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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이 필요하다
백가쟁명이 필요하다
  • 김원용
  • 승인 2018.01.17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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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히고 닫힌 사회에서 창의적 아이디어 나올 수 없어 / 선거와 상관없이 좋은 길 찾길
▲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중국 춘추전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다양한 국가와 문화, 인물들이 다퉜던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부국강병을 위해 각국의 제후들은 국적과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 다양한 학문과 사상이 꽃을 피웠다. 많은 사상가와 학자가 배출됐다. 공자의 유가, 노자와 장자의 도가, 한비자와 순자의 법가, 묵자의 묵가 등이 이때 등장했다. 당시 활동했던 학자와 학파를 가리켜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했으며, 이들의 논쟁을 ‘백가쟁명’으로 일컬었다.

중국 춘추시대의 이런 학문과 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동양 사상의 기초가 됐다. 와신상담·토사구팽·어부지리·관포지교 등 우리가 잘 아는 수많은 고사성어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나왔고, 철제 농구·우경(牛耕)·관개 시설 보급 등으로 농업의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되기도 했다.

2000년을 뛰어넘어 중국에서 ‘백가쟁명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모택동이 중국의 사회주의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의견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다. 지식인들은 이와 관련한 발언을 처음 꺼렸으나 ‘말하는 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言者無罪)’는 공산당의 천명이 있은 후 당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이를 백화제방 혹은 쌍백운동이라고도 부른다.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반우파투쟁을 통해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는 쪽으로 변질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더 이상 속마음을 열지 않거나 공산당 정책에 순종하면서 춘추전국시대의 영광은 재현되지 못했다. 자유롭게 입을 열 수 있는 여건과 그렇지 않은 환경이 이렇게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이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주장한 일부 내용이 한때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전북연구원 주최 ‘전북 자존의 의미와 과제 정책’ 세미나에서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부안 방폐장 유치가 무산되고 새만금사업이 지연됨으로써 지역발전의 장애가 됐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발끈한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과거지향적인 시각과 균형감각 부족, 새로운 사회흐름과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환경의식 등을 드러낸 것이라고 성명서를 통해 맹폭했다. 장 전 총장은 그 후 이 문제에 관해 입을 열지 않았으며, 장 전 총장을 옹호하는 정치권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만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근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KTX 전북혁신역 신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혁신역 신설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일각에서 제기된 후 올 국가예산에 타당성 용역비까지 반영됐으나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같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이 문제를 놓고 토론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익산시가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공연히 분란만 키우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어디 이뿐인가. 전주-완주 통합, 옥정호 수면 개발을 둘러싼 정읍-임실 간 갈등, 마이산 케이블카 설치 갈등, 전주 종합경기장 개발 논란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한 해묵은 갈등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채 찬반 양쪽으로 갈라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대립이 반복되고 있다. 제3의 대안이 없다. 제자백가의 쟁명은 그저 먼 이야기일 뿐이다.

제주도가 2016년부터 제주도의회·교육청·경찰청과 함께 2년 간 제주정책박람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도민 참여마당과 정책 토론, 정책 마켓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 제시와 소통의 장으로 진행하면서다. 제주도는 판을 키워 올해부터 ‘대한민국 정책 박람회’로 추진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서울시도 2012년부터 시민들의 생각을 듣고 정책화하는 정책박람회를 열어 왔다. 뒤로 숨고 숨기는 데 익숙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여러 의제들이 설정되고 논의되는 장이 열리기는 한다. 그러나 대부분 표를 의식한 전시성 공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특정 당의 경선이 곧 본선인 상황에서 정책대결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다. 말문이 막히고 닫힌 사회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정책이 나올 수 없다. 굳이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선거와 상관 없이도 백가쟁명으로 전북의 좋은 길을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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