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6-24 21:30 (일)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28. 번영과 쇠락의 군산 째보선창 - 역사의 시계추, 이제 어느 쪽으로 째깍거리고 있는가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28. 번영과 쇠락의 군산 째보선창 - 역사의 시계추, 이제 어느 쪽으로 째깍거리고 있는가
  • 기고
  • 승인 2018.02.22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강 끝자락 수탈의 기억…일제땐 군산의 대표 포구 / 근현대사 자산으로 주목…영화와 문학 배경 되기도

우석: 어디인 것 같더노. 그 장소는?

진우: 낡은 건물인데, 무슨 여관 같았습니다.

우석: 여관… 위치는 기억나나?

진우: 얼굴을 가리고 끌려가가, 근데 뱃고동 소리가 났고, 기차 소리도 가깝게 났습니더.

▲ 영화 ‘변호인’ 속 군산 째보선창.
▲ 영화 ‘변호인’ 속 군산 째보선창.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한 피고인 진우(임시완 분)를 변호하기 위해 고문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에서는 부산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이 장면은 군산에서 촬영되었다. 1980년대 그 시절의 기찻길이 지나는 낡은 항구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 곳은 바로 군산의 ‘째보선창’이다. 지금 가보아도 일제강점기부터 가까이는 1970~1980년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군산 째보선창의 현재 모습.
▲ 군산 째보선창의 현재 모습.

 

째보선창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현재 군산시 금암동, 과거 옥구군 죽성리에 위치했던 포구로 일제강점기부터 째보선창으로 불려왔다. 본래 이름은 죽성포구였으며 고려시대부터 군산 지역 주요 포구 중 하나였다. 죽성이라는 이름은 근방에 있던 넓은 대나무 밭이 마치 성(城)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보호하는 형상이어서, 마을 이름을 ‘죽성리(竹成里)’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죽성 포구는 대나무숲의 풍광이 아름다워 포구 일원이 군산 팔경(八景)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였다.

그 죽성포구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째보선창으로 개명되듯 불린 유래도 독특하다. 포구의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설로, Y자 형태로 째진 듯이 조성된 포구가 마치 ‘째보(언청이의 사투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포구 이름을 째보선창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혹은, 죽성 포구에 살던 힘센 째보 객주가 포구 주변의 상권을 장악하고 일대를 꽉 잡고 있어 그의 별명 그대로 째보선창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런데, 이 독특한 이름의 째보선창은 군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라남도 목포에도 째보선창이 있다. 목포시 유달산 아래 다순구미(따뜻하다는 ‘다순’과 후미지고 깊은 곳이란 뜻의 ‘구미’의 순우리말 합성어로 지금의 온금동)앞에 물자 수송을 위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곳이다. 배를 접안하는 부두시설의 삼면 중 한 면만을 연 모습이 언청이 모습과 흡사하여 째보선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목포의 째보선창은 일제강점기에 그 지역의 주요 사업체인 조선내화의 화물을 중심으로 물자를 실어나르며 번성기를 누린 포구이다. 그러다, 1981년 제10회 전국소년체전이 열리던 시기 유달산 일주도로를 확장 정비하면서 사라졌고 조선내화마저 광양으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한 후에는 번창했던 기억과 불린 이름만 남아있다.

군산과 목포가 각기 같은 이름의 째보선창을 가졌던 것처럼 두 지역은 동시대에 비슷한 번영과 쇠락의 시간을 보냈다. 두 곳은 예로부터 어족이 풍부하고 어획량이 많아 자연스럽게 포구가 형성되었고 이를 내다 파는 어시장이 함께 발달했다. 배가 많이 드나드는 지리환경이다 보니 나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는 군산의 전신이었던 옥구와 목포를 전라도의 4진으로 언급하고 있다.

… 대비하고, 도관찰사로 하여금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상고하게 하였다. 경상도는 4진(鎭)인데, 합포(合浦)·강주(江州)·영해(寧海)·동래(東萊)이고, 전라도의 4진은 목포(木浦)·조양(兆陽)·옥구(沃溝)·흥덕(興德)이고, 충청도의 3진은 순성(蓴城)·남포(藍浦)·이산(伊山)이고, 풍해도(豊海道)의 2진은 풍주(豊州)·옹진(甕津)이고, 강원도의 2진은 삼척(三陟)·간성(杆城)이다.

