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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를 향한 두 가지 시선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12.07  / 최종수정 : 2017.12.07  23:07:16
   
▲ 유람선에서 바라본 현재의 군함도. 연합뉴스
 

【생각 열기】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섬의 모양이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軍艦島)’라고 불리며 일본어로는 ‘하시마(端島)’라고 한다.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이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이곳을 개발, 탄광 사업을 실시하며 큰 수익을 올렸으나1950~60년대 일본 석탄 업계가 침체되면서 서서히 몰락해 1974년 폐광됐고 현재 무인도로 남아 있다.

특히 군함도는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당한 곳이기도 하다. 국무총리 산하 기관인‘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端島) 탄광 강제 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 조사>(2012)에 따르면 1943-45년 사이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징용되어 강제 노역을 했다.

당시 군함도는 가스 폭발 사고에 노출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고 위험한 곳이어서 ‘지옥섬’ 또는 ‘감옥섬’이라 불렸다. 이처럼 노동 환경이 열악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은 하루 12시간 동안 채굴 작업에 동원되었다.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에 따르면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 중 질병, 영양실조, 익사 등으로 숨진 조선인만 122명(20%)에 이른다.

한편, 2015년 7월 5일(현지 시간)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됐다. 그러나 이 유산에는 조선인 5만 7900여 명이 강제 동원됐던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7개 시설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 군함도는 무엇을 하던 곳이었습니까?

△ 군함도가 지옥섬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군함도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생각 키우기】

<읽기 자료 1>

- 강제징용자 한 서린 일본 ‘군함도’를 가다

지난 8일 오후 일본 규슈 나가사키만 앞바다 외딴섬 하시마(端島). 초목이 거의 없는 불모의 섬은 회색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황량하게 떠 있었다.

피스 크루즈(평화의 항해)에 참가한 일본 시민단체 회원 100여명과 함께 선착장에 닿자, 이내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지옥문’이라고 불렀던 들머리가 나타났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 어렵다던 단 하나뿐인 통로였다. 뭉툭한 굴 모양의 두꺼운 콘크리트로 된 지옥문에서 강제동원됐던 이들이 마주쳤을 공포와 불안, 고립감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을 지나자, 악명 높던 미쓰비시 하시마탄광 강제노역 현장이 앙상하게 골조만 남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생생하게 드러났다. 식민지 한국인들을 끌고 가 임금도, 식량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침략전쟁에 쓸 석탄을 캐도록 내몰았던 바로 그곳이다.

“하시마는 지옥섬, 감옥섬이었다.” 하시마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최장섭(85·대전)씨는 지난달 말 국내에서 만났을 때도 치를 떨었다. “막장에서 죽도록 일하고, 어둡고 습기찬 숙소로 돌아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배고프고 힘들어서 날마다 몸에서 쥐가 나는 바람에 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45년 8월 원폭이 떨어질 때까지 2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섬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12년 전 작고한 경남 의령 출신 서정우씨는 14살 때 끌려갔던 하시마의 참혹한 생활을 다음 같은 증언으로 남겼다. “하시마 생활은 좁고, 덥고, 졸리고, 고달팠다. 몸이 아파 작업이라도 빠지면 심하게 매질을 당했다. 외길뿐인 제방 위로 올라가 고향 쪽을 바라보며 죽을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살아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40도까지 올라가는 해저 1000m의 갱도에서 하루 12시간씩 노동에 내몰렸다. 비좁은 막장에서 누운 채 석탄을 캤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탄갱을 나오지 못하는 생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치려다 빠져죽거나, 붙잡히면 마구 두들겨맞았다. 당시 탈출하다 익사한 한국인이 40~50명 됐다는 게 서씨의 기억이다. 군국주의 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하시마에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은 500~800명으로 늘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1925~45년 하시마에서 숨진 한국인은 122명이었다. 질식·외상·변사 등이 압도적이었다. 구타나 가혹행위, 탈출 기도에 뒤따른 변고를 짐작케 한다. 전쟁 말기 노동강도가 더 강화된 44~45년 한국인 사망률은 일본인의 4.7~5.5%보다 갑절 이상 높은 12.3~13.9%였다. 하시마는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져 있다. 애초 남북 320m, 동서 120m, 표고 40m인 작은 섬이었다. 석탄이 발견된 뒤 매립으로 면적 6.3㏊, 둘레 1.2㎞, 남북 480m, 동서 160m로 커졌다. 섬 둘레에 높이 10m 안팎 콘크리트 절벽을 둘렀고, 그 안엔 채탄·저장·수송·주거용 건물 70여동이 숲처럼 빼곡했다.

