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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위기의 건설업] 경쟁력의 허와 실
[긴급진단 위기의 건설업] 경쟁력의 허와 실
  • 김현기
  • 승인 2000.06.29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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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 수첩을 빌리든 어떻든 회사만 차리면 된다. 운(運)이 낙찰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한건만 운좋게 걸리면 부금만 거머쥐고 공사를 넘긴다. 1년은 쉽게 유지되고 돈도 벌수 있다”.

건설업계에서 회자되는 이 말은 건설산업, 특히 공공공사 수주를 업영위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건설업체의 경쟁력이 어떤 잣대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지를 새삼 음미하게 하는 대목이다.

흔히 건설업의 경쟁력을 말할때 거론되는 요건은 업체의 기술개발 투자실적과 고급기술인력의 확보, 이에 바탕한 우수한 시공품질의 생산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업계현실은 이같은 경쟁력의 요건들이 공사수주나 시공과정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요행이 좌우하는 수주경쟁이 만연되고 업체들이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하향평준화되고 있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들이 자칫 무모한 것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이같은 업계의 사정은 지역 건설시장의 진출입 현황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들면 시장 진입자수도 줄어야 하는 것이 정설. 최근 수년간 지역 건설시장은 유례없는 일감난이 불어닥쳐 시장규모가 급격하게 축소됐다.

건설시장의 위축은 업체당 수주금액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수주시장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진다. 이 때문에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유인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일.

그렇지만 건설업의 경우는 이같은 일반론과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 신규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전북도와 일선 시군에는 회사를 내려는 등록신청이 올들어 쇄도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5월 한달동안만 15개사가 설립됐다. 지난 90년 30개사에서 정확히 10년만에 10배로 늘어났다. 이달에만도 6개업체가 신규등록 신청을 냈다”고 말했다.

시장의 상황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같은 현상은 현행 입찰제도에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적용되는 제도는 적격심사 낙찰제. 말 그대로 업체가 일할 수 있는지의 적격여부를 심사해 낙찰업체를 선정한다는 이 제도는 지난해 9월 도입됐다. 시행초기에는 시공경험과 경영상태 평가를 엄격히 해 실적이 부족한 업체들의 경우 공사 수주기회가 사실상 박탈되는 결과까지 초래됐다.

이제도는 지난 4월 다시 변경됐다. 10억원 미만 공사(일반건설업체)에서 시공경험

평가항목을 삭제하고 50억원 미만까지는 매출액 순이익률과 총자본 회전율을 삭제해 적격심사 기준을 대폭 완화해 버린 것. 이 때문에 적격심사의 변별력이 사실상 사라지고 요행과 운수보기식 입찰이 입찰시장을 또다시 지배하게 됐다.

이러다 보니 신규회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기존 회사들도 낙찰확률을 높이기 위해 계열사를 앞다퉈 설립하고 있다.

k건설 S씨는 “수주확률을 높이는데는 갖가지 방법이 있다. 10여개사씩 짝을 이뤄 입찰때 모내기(각각 다른 가격대를 골라 투찰하는 방식)를 한다거나 아예 한 회사가 여러 업체의 도장을 빌려 입찰에 참가하기도 한다. 낙찰되면 부금을 주고 시공권을 갖는다”.

한 업체 관계자의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기초금액을 흔들거나(예상밖으로 조정) 발주관서를 상대로 작업(로비)을 벌여 경우의 수나 복수예비가격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공사를 따내는 의혹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어떤 공사가 탐난다고 할 때 가만이 앉아 있으면 그 공사를 딸 수 있겠나”. 입찰제도가 바뀌면 건설회사 사장들은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기 위해 며칠씩 고심한다는 말도 업계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같은 업계의 풍토속에서 우수 기술자를 확보하거나 기술개발투자를 위한 업체의 경쟁력 향상 노력은 요원한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인원을 줄여 회사를 유지하고 발주기관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수주노하우를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이 된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부실과 부적격 업체들의 난립이 건설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판단아래 7월부터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이른바 ‘페이퍼 컴페니’나 ‘핸드폰 업체’를 퇴출시킨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업계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N건설의 한 관계자는 “등록요건에 미달되면 행정기관의 보완지시를 이행하면 된다. 공사 전매(轉賣)나 일괄하도급 행위를 적발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현재 지역 건설업계는 일감난으로 인해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위기의 본질에는 뼈대를 갖출 겨를도 없이 한건주의로만 흐르는 ‘경쟁력의 허실’문제가 도사려 있다. 당장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최저가 낙찰제 시대의 화두(話頭)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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