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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을 인물 열전 20. 임실군 오수면] - 조선시대 교통·상업 중심지, 실력·인품 겸비한 인물 많이 나
[우리고을 인물 열전 20. 임실군 오수면] - 조선시대 교통·상업 중심지, 실력·인품 겸비한 인물 많이 나
  • 김재호
  • 승인 2018.01.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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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 독립애국지사 16명…국란 마다 호국'앞장'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동생 정대현·정명희 교수 고향 / (주)인탑스 김재경 회장·허민수 서예가도 오수리 출신
 

오수면(獒樹面)은 임실의 남쪽 끝, 남원과의 경계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멀리 팔공산 등이 둘러싸고 있는 해발 130m의 장방형 분지이며, 남북의 길이는 12㎞ 정도이다.

소설가 최명희는 ‘혼불’에서 오수에 대한 소개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원도호부로부터 서울까지의 거리는 655리인데 걸어서 이레하고 반 날이 걸리느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철도가 생기기 전, 멀리 한양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괴나리봇짐을 등에 메고, 몇 켤레의 짚신을 갈아 신으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걷고 걸었던 것이다. (중략) 전라도 길은 섬진강의 유역을 따라 남원을 거쳐서 전주를 지나고 공주로 접어들어 서울로 가는데, 비교적 순탄한 길이라, 한양에서 뻗은 팔도 길을 통틀어 말할 때, 남원을 통하는 전라도 길이 가장 부드러운 길이라고 일컬어 말했다. (중략) 예전에는 이런 길목의 요소마다 찰방(察訪)이 있었고, 찰방이 있는 곳을 역(驛)이라 하였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으로(중략) 이들은 역승의 잘잘못을 규찰하거나 주군수령의 탐학과 민간의 고통을 살펴서 엄히 다스리는 것이 주임무였다. (중략) 찰방이 있는 곳은 한양으로부터 그 고을에 들어가는 첫 머리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일과 시정의 소식에 빨랐다. 그래서 장사하는 시정아치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물산의 교류가 저절로 이루어져 큰 장이 서게 되었다. (중략) 조선시대 남원진도호부의 찰방은 오수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올 때 남원진의 입구는 오수였던 것이다. 이 오수역에는 역사와 찰방의 관사, 그리고 역의 소유인 둔전이 있고, 역마 스물일곱 필이 역졸과 함께 항상 대비되어 있었다. (중략) 오수 찰방이 관할하는 곳은 11역, 15원이었다. 오수역 찰방은 모두 스물여섯 군데나 맡아 관장하였던 것이다. 매안에서 오수역까지는 시오리 길이요, 남원 읍내까지는 삼십 리 길이었다.”

남원의 입구 오수역은 관리들이 역졸을 부려 관물을 운송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는 통로였다. 관리와 일반 길손들이 역과 원 등에 머물고 숙박했다. 장이 서는 등 사람들이 항상 붐비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핫 플레이스’였다. 지금도 오수 지역은 전주~남원간 자동차전용도로, 익산~순천 고속도로, 전라선 철도가 통과한다.

오수지역은 동쪽과 서쪽이 높은 산이고, 남과 북은 터진 형세를 하고 있다. 장수군 산서지역에서 발원하는 오수천은 지사면 들판을 거쳐 오수를 통과하면서 율천의 물을 합수하고, 순창군 동계면에 이르러서 섬진강에 합류, 전남 곡성과 구례, 경남 하동을 거쳐 남해로 빠져 나간다.