군함도(軍艦島·군칸지마)라는 별명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에서 건조중이던 일본 해군 전함을 닮았다’는 1920년대 일본 언론 기사에서 비롯됐다. 요즘도 일본인들은 이 섬을 ‘군칸지마’라고 부른다. 이날 ‘평화의 항해’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전쟁 책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는 나가사키 시민단체 쪽이 제안했다. 8월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폭 68돌을 맞아 추모행사에 참여한 여러 단체 회원들이 참가했다. 나가사키 시민단체는 섬의 역사와 강제동원 피해자 증언을 담은 14쪽 소책자를 이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하시마가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침략 전쟁의 필수 자원인 석탄을 캐도록 하고 임금조차 주지 않은 전쟁 범죄의 현장’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도쿄에서 온 가코쿠라 유키(38)는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섬에 흥미가 생겼다. 상륙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참가자들은 남쪽 광장 근처 갱 어귀, 저탄장 등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는 잔해들을 1시간쯤 돌아봤다. 중앙의 수직갱 통로, 북쪽의 숙소·식당 등은 붕괴 위험이 있다며 접근을 막았다.

나가사키항에서 하시마로 오가는 배 안 모니터에선 하시마를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나 ‘해저탄광 유적’으로 소개하는 관광용 화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고바야시 노리오(53·이바라키현)는 “일본이 한창 잘나가던 근대화 당시를 연상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강제동원된 한국인들이 임금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임금 문제는 잘 모르지만 한일협약으로 다 지급한 것으로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정부는 16년 처음으로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섰던 하시마를 홍보해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74년 폐광 뒤 출입을 막았던 하시마를 2009년부터 관광객에게 개방했고, 산업화 유적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중이다. ‘전쟁 범죄를 일으킨 가해의 기억은 축소하고, 근대화 상징이라는 면만 포장하려 해서는 일본의 미래가 없다’는 경고는 나가사키 시민사회에서도 작지만 뚜렷하게 들렸다. (한겨레 2013-08-14)

△일본 정부는 ‘군함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읽기 자료- 2>

- 세계 열강 전쟁터 된 유네스코

“일본 정부가 신청한 군함도는 세계유산으로 실어 주고 일본 측이 싫어하는 위안부 기록물은 내치는 작태를 볼 때 유네스코에 공정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 지난달 31일 유네스코(UNESCO)가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8개국의 14개 민간단체가 신청한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적으로 보류하는 결정을 내리자 격분한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유네스코는 보류 결정에 대해 일본과 주변국의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는 좀더 관련 당사자의 토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미국이 유네스코 탈퇴를 결정하자 이스라엘도 동반 탈퇴를 밝혔고, 이에 질세라 중국은 유네스코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2019년부터 유네스코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가 될 전망이다. 교육과 과학, 문화 교류를 맡은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왜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는지 짚어 보았다.

지난해 서울의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르는 데 실패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물론 문화재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시는 2012년 문화본부에 한양도성도감과를 설치하고 매년 60억원씩 그동안 약 300억원의 예산을 한양도성 복원에 쏟아부었다. 박원순 시장은 재작년 서울시 출입 기자들과 함께 한양도성을 직접 걸으며 세계유산 등재를 자신했다.

“최대한 빨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재신청을 하고 싶은데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이 세워지지는 않았어요. 세계유산 등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미국의 탈퇴나 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같은 내부 정치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서울시 한양도성도감과 관계자의 말이다. 세계유산이 됐다고 해서 유네스코로부터 유산 보존과 관련한 재정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내는 분담금은 위기에 처한 유산에 먼저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는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국가 예산을 받는 데도 유리하고, 관광객을 모으는 효과도 크다.

