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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정신 통해 극일의 계기를 만들어야
3·1정신 통해 극일의 계기를 만들어야
  • 칼럼
  • 승인 2018.03.1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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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동안 일본의 침략전쟁
고문·약탈·인권유린 자행
아베총리, 고개숙여 사과를
▲ 신이봉 명성화학 대표·본보 객원논설위원
▲ 신이봉 명성화학 대표·본보 객원논설위원

 일본은 우리에게 수많은 뼈아픈 역사를 남겼다. 임진왜란 때부터 시작해서 36년간 이 땅을 식민통치하면서 무수한 애국지사 민족지도자들을 체포해서 투옥 고문했고 우리 민족의 생존권마저 빼앗아갔다.

결국 민족적 대항이 3·1운동으로 이어졌다. 3·1 독립운동 99주년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그날의 용광로처럼 용솟음쳤던 민족의 정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3·1정신을 통해 극일해야만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조약’을 공포함과 동시에 서울 남산에 조선총독부 설치하고 그들의 헌병경찰권을 통하여 잔혹한 무단통치를 시행했다. 일본은 한국을 식량과 원료 공급기지로 만들려고 철도와 항만 통신 등의 사업에 손댔고 화폐와 금융제도도 일본식으로 고쳤다.

이밖에도 토지를 약탈하는 등 철저하게 식민지 사회구조 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은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초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그야말로 헌병이 마음대로 고문을 가하거나 형벌을 내리도록 사법권을 강화했다. 일제가 탄압을 통해 민족의 자유와 생존권을 빼앗아갔지만, 우리 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내외에서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기독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 등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월 1일 정오를 기해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인쇄물을 뿌리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이 거족적인 3·1민주혁명은 3, 4월에 최고조에 달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하와이까지 퍼져 나갔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이 부상당하거나 총살당하고 체포되었다.

이러한 3·1운동은 일본군의 무력 앞에 눌려 금방 독립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식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국내외적으로 민족의 결속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었다.

일본 아베 총리는 과거 역사의 잘못을 열 번이고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한다. 일본의 침략전쟁 36년 동안 수 없는 고문과 약탈 그리고 인권유린이 이뤄졌기 때문에 100년이 지났어도 그 정의와 진실을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

위안부 피해자 본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나치 치하에서 독일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2005년 총리취임 이후에도 수차례 나치 정권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규탄했고 이에 대해 독일은 영구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못 박았다.

이에 반해 아베는 역대 일본 총리 중 아시아 국가에서 저지른 일본의 과거 범죄 행위에 대한 사죄에 가장 인색하다. 식민지배, 침략전쟁, 반인륜적인 범죄인 위안부 고문 등 이 모든 사실을 부정했다.

메르켈 총리는 일본을 방문해 독일은 2차대전의 과오를 정리함으로써 유럽통합을 이뤘다면서 과거 역사를 직시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베는 묵묵부답이었다. 일본은 개과천선(改過遷善)해야 한다. 과거 잘못된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관계가 협력자 관계로 발전해 가면서 동북아의 평화와 미래를 견인해 나갈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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