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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각하와 대통령님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각하와 대통령님
  • 전북일보
  • 승인 2005.12.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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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폐하' '전하' 보다 덜해
예전에는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 이게 영 어색했던지 김대중 대통령은 각하라는 말 대신에 ‘대통령님’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각하라는 용어도 왕조시대에는 ‘전하’나 ‘폐하’였다. 모두 다 왕이나 임금 그리고 황제에게 붙이는 극존칭이다.

그런데 엄밀히 구분해보면 각하와 전하 그리고 폐하라는 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황제는 ‘폐하’라고 존칭하는데, ‘폐(陛)’는 ‘섬돌’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천자를 나타낸다. 황제 앞에서는 세상사람 모두 그가 딛고 서있는 섬돌 아래 조아려야 하므로 폐하(陛下)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임금폐하’나 ‘왕폐하’라고 하면 어색하고 ‘황제폐하’라고 해야 익숙하게 들린다.

또 황제가 되지 못하는 왕이나 임금은 ‘전하(殿下)’라고 한다. 여기에서 ‘전(殿)’은 큰 집을 뜻하는 말로서 흔히 왕이나 부처님이 계시는 건축물에 붙이는 호칭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이나 강녕전(康寧殿) 그리고 사찰의 대웅전(大雄殿)과 미륵전(彌勒殿) 등에 전(殿)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을 봐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크나큰 집의 지붕 밑에 계시는 분을 옛날 왕조시대에서는 ‘전하’라고 했던 것이다.

각하(閣下)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맞배지붕이나 합각지붕이 아닌 조금 특이한 지붕을 가진 작은 건축물에는 보통 각(閣)이란 명칭을 붙여왔다. 보신각이나 동십자각 그리고 누각(樓閣), 종각(鐘閣)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작고 기이한 지붕 밑에 사는 사람은 각하(閣下)라고 한다. 폐하나 전하와는 그 크기와 중요도에서 확실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그동안 ‘각하’라고 불러왔다. 우리 민중 모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대통령이어서 그렇게 호칭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하나 폐하에 비해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다소 민망한 존칭이었다. 그래서 ‘각하’를 버리고 ‘대통령님’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건축물에 붙이는 명칭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최상철(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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