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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8)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18)
[불멸의 백제] (18)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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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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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아찬, 지원군을 보내지 않을 바에는 첨병 30기를 내보낼 필요가 없었소.”

진궁이 말하자 죽성(竹盛)이 쓴웃음을 지었다.

“30기는 적의 의도를 탐색하기 위한 미끼 역할이었소. 적은 우리를 밖으로 끌어낼 계획이었지만 실패했소.”

“그렇다면 아군 30기를 적의 먹이로 던져주었단 말인가?”

마침내 진궁이 버럭 소리쳤다.

“듣자 하니 가소롭다! 군사를 개 먹이 취급을 하는가? 그런 용병술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

“무엇이! 말을 삼가라!”

죽성도 따라서 소리쳤다.

“내가 성주대리다! 그대는 소임이 없으니 근신하라!”

“근신을 해? 네 이놈!”

그때 청안의 관리들이 나섰다. 일부는 진궁을 막고 일부는 죽성을 달랬는데 뒤숭숭 해졌다. 진궁은 40대 중반의 장년인데 죽성은 20대 후반이니 아들뻘이다. 직위도 아찬으로 진궁보다 한등급 낮지만 대야군주 김품석으로부터 삼현성주로 임명된 신분인 것이다. 진궁은 보좌역일 뿐이다. 진궁한테서 욕을 얻어먹은 죽성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저자를 사택에 가둬놓고 문밖 출입을 통제하라! 성주의 명이다!”

성에서는 성주가 성안 장졸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청안의 위사들이 우물거렸으므로 죽성이 허리에 찬 칼까지 빼들었다.

“항명이냐?”

그때 위사장이 나서서 진궁에게 말했다.

“가시지요.”

진궁이 위사장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몸을 돌린 진궁이 잇사이로 말했다.

“개뼈다귀 같은놈.”

그소리는 앞쪽의 몇사람만 들었다. 개뼈다귀는 골품(骨品)제를 욕한 것이다. 신라의 지도층은 성골(聖骨), 진골(眞骨) 왕족이 아니면 출신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같기 때문이다. 진궁은 가야의 호족 출신으로 그동안 수많은 전공을 세웠는데도 5품 대아찬으로 끝났다. 그러나 왕족 가문인 죽성은 칼 한번 휘두른 적이 없었지만 승승장구하더니 이번에 성주가 되었다. 죽성은 김품석과 친척이 된다. 그날 밤, 진궁의 사택으로 9품 급벌찬 전택이 찾아왔다. 전택도 가야국 태생으로 수백년간 토호를 지낸 가문이었지만 지금은 성(城)의 보군대장이다.

“뒷문 경비장이 마침 내 부족이어서요. 못 본 척하라고 했지요.”

쓴웃음을 지은 전택이 진궁 앞에 술병을 내놓으며 말했다. 전택은 30대 후반으로 용장(勇將)이다. 작년에 선천성 싸움에서 백제군 무장 둘을 베어 죽이고 상으로 손잡이에 금구슬이 박힌 장검을 받았다.

“술을 가져왔는가?”

술을 좋아하는 진궁이 술병을 쥐고 웃었다. 눈꼬리에 잔주름이 가득 잡혔다. 진궁은 딸 고화가 다섯살 때 병으로 아내를 잃고 혼자 산다. 고화를 아비가 키운 셈이다. 고화가 시녀 우덕과 말을 타고 성 밖에 나갔다가 백제군에게 잡혀간지가 이제 한달 가깝게 되었다. 잔을 찾아온 전택과 진궁이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신다.

“성주, 죽성이 기마 정탐군 30기를 보냈다가 무장 둘에 군사 17명이 죽었소.”

술잔을 든 전택이 말을 이었다.

“백제 기마군 선두에 선 장수가 활로 먼저 아선과 국진을 쏘고 나서 돌파하는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박혀있소. 적이지만 보기드문 용장이었소.”

그렇다. 성루에서 진궁도 보았다. 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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