-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 5월 21일 임신 1번째 기사 ‘각도의 병마 도절제사를 파하고 각 진에 첨절제사를 두다’

▲ 1872년 지방지도 옥구현지도.
▲ 1872년 지방지도 옥구현지도.

 

조선시대 군산에는 전라도 7개 고을 세곡을 취급하는 옥구 군산창(群山倉)이 있어 이곳에 객주도 많았다. 1899년에는 군산항이 개항하면서 당시 군산포, 죽성포, 경포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군산 객주들이 각종 상회사(商會社)를 설립하였고, 이들 상회사는 을사늑약(1905) 이후 우리 민족 국채보상운동과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활약하여 일본 상인들의 경제침투를 어렵게 하기도 하였다.

▲ 군산 동부어판장.
▲ 군산 동부어판장.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군산에 발달한 포구만 해도 째보선창(죽성포), 설애장터(경포), 구암포(궁포), 나리포(나포), 달개나루(월포), 서시포(서포) 등이 있었으나 째보선창 주변은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한다. 그러다 일본영사관이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째보선창은 군산의 대표 포구가 된다. 경술국치(1910년) 이후 일제는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던 지금의 해망동에 1918년 서부어시장을, 외곽지역이었던 째보선창 일대에는 1923년 동부어시장을 개설한다.

그런데 막상 어시장이 개설된 이후에는 개량된 선박과 근대화된 어구를 갖춘 일본 어민이 주로 동부어시장을 애용하여 거래 규모가 서부어시장에 비해 현저히 많았다. 이후 1928년에 째보선창 앞바다 해면 매립 공사가 완공되고, 이어 1929년 조수간만의 차에도 항상 수평을 유지하는 ‘뜬다리(잔교, 길이 49m, 폭 4m)’가 설치되면서 째보선창 일원은 어항으로서 제반 시설을 모두 갖추게 된다.

1932년 째보선창은 군산부로 편입되면서 동빈정(東濱町)이 되었다. 1930년대 동빈정에 있었던 주요 사업체 및 기관만 해도 군산어업조합, 전북어업조합 판매소, 전라북도 수산시험소, 황목조선소, 전북조선철공소분공장, 경마장(헌병, 경찰기마대 훈련장), 해안순사파출소, 임경상점(군산냉장고), 신탄시장(숯, 장작 등을 파는 시장), 수호제염소등 다양해 일대의 번영을 짐작하게 한다. 동빈정은 1945년 광복 후 금암동(錦岩洞)이 되었고, 금암동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였으나 매립공사를 통해 육지가 됐다. 1978년 이곳을 흐르던 째보천이 복개되었고 선창의 핵심 공간이던 어시장 역시 2003년 동백대교 근처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어수선하고 쇠락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째보선창은 한때 군산지역의 소위 제일 잘 나가던 포구로 중요한 뱃길이자 일제강점기 수탈의 통로였다. 번영과 쇠락의 역사를 동시에 지니며 지역의 애환이 짙은 째보선창은 문학에서도 그 이름이 등장한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주요 배경지로 주인공인 정주사가 충청남도 서천(용댕이)에서 식솔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와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째보선창이다. 그 외 조정래의 『아리랑』 그리고 고은의 『만인보』에서도 째보선창의 애환이 담긴 사연을 찾아볼 수 있다.

군산항과 목포항 두 곳 모두 비슷한 시기 2년의 차이를 두고 개항했고, 째보선창이라는 이름의 부두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며 생겨나 역사의 풍파 속에 있었다. 같은 이름 다른 곳의 째보선창은 금강과 영산강의 끝자락에 번영과 수탈의 기억을 동시에 지닌 장소이다. 목포의 째보선창은 작년 12월 남아있던 조선내화 건물(1938년 건축)이 등록문화재(제707호)로 등재되면서 목포 째보선창이 있던 장소의 복원 계획이 탄력받고 있고, 군산의 째보선창도 영화 속의 배경과 문학 속에 남아 있으며 일대가 근현대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군산시는 현재 구도심과 째보선창 일대를 새로운 도시재생 지역 및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마치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이 쓸쓸하고 적막해 보이는 역사의 현장에 따스한 햇볕이 내비치는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군산의 겨울 바다는 얼어붙은 군산시민의 마음만큼 그 어느 때 보다도 춥고 스산하다. 번영과 쇠락을 오가는 역사의 시계추가 이제 어느 쪽으로 째깍거리고 있는지 그곳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염려와 염원들이 가득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