한양도성처럼 역사적으로 중립적인 문화유산이 아니라 위안부 기록물이나 난징대학살 문건처럼 역사적으로 첨예한 기록유산의 등재 여부를 심사할 때는 관련국가들이 치열한 외교전쟁을 펼치게 된다.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한 이유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미국은 그동안 두 차례 유네스코를 탈퇴했는데 1984년 표면적으로는 사무국의 방만한 운영을 들었지만 소련의 영향이 커지자 영국, 싱가포르와 동반 탈퇴했다. 소련 붕괴 이후 18년 만인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유네스코에 재가입했다. 미국은 이번에도 다시 팔레스타인 친화적이란 정치적 이유를 들어 이스라엘과 같이 탈퇴했다.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유네스코는 2011년 팔레스타인을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였고, 팔레스타인과 오랜 분쟁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유네스코의 팔레스타인 정회원 승인에 반발해 연간 7000만 달러가 넘는 분담금 납부를 끊어버렸다. 납부를 중단한 분담금은 체납금이 되었고 미국은 5억 5000만 달러의 체납금에 대한 책임을 남겨 두고 유네스코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분담금 미납으로 2013년부터 총회 투표권을 상실했다.

미국의 탈퇴에 대해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다자외교의 상실’이라고 강조하며 “글로벌 각지의 충돌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사회를 찢어 놓고 있으며 미국이 이런 시점에 교육을 보급하고 평화를 촉진하며 문화를 보호하는 유엔 기구에서 탈퇴하는 것은 깊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1984년 미국의 탈퇴로 닥친 재정 위기를 당시에는 회원국들이 분담금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이겨냈다. 6년 전부터 미국이 분담금 납부를 중단하자 유네스코가 다른 회원국에 분담금을 빨리 내 달라는 독촉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유네스코로부터 분담금 협조를 요청받은 나라는 알려지지 않았다.

1999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일본인 마쓰우라 고이치로가 유네스코 사무총장직에 오른다. 이후 10년간 고이치로는 사무총장직을 수행했고, 이 기간에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 유네스코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국가였다. 유네스코 분담금은 유엔과 똑같은 기준으로 각 나라에 배분되는데 한 국가가 최대한 분담할 수 있는 비율은 22%다. 미국의 재가입 이후 일본의 분담금 비율은 줄어들어 세계 2위 수준이 됐다.

BBC는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와 중국의 반응에 대해 “점점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방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 중국의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잇따라 선정됐다. 유엔,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는 미국의 주도로 세워졌고 미국의 세계 최강국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기구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때는 탈퇴를 불사했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자리였던 세계 최강국 지위를 넘보는 중국은 지난달 끝난 제19차 당 대회를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결정이 일본의 뜻대로 이뤄진 것은 한·중·일 3개국의 치열한 외교전이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강력한 무기는 탈퇴를 선언한 미국(22%)의 절반가량인 분담금이었다. 유네스코 전체 분담금의 10% 수준으로 일본 정부는 거액의 자금줄을 틀어쥔 ‘유네스코의 큰손’이다. 일본은 매년 4~5월에 내는 분담금 38억 5000엔(약 376억원)을 아직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지난해에도 2015년 난징대학살 관련 기록물이 중국의 신청으로 세계기록유산이 되자 항의 차원에서 분담금 지급을 미뤄 연말에야 겨우 냈다. 미국이 탈퇴를 선언한 시점에서 일본이 쥔 분담금을 유네스코가 더욱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일본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신문 2017-11-14)

△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군함도’의 유네스코 선정에 대한 의견을 적어 봅시다.

【생각 정리하기】

   
▲ 영화 '군함도'

군함도의 강제 징용과 그곳에서 일어난 비참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군함도’, 비록 역사왜곡이라는 평가와 함께 여러 비판에도 직면하였지만 강제징용과 군함도의 진실을 대중에게 알린 것만 해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있다.

【학생 활동- NIE활동】

   
▲ △부안 행안초등학교 4학년 김초은, 최수호 학생 활동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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