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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0. 선비들 유람기로 만나는 지리산 - 진시황이 애타게 찾던 그곳, 우리는 이렇게 그냥 얻고 있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0. 선비들 유람기로 만나는 지리산 - 진시황이 애타게 찾던 그곳, 우리는 이렇게 그냥 얻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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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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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산맥 흘러와 頭流
북쪽의 금강산과 더불어 선비들 가장 많이 찾은 산
남원 목동리 재간당 곳곳 옛 풍류 즐기던 흔적 남아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유명한 말과 “그곳에 산이 있어 오른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자연을 즐기며 인증한 여행기를 SNS에 올리는 시대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남긴 기행문을 살펴보면 수려한 풍광을 지닌 산을 찾아 유람하는 것은 산을 그저 등산한다는 의미와 달랐던 것 같다. 그 중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로 유명한 유몽인(柳夢寅, 1599~1623)이 53세 때 쓴 기행문 《유두류산록(流頭流山錄)》은 지리산 유람기의 백미로 전해져 오고 있다.

▲ 남원 산동면 목동리 ‘재간당’ 냇가.
▲ 남원 산동면 목동리 ‘재간당’ 냇가.

“2월 초에 임지에 부임했다. 하지만 용성(현 남원)은 큰 고을이라 업무 처리에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중략) 목동에는 수춘암이 있는데 그 수석이 매우 아름답다. 진사 김화가 그곳에 살면서 집을 재간당(在澗堂)이라 불렀다. 그 집은 두류산(頭流山) 서쪽에 있어서 서너 겹으로 둘러싼 안개 낀 모습을 누대 난간에서 바로 마주 볼 수가 있다. 두류산은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렸는데,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도 “방장산은 저 바다 건너 삼한에 있네”라고 한 구절이 있다. 또한 시의 주석에는 “대방국의 남쪽에 있다”라고 했다. 지금 살펴보니 용성의 옛 이름이 대방(帶方)이다. 그렇다면 두류산은 삼신산(三神山: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중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 그 옛날 중국 진시황과 한무제는 배를 띄워 이 삼신산을 찾게 하느라 쓸데없이 공력을 허비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앉아서 그냥 얻고 있으니….”

남원수령으로 부임한 유몽인이 1611년(광해 3년)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두류산록》의 서문 중 일부이다.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은 야담과 우리나라 산천을 두루 유람하며 기록을 남긴 유몽인은 장원급제를 하고 벼슬에 오른 뛰어난 문필가이자 외교관이였지만 역모죄에 몰려 처형되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그의 글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뛰어남을 인정받았고, 임금 정조로부터 그의 곧은 지조와 문장에 대한 극찬을 받으며 사후 170년 만에 의정(義貞)이라는 시호를 받고 이조판서가 된 인물이다. 그가 남긴 글들을 순조 때인 1832년 후손들이 『어우집』에 모아 내어 당대 선비들의 진솔한 생활사와 해학과 풍류를 지금에 와서도 엿 볼 수 있게 되었다.

천생 이야기꾼인 유몽인은 그의 이름과 별칭도 남다르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호랑이를 상징하는 큰 꿈을 품은 이름을 아버지에게 받았다. 또한, 호인 어우당(於于堂)의 어우는 ‘과장해서 속이거나 아첨한다’는 뜻으로 공자를 비판한 장자의 『천지』에 나오는 말이다. 밭일하는 노인이 공자의 제자에게 공자를 빗대어 ‘허망한 말로 세상을 속이고 홀로 악기를 연주하며 슬픈 노래를 불러 천하에 이름을 파는 사람이 아닌가. 밭 가는 일을 방해 말고 가라’고 조롱하듯 남긴 말에서 따온 의미이다. 당시 유교사상이 만연한 조선에 유교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가치관과 장자를 흠모하는 마음을 담은 호이다.

그런 생각을 지닌 유몽인이다 보니 그의 글은 점잖은 선비의 글이라기보다는 온갖 군상들의 삶과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 지리산 철쭉과 앙상한 주목이 운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 지리산 철쭉과 앙상한 주목이 운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봄이 움트는 날 남원에서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을 다녀온 글에도 근엄한 선비들의 모습보다 지역의 이야기를 나누고 수려한 풍광을 즐기며 흥겹게 유람한 모습이 담겨 있다. 유몽인보다 앞선 시기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유두류록(流頭流錄)』을 필두로 지리산은 북에 있는 금강산과 더불어 선비들이 가장 많이 찾고 유람기를 남긴 산으로 역사 속에서도 전라도와 경상도 양도의 지방 명산으로 기록된 산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 경상도 편은 주흘산, 태백산, 사불산, 가야산을 포함한 다섯 명산(名山) 중 하나로 지리산을 꼽고 있으며, 전라도 편은 방장(方丈), 또는 두류(頭流)라고도 불렸던 지리산의 다른 이름과 함께 주위의 고을과 산악경관, 기후와 속설 등 관련 정보 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지리산의 다른 이름 ‘두류’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지리산은) 부의 동쪽 60리에 있다.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 리에 웅거하였으니, 여진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두류(頭流)라고도 부른다.

