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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익산시·마백연구소, 익산 쌍릉 발굴조사 설명회] 일제강점기에 도굴 흔적 남아
[문화재청·익산시·마백연구소, 익산 쌍릉 발굴조사 설명회] 일제강점기에 도굴 흔적 남아
  • 김진만
  • 승인 2018.04.03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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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모서리 2곳 20cm 구멍 뚫려
1917년 부실 발굴 ‘아픈 역사 재조명’
▲ 익산 쌍릉 전경

익산 쌍릉이 왕릉급 무덤이라는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무차별적인 도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아픈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같은 도굴 흔적은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일환으로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가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쌍릉의 대왕릉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3일 문화재청과 익산시, 마백연구소는 쌍릉의 대왕릉 현장에서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설명회를 열고 발굴현황과 발굴을 통해 얻은 각종 실체를 공개했다.

대왕릉은 중앙에 입구가 있으며 단면육각형의 현실(玄室·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방, 무덤방) 구조로 축조된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조성됐다.

대형 화강석을 정연하게 다듬은 돌을 이용해 축조해 외부로부터 접근을 차단했다.

특히 현실의 규모는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의 왕릉급에서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날 일부의 실체를 드러낸 대왕릉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 현실 내부 북서모서리에 큰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
▲ 현실 내부 북서모서리에 큰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

 

웅장한 현실 위의 왼쪽 모퉁이와 아래쪽의 오른쪽 모퉁이 등 2곳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무차별적인 도굴의 흔적이다.

위쪽 모퉁이는 가로 35cm, 세로 25cm 정도로 어른 머리가 어렵게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구멍이 나 있고, 아래쪽 모퉁이는 이보다 약간 좁은 구멍이 뚫려 있다.

두께 20cm가 넘는 현실을 무차별적으로 뚫어 놓은 도굴의 흔적은 이번 대왕릉 발굴조사에서 가장 큰 상처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도굴의 흔적과 함께 일제강점기 도굴수준으로 진행된 부실한 발굴조사의 흔적까지 더해지면서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재차 돌이켜 보게 하고 있다.

지난 1917년 일제 강점기에 야쓰이 세이치(谷井濟一)의 발굴조사는 단 며칠만에 끝난데다 발굴조사 보고서는 13줄짜리로 마무리됐다.

당시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관과 토기, 장신구와 치아 일부를 발견했다고 되어 있지만 이번 조사에선 입구 쪽에서 당시 수습되지 않은 관정 등이 발견되면서 당시 얼마나 부실하게 조사가 이뤄졌는지 가늠케 하고 있다.

마백연구소 최완규 소장은 “입구와 아래쪽 등 2곳의 도굴흔적과 일본학자에 의한 도굴수준의 부실한 발굴조사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마백연구소는 대왕릉 발굴조사 현장을 4일부터 6일까지 매일 오후 2시 1차례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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