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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위기의 건설업] 대표주자가 없다
[긴급진단 위기의 건설업] 대표주자가 없다
  • 김현기
  • 승인 2000.06.30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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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건설시장은 한마디로 무주공산(無主空山) 이다. 지역시장을 방어할 만한 간판급 업체들이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군침을 흘린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 항만청, 철도청은 물론이고 주택공사, 도로공사가 발주하는 대형공사에서 입찰참가에 필요한 실적을 갖춘 업체들이 도무지 없다. 지역시장이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건설업체의 사장의 자조섞인 얘기다.

일반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 설비건설업체를 종합한 도내 건설업체수는 1천7백여개사를 웃돈다. 여기에 주택건설업과 소방·전기·정보통신공사업까지 포함하면 도내 건설관련 업체수는 무려 3천여개사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건설시장의 상황이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지역을 대표하며 업계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지역의 간판업체는 찾아볼 수 없다. 전국을 무대로 업역을 개척하는 것은 고사하고 지역시장 고유의 몫조차 챙기지 못하는 것이 업계의 현실.

성원건설과 거성건설 등 외지 1군 업체와 당당히 겨뤄왔던 향토기업들이 잇따라 좌초한 이후 사정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역시장이 외지업체의 독무대가 되고 도내업체들은 하청업 수준으로 전락하는 등 지역 건설업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

이는 도내에서 발주되는 50억원 이상 공사의 수주경쟁에서 지역업체들이 전혀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건설협회 전북도회가 집계한 50억원 이상 공사의 수주현황은 이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들어 지난 5월말까지 도내에서 발주된 전국공개 대상공사는 모두 14건으로 수주금액은 2천9백97억원. 이가운데 지역업체가 공동도급으로 참여해 확보한 수주액은 4백86억원(16.2%)이고 외지업체는 2천5백10억원(83.8%)를 수주했다. 99년 전국공개로 발주된 수주금액 8천1백70억원 역시 도내업체는 1천7백60억원(21.5%)을 차지한 반면 외지업체에게는 6천4백10억원(78.5%)이 돌아갔다.

J건설 P사장은 “지역에서 나오는 대형공사는 외지업체, 특히 광주 전남업체와 대전 충남업체들이 벌이는 입찰잔치가 됐다”며 간판급 주자를 상실한 도내업체들이 .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 충남 계룡건설은 지난해 안덕원 지하차도, 견훤로 확포장, 장수 관광순환도로 등 1백∼2백억원 규모의 대형공사를 수주한데 이어 올들어서는 도급액 6백50억원 규모의 마령∼진안간 확포장공사, 전주천 자연하천 조성공사를 휩쓸어 갔다.

외지업체에 의해 지역시장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은 입찰에 참가하는 과정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실적을 갖춘 1군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공동도급사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애원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러고서도 받게되는 지분율은 5∼10%대에 불과하다.

한 업체 사장의 말. “대형공사가 나오면 공동도급사로 참여만 하는데도 상상할 수 없는 경쟁이 벌어진다. 지역업체들이 1군업체를 상대로 온갖 줄을 동원한다. 공사를 따주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데리고만 가 달라는 것인데도 로비를 벌어야면 하는 형편이다”.

입찰참가 단계에서부터 벌어지는 지역업체의 이같은 지위는 전문건설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간사가 아닌 탓에 하도급업체를 선정하는는 과정에서 전혀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 지역에서 굵직굵직한 공사가 벌어져도 지역내 고용창출이나 경기부양의 효과로 전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 군산∼고창간 서해안 고속도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군장신항만 북방파제공사, 군장신항만 남측안벽 2공구 축조공사 등 공사비 1천억원대의 대형공사는 지역업체들이 원도급에 이어 하도급에서까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반면 성원건설이 주간사로 수주한 전주월드컵 경기장공사는 지역 전문업체들이 참여해 지역건설시장에 대표주자가 있어야하는 이유를 실감케한다.

이에대해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자성론로 나오고 있다. 흥건사 동성 호남건설 등 지역내 건설 1세대들의 역할이 부족했다는 것. “잘나갔을 때 컸어야 한다. 지역에서 대장노릇만 했을 뿐이지 우물 밖을 벗어난 적이 있느냐”며 건설 1세대의 역할을 아쉬워 하고 있다.

최근 업계의 관심은 조만간 발주될 7백억원대의 전주시 하수종말처리장 건설공사에 쏠려 있다. 지역업체가 45% 이상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달청이 아닌 전주시가 직접 발주해야 한다고 업계는 목소리를 높인다. 실적제한 기준을 하수처리 용량 10만톤(1일)으로 하느냐, 7만톤으로 하느냐도 관심사다. 10만톤으로 실적을 묶을 경우 전국에 15개 업체가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가운데 전남의 보성건설, 금광기업, 남양건설, 충남의 계룡건설이 들어있다.

지역에 1군업체들이 버티고 있다면 발주주체를 놓고 지역 건설업계가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보였을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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