- 이행, 윤응보 등,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제39권 「전라도 남원도호부」

두류산이란 백두대간의 산맥이 흘러왔다는 데서 생긴 이름으로 지리산에 대한 선조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이인로의 《파한집》이나 『고려사절요』 속 《옥룡기》의 문구에서는 지리산이 백두산의 맥을 잇고 있다는 언급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지리산이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 같은 봉우리와 꽃받침 같은 골짜기가 면면하게 잇따라서 대방군(帶方郡)에서는 수천 리를 서리어 맺히었는데, 산을 둘러 있는 것이 10여 주이다. 한 달이 넘게 걸려야 그 주위를 다 구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지리산(智異山)에서 끝나는데, 그 지세는 오행으로 보아 수(水)를 뿌리로 하고 목(木)을 줄기로 하는 땅”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두류산이란 이름도 불린 근원이 깊은데, 지리산(智異山)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지는 산’이란 뜻으로 그 이름의 지닌 의미가 다분히 철학적이다. 수려한 풍광은 물론이고 자연의 이치에서 성찰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성향이 영산(靈山) 지리산의 가치를 키우고 선조들의 마음과 발길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 해동지도 운봉현지도.
▲ 해동지도 운봉현지도.

서두에 소개한 글에 이어 유몽인은 지인들에게 지리산 유람을 청하며 이런 문구를 이어갔다. “술이 좀 거나해질 때, 내가 술잔을 들고 좌중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봄에 두류산을 마음껏 유람하여 오랫동안 묵은 빚을 좀 갚고 싶었소. 누가 나와 함께 유람하실 분이 계시오?” 유몽인과 선비들은 여러 차례 편지를 교환한 후 재간당에서 모일 것을 기약한 후 만났다. “3월 28일. 처음 약속한 장소에서 다시 모였다. 기생들이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모두 실컷 취해 버렸다. 그러기를 한밤중까지 계속하다 그대로 시냇가 재간당에서 잤다.” “3월 29일. 요천을 따라 내려가다 반암을 지났다. 때는 멋들어진 풍경 속에서 꽃들이 활짝 피었고, 밤사이에 내린 비도 아침이 되자 맑게 개어 꽃을 찾는 흥취가 손에 잡힐 것만 같다. 낮에는 운봉과 황상의 비전에서 쉬었다.”

그리고 곳곳을 실감나고 감질나게 잘 기록하고는 그의 유람기 마지막에 “두류산이 우리나라 제일의 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일 인간 세상의 영화를 다 마다하고 영영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오직 이 두류산만이 은거하기에 좋을 것이다”라고 지리산에 대한 총평을 남겨 놓았다.

옛 선비들의 유람기 속에 생생하게 묘사된 의미 있는 흔적들을 살뜰하게 돌아보고 지역의 자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몽인의 지리산 유람 출발점이 되었던 남원 목동리 재간당 곳곳에는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곁을 흐르는 냇물은 그 시절의 풍류를 품고 선비들의 즐거운 흥얼거림 같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지리산까지 이르는 길의 축으로 황산 이성계의 전설을 비롯한 지역의 이야기며 꽃들과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들의 생김새와 이름, 갖은 악기로 연주된 곡과 흥에 겨워 먹을 가며 시를 지은 기록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그린다.


유몽인의 말에 선비들이 화답하여 지리산 유람을 떠났던 것처럼 “저도요!”라고 응답하며 선비들의 아지트였던 ‘재간당’ 기둥에 기대서서 지리산을 마주 하고 싶다. 지리산이 지척에 있어 그저 얻고 있음을 새겨듣고 감사하게 여기며 《유두류산록》을 여행책자 삼아 재간당의 주변과 옛길에 남은 그 귀한 자취를 돌아보며 옛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싶다. 사라지고 희미해진 옛길과 지명이지만, 남아있는 글귀와 흔적들이 남원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금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의 멋들어진 안내를 따라 운봉을 거쳐 지리산의 명승지를 두루 돌고 다시 남원으로 흘러온 길을 가볼 참이다. 선비들이 지리산을 찾은 마음처럼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웅혼한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진정 지혜로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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