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21. 흥부전에 담긴 가치 - 남원 땅 흥부가 전한 나눔 메시지를 지역의 힘으로인월·아영면 발상지 유력성산리 박첨지 설화 비슷…연하다리·화초장바위 등 지명에 지역의 복원 노력 / 신분 상승한 졸부 행태 가난한 농민의 삶 투영…조선 후기 생활상 반영·사회 불만 해소 역할도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11.09  / 최종수정 : 2017.11.09  23:28:15
   
▲ 남원 흥부마을 박첨지 묘.
 

“태산같이 쌓인 곡식 누구를 주자고 아껴서 이리 몹시 때렸을까.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장손으로 태어나서 선영(先塋, 죽은 조상) 제사 모신다고 호의호식 잘사는데 누구는 버둥대도 이리 살기 어려울까. 차라리 나가서 콱~ 죽고 싶소!”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만 들어보면 맞고 들어온 사람 위로는 못할 망정 자신의 처지를 보태 한탄하는 넋두리이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흥부의 아내로 놀부네 갔던 흥부가 실컷 맞고 돌아온 것을 보고 한 말이다. 진짜 흥부가 기가 막힐 말이지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장자 중심의 가족제도에 의한 재산 상속의 차별과 조선 후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말로 흥부전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이기도 하다. 이러한 『흥부전(興夫傳)』은 많은 식솔을 위해 노동을 하는 가난한 농민을 동생 흥부로 표현을 했고, 신흥부자와도 같은 삶을 사는 이를 형 놀부로 표현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흥부전(興夫傳)』은 조선시대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판소리 『흥보가(興甫歌)』 또한 존재한다. 이 판소리 사설 버전은 전라북도 고창 출신 신재효(1812~1884)가 1864년부터 10여 년간 정리한 것으로, 흥부가(興夫歌), 박타령, 흥부타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이 같은 흥부전은 사실 작자와 연대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정조와 순조 시대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이 흥부가를 특히 장기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볼 때 18세기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남원시 흥부마을.

그 흥부전의 유력한 발상지로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아영면이 꼽힌다.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은 흥부가 태어난 곳이며,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정착했다가 훗날 복을 누리고 살았던 곳이라는 것이다.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에 등장하는 “전라도는 운봉이요, 경상도는 함양이라. 운봉·함양 두 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라는 대목 속 운봉읍과 함양군 사이가 곧 성산리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또 성산리에 전해오는 박첨지라는 사람에 대한 설화도 흥부전의 줄거리와 비슷하여, 남원 기원설에 설득력이 보태진다.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박첨지는 부유했지만, 매우 인색하여 이웃과 소작인들에게 못되게 굴었고,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내쫓았다. 훗날 동생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때도 매를 때려 쫓아냈다. 이후 함양 땅에서 민란이 일어나 박첨지가 죽게 되자 평소 박첨지를 괘씸하게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죽은 박첨지의 시체조차 거두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부자가 된 아우는 형의 소식을 듣고 마을로 찾아와 동네 사람들에게 돈과 제답(祭畓)을 주며 해마다 형의 제사를 지내 달라고 부탁하였고, 성산마을 사람들은 결국 박첨지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성산리에는 연비봉, 화초장 바위, 흥부네 텃밭, 연하다리 등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이 지역의 복원 노력이 더해져 흔적으로 남아 있다.

   
▲ 「1872년 지방지도」 남원부. 지도의 왼편으로 표시된 북쪽에 성산이 보인다.

또한, 남원에 살았던 춘보라는 천석꾼이 흥부의 모델로 지목되기도 하고, 그 밖에 이야기의 배경을 평양으로 지목하는 1833년에 쓴 필사본 『흥보만보록』 등을 비롯하여 다른 판본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어찌 됐든 흥부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별별 품팔이를 다 했던 흥부 부부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한 농부인 흥부가 “우리 품이나 팔러 갑시다”라고 부인에게 이야기하고는 가래질하기, 전답 갈기, 이집 저집 다니며 이엉 엮기, 비 오는 날 멍석 걷기, 땔감 하기, 말짐 싣기, 말편자 박기 등의 품을 팔고, 흥부 아내는 방아 찧기, 자리 짜기, 떡 만들기, 술 거르기, 나물 뜯기 등을 하며 동네의 잡일을 닥치는 대로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 노력에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자 곡식을 빌리러 관청을 찾아가는 흥부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다. 당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있다는 환곡을 얻으려다, “가난한 백성이 어찌 나라의 곡식을 그냥 가지려는가? 매는 맞아 보셨소?”라며 비아냥거리는 관아의 사람에게 매품 거래를 하게 된다. 하지만, 매를 대신 맞고 곡식을 받기로 한 날 나라에서 사면령이 내려져 매품도 팔지 못한 흥부가 천근만근의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선 여러 품팔이를 마다치 않고 살아가던 가난한 백성의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무엇을 해도 잘 풀리지 않던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며 얻은 박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 박에서 나온 물건들이말로 당시 백성들이 갈망했던 품목일 것이다. 흥부 부부가 슬근슬근 톱질하니 온갖 것들이 박에서 펑펑 나오는데, 불로초를 비롯하여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환혼주(還魂酒), 장님을 눈뜨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수많은 약재와 약주가 나오고, 논어, 맹자, 사략, 통감 등 책도 나온다. 그리고 자개장롱, 삼층장, 동래 반상, 안성 유기, 곳간을 가득 채우는 곡식과 모시와 비단 등에 목수까지 나와 집도 지어주고 돈벼락에 대박을 맞은 흥부의 모습으로 당시 귀하게 여기는 것과 신분 상승을 위해 백성도 책을 보며 공부를 해야 함을 암시했다.

그리고는, 대박을 맞은 착한 동생 흥부에게 샘을 내며 어설피 따라 하다 쪽박을 차게 된 놀부 이야기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메시지를 담아 대리만족을 얻게 해준다. 어느 고을이나 있을 신분 상승한 졸부의 얄미운 행태나 가난한 아우 같은 농민의 삶을 투영한 흥부전의 내용은 조선 후기 생활상이 잘 반영된 것으로 대박과 쪽박으로 뒤집어 불합리한 당시 경제 상황과 세태를 비판하고 사회의 불만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형제가 화해하는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된 흥부전이 남긴 해학과 풍자는 우리에게 권선징악이나 징벌보다 중요한 형제애와 보은과 나눔의 메시지도 전해준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쌀쌀한 계절, 소외된 이웃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네며 흥부전에 담긴 나눔의 가치를 지역의 힘으로 귀하게 여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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