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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개방의 길 접어든 북한
[새벽메아리]개방의 길 접어든 북한
  • 전북일보
  • 승인 2004.06.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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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남한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또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실로 감격적인 일이었다. 이 방문은 "조선사회과학자협의회”와 "손정도목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한 "기독교와 사회주의” 심포지엄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6.25 직후 태어나 전후 혼란 속에서 숱한 반공교육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한편으로 온갖 혼란된 대북관에 둘러싸여 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마르크스주의)를 전공으로 하던 터라, 그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이 방문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10여 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노동당과 김일성 대학 관계자들, 보위부 엘리트들, 그리고 시골의 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고, 떠나기 전날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도 면담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제 반년 넘게 시간이 흘러 그때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돌이켜 보건대, 방문의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북한 사회의 엄청난 변화”였다. 공식적인 용어사용에 거부감을 표하고 있었지만 이미 북한은 "개혁, 개방의 길”로 깊숙이 들어섰다는 강한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우선 김일성대학 역사학부 교수들과 함께 한 심포지엄의 주제 "기독교와 사회주의”부터가 변화를 알리고 있었다. 일제 하 임시정부 의정원장을 지냈고 청년 김일성을 감옥에서 구해 인생에 결정적인 격려를 해주었다는 손정도 목사가 감리교 목사이면서 사회주의자였다는 게 논의의 실마리였지만, 어쨌든 남과 북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사적 연관에 대해서 또 일제 하 독립운동사에서 기독교 계열 민족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괄목할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일은 학자들, 당 관계자들, 심지어 김영남 위원장도 북한의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에너지와 식량 지원을 중단한 94년 이후 수년간("고난의 행군 기간”)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또 그 후 시작되어 점차 확대되고 있는 남한의 대북 지원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고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점은 들판에서 만난 농민들에게서도, 우리를 안내한 보위부 사람들, 식당의 의례원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평양 시내를 달리는 현대자동자(공사용 트럭)와 "휘파람” 자동자(남측 자본으로 평양에 세운 "평화자동차공장” 생산), 평양 인근의 남측 자본으로 지었다는 공장들, 평양 최대 호텔인 고려호텔에 투숙 중인 수많은 남측 인사, 기자, 그리고 기업인들, 또 그들 가슴에 달려 있는 태극기 등.

각종 선전선동 문구가 아직도 빛바랜 영화처럼 돌아가고는 있었다. 또 경제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체험할 수 있었다. 전기와 연료가 부족하고 병원과 학교를 비롯한 각종 사회 기초시설이 황폐화되고, 영양 부조(不調)로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북측 관계자들은 이런 현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남측의 생산적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요청을 주저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제 반년이 넘어도 뇌리에 남아있는 그들의 미국에 대한 공포심을 잊을 수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남한의 선거 결과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했다. 의외로 남한의 정치상황이 보수화할 것인지 진보 쪽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에 대해 민감했다. 미국의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으면 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털어놓는 그들의 두려움, "미국이 우리를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은 일반인이나, 심지어 김영남 위원장을 포함한 고위관계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유석(호원대교수ㆍ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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