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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99주년을 준비하며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99주년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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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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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팔 김제 금산면 지역발전협의회장
원평장터 3·1만세운동을 이끄셨던 배세동, 전도명, 전도근, 고인옥, 전부명, 김성수, 전천년, 이완수, 이병섭 독립투사들은 동학농민혁명 농민의 후예들이다.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스물아홉번째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99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감회가 새롭다.

음력 2월 19일 원평장날 장꾼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셨던 아홉분의 독립투사들은 농민들이었다.

당시 나라를 빼앗긴 백성으로 일제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있던 청년 배세동은 13일에 전주시장을 갔다가 그곳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와 마을의 지도자 전도명과 원평장터 독립만세운동을 논의했다. 둘은 같은 마을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준비했고, 19일 원평장날을 기해 오후 6시, 일몰시간에 장터에서 거사하였다.

하지만 배세동과 동지들은 현장에서 검거되고 군중들은 강제해산 당했다. 독립투사들의 불행한 삶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같은 마을에서 아홉분이나 투옥되니 마을전체가 감시의 대상이었고, 마을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도 그들 가족의 처참함은 이를 데 없었다고 한다.

배세동은 출옥 후에도 왜경의 감시와 사찰로 살수가 없어서 고향을 떠났지만, 1942년에 재구속되어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48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30년 전에는 원평장터 3.1만세운동이 그저 전설처럼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올 뿐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근거가 없었다.

당시 우리지역 모악향토문화연구회 회장님이셨던 고 최순식선생님이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국사편찬위원회로 단서를 찾아 수년간 헤매시다가 총무처 문서보존관리소 기록물들을 직접 확인하여 마침내 재판기록물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소중한 발굴로, 늦게나마 원평장터 독립투사 유족들이 독립운동유공자로 등록 될 수 있었고, 금산면민들은 기뻐했다.

모악향토문화연구회와 뜻을 같이하여 기념비 건립을 위해 주민들은 한마음이 됐다. 어린학생들에서부터 연로하신 어르신들까지 크고 작은 성금을 모았고, 원평장터와 독립투사들의 마을인 어유마을 입구에도 주민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오늘날 이렇게 뜻 깊은 기념행사를 이어 오고 있으며, 한사람의 주민으로써 이런 역사적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오면서, 원평의 자긍심이자 김제시민의 자부심인 3월 19일,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29년간 단 한 번도 기념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해마다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 어르신들까지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을 하고 재연행진 후에는 행사장에서 함께 밥을 먹는 전통도 지켜오고 있다.

금년에는 특별히 지역주민들이 원평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상황극을 위해 직접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모악산문화공동체와 함께 태극기를 직접 그려보고 만들어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재현행사를 하고, 김제시자원봉사센터의 페이스페인팅봉사단과 체험을 하는 등 흥미로운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운영될 예정이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많은 참여가 기대된다.

이제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내년에는 보다 아름답고 거룩하게 기념비 주변을 정비해서 선열들이 지켜낸 이곳 원평장터에 성대한 100주년의 축제를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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