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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의 반란 - 김재희
주꾸미의 반란 - 김재희
  • 기고
  • 승인 2018.02.2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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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희
사람들은 가끔 숨 막히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주꾸미 철이 한창인 작년에 의기가 투합한 사람끼리 모여 희희낙락 부안 나들이를 나섰다. 나이가 많건 적건 어딘가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몇 대의 차로 끼리끼리 나누어 탄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코에 스며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격포항이다.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발걸음들을 잡는 호객이 더욱 구미를 당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식당부터 들렀다. 먼저 자리한 사람들이 마치 주인처럼 우리들을 반긴다. 이미 준비된 식탁 위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즐비하다.

냄비에서는 육수가 끓고 있었고 그 옆엔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주꾸미가 접시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나가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지만 생존을 위하여 필사적으로 몸부림하는 모습이 사람들에는 구경거리다. 거기다가 매정하게도 간신히 벗어나면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는다. 어느 날 갑자기 덫에 걸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로가 된 세상에서 갈 길을 잃고 허둥대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일까. 거부할 수도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삶의 한순간이 되어 버렸다. 다리에 힘을 주고 한없이 넓은 공간으로 떠다니던 자유를 갈망하고 먹이사슬 속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공생하며 살았던 팽팽한 삶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들에게 잠시나마 남아 있는 시간은 참으로 짧고도 귀한 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저들은 삶의 끝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을 뿐이다.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가 무언가가 몸체에 닿은 듯싶으면 반사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어떤 놈은 까만 먹물을 쏘아 댄다. 아주 당차고 야멸친 반란이다. 자신을 찾고자 하는 반란,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게 주어진 본능이리라.

종족을 번식시켜야 하는 본능,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경제적 자립, 남보다 잘나가고 싶은 욕망 등의 울타리 안에 갇혀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 또한 어느 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삶이다. 우리가 주꾸미의 앞일을 알고 있듯 우리 또한 신이 알고 있는 주어진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이 어느 쪽인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맞이하는 순간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생명이다.

이제 지나온 시간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마음 아픈 일도 많았지만, 세월이 약이라는 노래처럼 좋은 일에 묻혀 이만하면 잘 살아온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나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폭풍이 불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잘되어 간다고 믿었던 일이 어느 순간에 구멍이 날 수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설령 그렇더라도 나름대로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한 나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을 땐 누구나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당하는 일 앞에선 이성을 잃기 쉽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인성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언제나 하찮은 감정 앞에서도 우왕좌왕하는 인간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어느 막다른 골목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헛된 욕망과 절망과 질시와 미움으로 기운을 다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주꾸미를 닮은 몸짓으로 어설픈 반란을 일으키며 갈 길을 찾아 더듬거린다.

△김재희씨는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장승’으로 등단한 뒤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 <꽃가지를 아우르며>를 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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