오수면 지역은 고려시대 남원부(南原府) 둔남방(屯南坊)에 속했다. 조선시대에는 둔덕방(屯德坊)과 남면으로 분리되었고,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다시 통합되면서 둔남면(屯南面)으로 개칭됐다. 이때 남원군 덕과면 오수리와 대명리 일부가 둔남면으로 편입되었다. 또 1983년 2월 16일 조정 때에는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가 편입됐다. 14개 법정리, 32개 행정리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둔남이란 지역 명칭은 아쉽게도 주인을 살린 ‘의로운 개(義犬)’ 캐릭터를 내세우자는 지역 여론 속에서 1992년 8월 10일 오수면(獒樹面)으로 변경됐다. 임실군은 오수에 의견공원을 만들어 지역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오수면 금암리 오수의견공원 일대에 건설 중인전라북도 양궁 전용경기장이 오는 6월 완공 예정이다. 98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전북도 양궁장은 오수 의견관광지 부지 9만2천400㎡에 세워지는데, 전북도는 1단계로 45억 원을 들여 전용 훈련장을 건설하고 2단계로 53억 원을 추가해 전용 양궁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오수면은 인근 삼계면과 지사면, 장수군 산서면과 함께 인물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다. 500년 종가 ‘이웅재 고가’가 소재하는 둔덕리 일대(일명 둔데기 마을)에 ‘남원 5현’이라고 불린 폄재 최온(영의정 최항의 후손,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 강학을 맡은 인물) 선생을 비롯해 이대윤, 최상중, 이상형, 하만리 등 실력과 인품, 의를 겸비한 인물이 많이 났다. 옛날에는 ‘남원 인물의 반은 둔데기에서 난다’고 할 정도였다.

오수 사람들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제강점기 등 국란 때 나라를 위해 앞장 섰다. 오수초등학교 학생 400여 명이 이광수 선생의 지휘 하에 3월10일 독립만세를 불렀고, 이기송 선생 등은 3월23일과 24일 양일간 오수장터 등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오수의 전주이씨 독립애국지사는 이송의 등 16명에 이른다.

△관계

금암리 출신 김능태(82)씨는 총무처 예산과장 등을 역임했다. 오수리 출신 김용태(68)씨는 전북도 건설물류국장을 지냈다. 전북도 자치행정국장을 지냈던 용정리 출신 이강오(61)씨는 현재 전북도 대외협력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강안(68) 씨는 완산구청장, 전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거쳐 광복회 전북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둔덕리 출신 김태수(68)씨는 완산구청장을 지냈고, 이강칠씨(57)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전주완주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전북도청 노흥래(57) 체육정책과장은 한암리 출신, 곽승기(57) 전북도 예산과장은 주천리 출신, 전북선관위 홍보과장을 지낸 이규정(62)씨는 금암리 출신이다.

△정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만주에서 태어나 장수 산서면과 오수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또 제5~7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한상준 의원은 인근 삼계면 출신이나 오수초등학교를 다녔다. 제5대 도의회 의장을 지낸 이강국(80)씨는 오수리가 고향이다.

△군경

오산리 출신 김보영씨는 육사 26기로 육군헌병감(준장)을 지냈고, 봉천리 출신 박창희(65)씨는 육사 32기로 62사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준장이다. 용정리 출신 이강수(66)씨는 전북지방경찰청 정보과장, 임실경찰서장 등을 역임했다.

△법조

용정리가 고향인 이강국(73) 서울대 석좌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법조인이다.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제4대 헌법재판소장 등을 지냈다. 주천리 출신 곽종훈 변호사는 의정부지법원장을 지냈고, 안춘식, 김길수, 곽세일 변호사도 오수가 고향이다.

△교육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동생 정대현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 교수, 정명희 고려대 불어과 교수는 오수리 출신이다. 또 김무영 전북대 스포츠학과 교수도 오수리가 고향이다. 전북대 화학공학과 김춘영교수는 오산리다.

△경제

휴대폰 부품 등 무선통신기기 관련 제조업체인 (주)인탑스 김재경 회장(72)의 고향이 오수리다. 전주제일고(옛 전주상고),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중견기업 신화공업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81년 (주)인탑스 전신인 신영화학공업사를 설립, 각고의 노력 끝에 인탑스를 국내 손꼽히는 강소 기업으로 일궈냈다.

또 김만두 전 한전산업개발 사장도 오수 출신이고, (사)코스닥협회 제1대 상근부회장을 역임한 정강현씨도 오수리가 고향이다.

△문화예술언론

한제욱 전 전북일보 이사(62)는 봉천리 출신, 이강덕 KBS 대외협력실장은 군평리 출신이다. 대한민국 서예박람회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지낸 서예가 장암 허민수(65)씨는 오수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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