과 저포(樗蒲)놀이를 하여 이겨 인연을 얻었다.”는 내용의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가 실려 있다.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보다도 더 기막힌 저승과 이승의 사랑 이야기를 남원에 남겨 놓은 김시습의 상상을 따라가 보면 그 사연의 매개가 되는 저포놀이가 있다.

“…젊은 청춘 남녀가 만복사를 찾아가 향불을 피우고는 각기 제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양생은 저녁 기도가 끝나자 법당에 들어가서 소매 깊이 간직하고 갔던 저포를 꺼내 불전에 던지기 전 소원을 빌었다. ‘자비로운 부처님 오늘 저녁 부처님과 함께 저포놀이를 하려 합니다. 제가 지면 법연을 차려 부처님께 갚아드리고, 부처님께서 지시면 아름다운 아가씨를 얻게 해주시옵소서.’ 축원을 마치고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이겼다. 기뻐하며 다시금 불전에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꽃다운 인연을 바라옵니다.’ 그 뒤로 불좌 뒤에 깊숙이 앉아있으니 얼마 안 되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김시습의 상상에서 나온 소설 속 소재이지만 도대체 저포놀이가 무엇이길래 주인공이 부처님과 겨루며 인연을 걸었을까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당시 저포놀이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긴 놀이로 《조선왕조실록》과 다른 문헌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대중적인 놀이였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6권엔 맏형수 이씨(李氏)의 묘지명이 나오는데, “용이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연천현(漣川縣)으로 갔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선비(先妣) 숙인(淑人)이 술 담그고 장 달이는 여가에 형수와 저포놀이를 하여 3이야 6이야 하며 그 즐거움이 융융하였다…”라는 문구가 전해지는 등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즐긴 놀이의 일종으로 그 방법이 윷놀이와 비슷하다.

저포(樗蒲)는, 저(樗: 가죽나무)와 포(蒲: 부들)의 열매가 모양은 같으나 색이 달라서 이 열매로 주사위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저포는 원래 중국의 놀이로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시기에 이미 있었다고 하고,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노자(老子)가 서융(西戎)에서 배워온 것으로 호족들은 이것으로 점을 친다’라고 적혀 그것이 아주 오래된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정확히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 문헌을 참고하면 최소한 백제시대부터 저포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저포의 놀이방식은 사실 오늘날 윷놀이와 매우 비슷하여 윷놀이와 같은 놀이 혹은 그 기원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에 따라 저포를 뜻하는 탄희(攤戱)와 윷놀이를 뜻하는 사희(柶戱)가 같다고 주장하는 견해와 두 가지를 다른 놀이로 분명히 구분하는 견해가 문헌으로 모두 존재한다. 『동국세시기』에도 “사희는 저포이자 탄희”라고 일컫고 있고, 『목은집시고(牧隱集詩藁)』에 나온 「저포시」는 그 내용이 윷놀이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저포와 윷놀이가 다르다는 주장에 의하면 두 놀이가 엄밀하게는 놀이 방식과 명칭들이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 둘을 구별한다.

신원봉이 쓴 『태평어람』과 이고(李翶)의 『오목경(五木經)』이 윷놀이와 다른 저포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이며,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사희변증설」 역시 저포가 윷놀이와 가까운 다른 놀이라고 하였다.

“백세 뒤 나의 무덤에 표할 적에

마땅히 꿈속에서 죽은 늙은이라 써 준다면

거의 내 마음을 안 것이라

천 년 뒤에는 나의 회포를 알아줄까.”

김시습은 59세로 죽기 직전에 「아생(我生)」이라는 시를 써 현실과 꿈속을 넘나들며 살았던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엄청난 상상으로 이야기를 쏟아낸 김시습도 당시 저포놀이를 매개로 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이야기를 남원에 남기고 백세도 못 살고 떠났다.

이 가을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풍경을 놀듯이 찾아보며, 봉동에서 기운을 받고 만복사지에서 영화 속 대사와 함께 마음으로나마 힘껏 저포를 던져보고 싶다. 《왕의 남자》 속 명대사처럼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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