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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1)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21)
[불멸의 백제] (21)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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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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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축시(오전 2시) 무렵, 계백이 산기슭의 진막 안에서 가섭이 가져온 편지를 받고는 빙그레 웃었다. 진막에는 해준과 호성 등 장수들이 둘러섰고 앞에 가섭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생했다.”

계백이 가섭을 칭찬하고 나서 편지를 펼쳤다. 기둥에 매단 기름등 불꽃이 흔들렸고 진막 안이 조용해졌다. 진궁이 보낸 편지다.

“대신라국 대아찬 진궁이 백제국 나솔 계백에게 보낸다. 내 딸에게 편지를 전해준다니 고맙다.”

그리고는 조금 떼어서 썼다.

“고화, 전란 속에서 너를 낳은 것이 부모에게는 기쁨이었으나 자식은 지옥을 보는구나. 부모의 죄다.”

“네가 백제땅에서 잘 살라고 기원하고 싶으나 신라 무장으로서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너는 가야 호족의 핏줄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라. 네 조상은 대가야의 중신(重臣)이었다.”

“나는 이제 너를 잊는다. 너는 가야인의 후손인 것만 가슴에 담고 새 인생을 살거라.”

계백이 편지에서 시선을 들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편지를 해준에게 넘겨준 계백이 아직도 앉아있는 가섭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호성에게 말했다.

“고덕, 이자에게 금화 서 냥을 주게.”

“예. 나솔.”

대답은 했지만 호성이 두 눈을 꿈벅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시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심부름 값이야. 장모에게 효도하는 상도 주는 거야.”

“예. 나솔.”

호성이 가섭을 데리고 진막을 나갔을 때 편지를 다 읽은 해준이 말했다.

“나솔. 편지로 신라국 대아찬 하나를 죽이셨습니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해준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진궁이 자결을 할 것 같습니다.”

“장덕도 그렇게 느꼈나?”

“딸에게 유서를 써 보냈으니 이제 이 세상에 미련이 없을 것 아닙니까?”

계백은 쓴웃음만 지었고 해준이 다시 감탄했다.

“성문을 열라는 뻔한 수단으로 방심을 시켜놓고 기습을 한 셈이지요. 진궁은 지금 기습을 당한 줄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군.”

“나솔의 전략에 감복했습니다.”

“이 사람이 도성에 있으면서 듣기 좋은 말만 배운 것 같구만.”

“아니오. 나솔의 용명(勇名)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정색한 해준이 말하자 계백이 무장들을 둘러보았다.

“아침 일찍 회군이야. 준비를 하게.”

그러자 모두 계백에게 인사를 하고 진막을 나갔다. 오전 진시(8시)가 되었을 때 백제 기마군은 질풍처럼 신라 영토를 내달렸다. 이제는 지리에 익숙한 터라 감시 초소나 성을 피해서 내닫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 술시(8시) 무렵에는 3백여 리를 주파, 백제령으로 들어섰다.

“신라 16개 성을 지났으니 지금쯤 전령들이 이쪽 저쪽으로 내닫고 있을 것이오.”

앞쪽에 보이는 백제 하산성으로 다가가면서 해준이 말했다. 하산성은 남방(南方) 소속의 토성으로 강가에 세워졌다. 지난 수십년 간 신라와 백제가 번갈아 차지했기 때문에 주민은 없고 군사들만 상주한다. 전령을 보낸 터라 성에서 불을 환하게 밝혀 정찰대를 맞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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