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9-22 12:16 (토)
살맛나게 하는 문장의 힘
살맛나게 하는 문장의 힘
  • 기고
  • 승인 2018.01.30 2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원 벤치에 지갑을 떨어뜨리고 온 다음날 가보니 전날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텐데 누구 한 사람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파출소 같은 데 갖고 가서 분실신고를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주인이 그걸 찾으려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까지 배려할 줄 아는 걸 보면 선진국은 확실히 다른 것 같더라.

어릴 적 수업 시간에 어느 선생님한테 들었던 얘기다. 하긴 그런 남의 나라 얘기를 한두 번 들었으랴. 하필이면 이웃 섬나라 사람들 얘기라서 입맛이 좀 떨떠름하긴 했지만, 그 무렵 새로 산 지 채 3일도 되지 않은 자전거를 잃어버린 터라 우리한테도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싶기도 했는데,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한 미담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도 차고 넘친다.

일상이 담긴 신문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연이 하도 소박해서 가슴이 더욱 훈훈해졌던 걸까.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주운 누군가가 그걸 A4 용지에 붙인 다음 손글씨로 몇 자 적어서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걸어두었던 모양이다.

사진 속의 글씨체가 퍽 정갈해 보였다. 비록 적은 액수의 돈이지만 번거로운 일을 마다 않고 주인을 찾아주고 싶어하는 세심한 마음 씀씀이까지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옛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사진에 적힌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속으로는 문법을 따지고 말았으니, 쯧쯧.

‘3시 45분경 엘리베이터 안에서 2,000원을 주었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나 엘리베이터에 붙혀 둘께요.’에 쓴 ‘주었습니다’는 ‘주웠습니다’가 맞고요, ‘붙혀 둘께요’도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는 말이니 앞으로는 ‘붙여 둘게요’라고 쓰시는 게 좋겠다는 말을 거기에 덧붙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잠깐 그러다 빙긋 웃고 말았다. ‘누구신지 굉장히 멋지십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저도 너무 좋아용^^’ 같은 댓글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