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9-24 08:40 (월)
익산 쌍릉 '판도라 상자' 열린다
익산 쌍릉 '판도라 상자' 열린다
  • 엄철호
  • 승인 2018.04.02 2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년만에 발굴 재개, 왕릉급 실체 일부 드러나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 가득 담긴 나무상자 발견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 굴식돌방무덤 방식 확인
▲ 익산 쌍릉 조사 후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익산시 석왕동에 위치한 익산쌍릉(사적 제87호)의 판도라 상자가 마침내 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일제강점기 조사 이후 100년 만에 재개된 발굴조사를 통해 익산쌍릉이 왕릉급 무덤임에 힘을 실리게 하는 실체들이 일부 드러났다.

2일 익산시와 문화재청, 발굴조사단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익산쌍릉은 부여에서 익산으로의 천도를 추진한 무왕(재위 600∼641)이 묻혔다고 전하는 북쪽의 대왕릉과 그의 부인인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는 남쪽의 소왕릉이 나란히 조성된 원형 봉토분(묘)으로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나왔다.

쌍릉 대왕릉에서 현실(玄室·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방, 무덤방)의 가운데에 있는 화강암 관대(棺臺·관을 얹어놓는 넓은 받침) 위쪽에서 인골이 있는 상자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상자는 가로·세로 각 26㎝이며, 높이는 33㎝로 안에 인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인골은 1917년 쌍릉을 발굴한 야쓰이 세이치(谷井濟一)가 관과 토기, 장신구, 치아 등을 수습한 뒤 무덤 주인공의 인골을 모아 다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은 “무덤 주인공의 인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인골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항온항습실에 보관돼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봉분 직경이 약 25m, 높이가 5m인 대왕릉의 내부 구조와 규모도 확인했다.

구조는 백제 사비도읍기의 전형적인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으로, 입구가 중앙에 있고 현실은 육각형으로 나타났다.

현실 크기는 길이 378㎝, 너비 176㎝, 높이 225㎝다.

이는 1979년 일본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가 제시한 실측도와 거의 비슷한 수치로, 백제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현실이 가장 큰 무덤인 동하총보다 더 넓은 것이다.

무덤으로 통하는 길인 연도는 길이 67㎝, 너비 125㎝, 높이 156㎝로 조사됐다.

관대는 길이 268㎝, 너비 82㎝, 높이 24㎝다. 관에서 떨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금박이 일부가 남아 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는 현실 조성 과정에서 대형 화강암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하고, 사비도읍기 백제 왕릉급 무덤 중에는 처음으로 흙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판축 기법으로 봉분을 만들었다는 점도 규명됐다.

익산시 관계자는 “대왕릉은 규모나 구조 면에서 왕릉급 무덤이 확실하다”며 “무덤 주변에 제사 행위 흔적 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변을 더 조사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익산쌍릉은 향가 ‘서동요’에 등장하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무덤이다.

하지만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리봉안기에 무왕의 부인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고, 대왕릉에서 발견된 치아를 분석한 결과 20∼40세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피장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쌍릉은 야쓰이 세이치의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된 상태였으며, 관을 비롯한 출토 유물 일부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