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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반경] 남녀음양(男女陰陽)의 죄
[고금반경] 남녀음양(男女陰陽)의 죄
  • 전북일보
  • 승인 2000.01.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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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남녀음양 행위이다. 관가에서 관리하는 공창이 있고 서민들이 이용하는 사창이 있었는데 평양감사의 부실인 기방은 공창이었고, 역주변에 있는 여인숙 등은 사창이다.

남녀의 음양관계는 피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기에 각국의 군인이 배치된 지역에는 위안부가 있고, 심지어 일정한 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쫓고 쫓기면서 싸우는 전쟁터에서도 음양관계를 찾기에 종군위안부라는 것이 있다. 2차대전시에 영일만 폭격, 월남전 그리고 요즘에도 러시아와 체천간의 전쟁터에도 위안부가 많이 있고, 위안부가 많은 곳은 피하여 사격한다고 한다.

음양의 문제는 고대 인도의 무희들이 사원의 참배자들에게 전 여성의 대표로서 몸을 맡기고 그 보수를 받은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집트, 페니키아, 앗시리아, 페르시아 등에서도 인도와 같은 일이 있었는데 이를 총칭하여 사원음양이라고 하였다. 중세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음양관계를 금지했으나 사창만을 금지시키고 공창은 보존된 모순이 있기도 했다. 십자군원정 때에는 대규모의 위안부 부대가 조직되어 함께 떠나기도 했었다.

고대 중국 초장왕(楚壯王)이 잠시 휴전을 틈타 장수들과 위안잔치를 베풀었는데 장왕 옆에는 애첩이 있었다. 마침 촛불이 꺼져서 방안은 칠흙같이 되었는데 촛불을 켜는 순간 어느 장수가 장왕 애첩과 입을 맞추었다. 이때에 애첩은 입을 맞춘 장수의 갓끈을 잡아 떼었으니 불을 켜서 갓끈이 없는 장수를 능지처참토록 장왕께 일렀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모든 장수들은 촛불을 켜기전에 갓끈을 떼라’고 하였던 것이 절영영(絶纓令)으로 유명하다.

르네상스가 중세적 성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근대에 들어서 음양행위가 성행하였다. 17세기에도 런던에는 5만여명의 음양의 직업 여성이 있었다고 하며 콜럼버스 일행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으로부터 옮아온 성병이 15세기 말부터 차차 퍼져 나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즉 음양에는 성도덕과 성병이라는 이중의 문제가 된 것이다.

19세기에 춘희(椿姬), 소춘풍전이 음양관계를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았다. 1961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제정 시행되는 과정에서 변태적 성업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금번에 김모 여총경이 현지 서장으로 부임하여 미아리 텍사스촌을 비롯한 환락촌들을 정화하고 미성년자의 선도를 외치고 나서자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신성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미풍이 되기를 바란다.

/양복규 명예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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